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세상을 깨우쳐주는 사람들
    [진보정치 현장] 아이의 아픔 챙기는 선생님과 목사님, 그리고 노점상
        2013년 07월 29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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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중순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연락이 와서 학교를 방문했다. 선생님은 위기가정 학생 3명에 대해 무척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조손가정으로 할머니가 있지만 나이가 많아서 보살핌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침은 청소년 무료급식센터를 이용하며 방과후에는 형과 같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고 있는데 곧 아버지가 감옥에서 출소할 예정이라 혹시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걱정하고 계셨고 다른 아이 둘은 엄마와 단둘이 사는 한 부모 가정인데 며칠째 학교에 오지 않고 있어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목사님과 교장선생님이 걱정을 하고 계셨다.

    이후 나는 경산시 희망복지단과 연락하여 두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엄마를 설득하자고 제안했다. 그날 오후에 집을 가보니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고 매우 마른 초등 1학년 아이와 표정 없는 젊은 엄마가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을 보니 마음이 답답해 온다. 우선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말을 건네 보았다.

    “어머니 마음이 많이 아프셨죠? 직접 뵈니 제 여동생과 비슷한 나이시네요. 아이가 학교에 안와서 선생님이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 엄마도 많이 힘들겠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힘들다고 술로 의지하면 이 아이는 누가 돌봐 주나요? 어머니가 힘을 내셔서 잘 키워야 하지 않겠어요. 엄마가 치료하는 동안 아이는 그룹 홈에 맡겨서 밥도 먹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도록 하면 어떨까요? ”

    내가 가만히 엄마의 손을 잡으니 엄마는 눈물을 흘렸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았다가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볼에 뽀뽀를 하며 웃으면서 공원에 가서 같이 놀자고 조른다.

    몇 분후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럼 제가 치료받는 동안만 아이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참 다행히 엄마가 어려운 용기를 내어 아이는 그룹 홈으로, 엄마는 알코올 치료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지만 내 마음은 무겁다. 이 아이는 엄마 없이 그룹 홈에서 살아야 하며 엄마는 당분간 자신의 전부라 여기는 사랑하는 아이와 헤어져 살아야 한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이 엄마가 지고 갈 삶의 고통에 애달픈 마음이 든다. 엄마와 아이를 버린 아버지는 어디 가고 없고 이 모든 책임이 아이를 버리지 않고 키운 엄마에게 고스란히 지워지니 이 여성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나 안쓰럽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엄마의 술’이 문제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가 바르게 자라서 엄마의 아픔을 꼭 이해해 주고 엄마를 사랑해 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다음 방문한 가정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부모 가정이다.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해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한 번씩 와서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 아이도 학교에 오지 않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가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힌다. 초등학생이 힘이 없는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다니 이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문을 두드렸다. 방안에서는 TV소리와 세탁기 소리가 나는데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아무리 문을 열어 달라고 해도 닫힌 문을 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경산시 희망복지단 분들께 내일 아침에 다시 방문하여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고 의논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린다.

    겉으로 보는 세상은 평화로울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자기가 태어난 팔자다”고 말하면서 외면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헌신하며 사랑을 실천하시는 목사님, 교장선생님, 경산시 희망복지단 공무원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상처받은 사람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참으로 다행이며 이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목사님은 경산시 중방동에서 목회활동과 공부방, 그룹 홈을 운영하신다.

    중방동에 있는 중앙초등학교는 학생들의 과반수가 가정형편상 급식비를 못 낼 정도로 취약계층 아이들이 많은데 이 아이들이 방과 후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악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 교과과정 보충수업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늘 보살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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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가꾸신 학교 연못

    별명이 ‘호호 할머니’ 이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참으로 인자하신 분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연못을 가꾸시고 수박, 참외, 딸기를 학교 정원에 심으시고 올 봄에 심은 벼를 가을에는 수확하여 아이들에게 떡을 해 주겠다고 한다.

    보는 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위기가정 아이들에게 직접 담임선생님과 방문하여 기관과 연계해 주시는 ‘호호 할머니’ 교장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이 분들처럼 경산시민을 살폈는지 반성하게 된다. 이 목사님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못하며 사는데 늘 격려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안내해 주신다.

    내 삶을 안내해 주시는 또 다른 분들은 노점상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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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시장 노점상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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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폭설이 온 겨울 새벽, 칼날 같은 찬바람이 경산오거리에 세차게 불었고 나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는데 노점상 회원분들은 벌써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고 계셨다.

    이 광경을 보고 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렇게 열심히 사실까?’ 비가 오는 장마철이나 아스팔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더운 여름에도 늘 그 자리에서 노점을 펴신다. 단속반이 뜨면 숨어 있다가 다시 전을 편다. 들판에 흩어져 피는 이름 모를 풀처럼 그렇게 다시 일어난다.

    어떤 노점상분이 하신 말을 난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죽으면 내가 노점한 그 곳에 꼭 묻어 달라”고 한다. 그곳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노점상분들처럼 그렇게 굽힘없이 살고 있는지 묻는다면 “예”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요즘 의정활동하면서 의원이 되기 전에 나의 모습을 떠 올려본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뜻하고자 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정치상황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오로지 우리가 그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갔다. 하지만 의원이 되면서 경산시, 타당의 정치세력의 이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다 보니 하나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타협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아직까지 정치는 돈과 권력을 잡은 10%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모든 예산에 이해관계가 있고 시의원으로 지역사업을 열심히 하였지만 열매를 가져가는 사람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들만의 정치에 나는 함께 서 있다. 그래서 눈 뜬 바보라는 생각이 들 때 의원으로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 목사님과 교장선생님 노점상분들이 생각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을 다해서 자기 역할을 하시는 분들. 세상이 버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들.

    난 세상을 깨우쳐 가는 이분들과 함께 내 자리에서 들풀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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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정의당 소속 경북 경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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