• 미해결 범죄사건의 실시간 중계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군산여성실종사건’ 생방송을 하고 나서
        2013년 07월 31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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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 MBN 아침방송 ‘세상의 눈’에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주제는 지난 주부터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군산여성실종사건’이었다.

    범죄를 많이 다루어보고 또한 관련된 방송에도 종종 참여했던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평균적인 범죄라는 측면에서, 해당 사건은 사건 자체만으로 보자면, 크게 복잡한 사건도 아니고 특별히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고 있는, 강력사건의 개연성이 있는 실종사건이다. 이전에도 이런 종류의 사건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사건을 많은 언론에서 주목하는 이유를 언론 스스로는 해당 사건의 용의자가 현직 경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 사건은 적지 않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주목받지는 않았고 그냥 묻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보다 더 타당한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언론들의 ‘시청률 경쟁’ 때문일 것이다. 최근 종편의 가세로 인해 치열해진 방송환경에서, 정치판의 이전투구에 신물이 나고 답답한 남북문제에 지친 국민들에게 현직 경찰의 범죄사건은 그 자체로 강한 시청자 유인 요소를 가진 사건일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 상태라면 일정 정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볼모로 한 공포마케팅도 가능하고, 또 해당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서 실시간으로 여러 가지 픽션도 역시 가능할 것이다. 물론 픽션에 가치를 두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픽션이 범죄자의 다음 행동에 선택지를 줄 가능성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이 출연했던 유명 대학 경찰행정학과 모 교수는 방송에 들어가기 전, 방송 대본을 훑어보고는 소설 같다고 혼잣말로 약간의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종편과 종편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론학자도 아니고 진보적 사회비판가도 아니다. 다만 여기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범죄사회학자로서 나 스스로도 이와 같은 방송에 참여하면서 생각한, 일반적으로 언론이 범죄를 다루는 방식 특히 실시간 중계에 대한 단상을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범죄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분야 못지않게 국민들에게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언론에게 적정한 시청률의 확보는 언론사 자체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볼 때 시청률을 위해 실시간 중계라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언론사 자체의 선택 가능한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군산여성실종사건 방송 화면 캡쳐

    군산여성실종사건 방송 화면 캡쳐

    그러나 문제는 범죄라는 것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하나의 의미있는 사회적 사실이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극적인 3류 소설(픽션)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이 점이 다른 분야와 명백히 구분이 된다고 생각된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등 이런 분야들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범죄 분야의 경우 직접적인 생명과 재산의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 분야이다. 또한 다른 분야는 어쨌건 해당 행위가 직접적으로 반사회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즉 국회에서 정치인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웠다고 해도 결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주먹다짐을 한 것이니 아이들 교육에는 일정 정도 부정적일 수는 있어도 의도가 순수하니 반사회적일 여지는 비교적 적을 것이다.

    반면 범죄 분야는 그 자체로 반사회적인 행동과 사람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행위를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이런 공동체를 훼손하는 방식의 다양한 행동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들이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일반 국민에게 전달된다면 그 자체가 반사회적인 것이고 그런 행동일수록 모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언론보도가 자칫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수법의 교과서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2주전에 언급한 ‘비사회적 상황의 학습’).

    그래서 언론에서 범죄를 다룰 때는 해당 범죄의 행동요소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범죄에 대한 총체적인 사회적 평가가 우선된 이후에 전달되어야 하고 만약 그런 전처리 없이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면에 집중하면 그냥 너저분한 3류 황색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꽃뱀 사기 사건을 접근할 때 해당 사건의 맥락에 대한 파악 없이 수법에만 집중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포르노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이번 달 초 발생한 용인 살인사건의 경우 전체적인 맥락 없이 접근하면 그것도 또한 내용 없는 엽기적인 호러 무비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서구 일부 국가의 경우,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해 언론에서 다룰 때 적정한 기준선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다.

    게다가 특히 종결된 사건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데, 이는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실제 범죄자의 다음 행동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행 중인 납치사건 범인은 언론보도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고 다음 행동의 선택지를 선택하기도 한다.(그래서 납치(유괴)사건의 경우 일정 정도 엠바고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건에도 유사하게 적용되는데, 지난달 발생한 탈주범 이대우 사건의 경우에도 실제 검문검색 상황이라든가 수사상황이 탈주범에게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전달되어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으로 이어졌던 100억 수표사기범 사건의 경우에도 언론을 통해 자신들이 실수한 부분을 확인하고 복기한 다음,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언론의 실시간 중계가 범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서 다음 범행의 선택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해도 언론 활동의 하나인 실시간 중계와 같은 것은 제한되어서도 제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정보라는 것이 강제로 통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은, 아무리 기술적인 부분의 언론활동이라고 해도 그 활동의 결과에 대한 충분한 책임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적정한 형태의 자율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서 한번 되새겨봐야 할 사건이 어제 발생했다.

    26일 성재기라는 사람이 한강에서 예고 투신자살을 했다. 투신 전후의 상황은 유력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있는 친구가 알려주어 비교적 소상히 접할 수 있었다. 그 전날 홈페이지에 투신을 공지할 때부터 실제 다리 위 난간에 설 때만 해도 본인도, 현장에 같이 있던 몇몇 사람들도, 방송사 기자도 뛰어내릴 의도는 없었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렸다.

    글쎄 법적으로 자살방조죄가 성립되는지의 여부는 법률가가 아닌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상황적인 자살 강요라고 생각된다. 그 사람이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어리석은 일이고 본인이 작심한 것처럼 명분이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난간에 올라간 상황에서 방송카메라가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몇몇 남성연대 회원들은, 아마도 말로는 뛰어내리지 말라고 했겠지만 실제 뛰어내리지 않고 그냥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을 용납했겠는가? 방송카메라가 돌고 있는 상황에서 뛰지 않고 그냥 내려왔을 때 그 성재기라는 사람이 받을 엄청난 비난과 모욕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 상황 자체가 성재기라는 사람을 죽으라고 강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그 자리에 방송카메라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적어도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과도하게 말한다면 카메라라는 큰 힘이 그에게 유일한 선택지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성재기라는 사람이나 그가 활동했던 ‘남성연대’의 활동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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