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진정한 폭력자인가?
    <희망버스>를 매도하는 이들과 권력과 자본에게
        2013년 07월 24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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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에 망각되고 말았지만, 약 110-120년 전 같으면 일본이나 개화기의 조선에 가장 유명한 서구 철학자는 “적자생존”의 논리로 유명한 (아니면 차라리 “악명 높은”이라고 해야 할까?) 헤르베르트 스펜서이었습니다.

    다윈의 “자연 도태”의 논리를 인류 사회에도 적용시켜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지는 빈민들을 국가가 절대 구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특유의 親자본적 가혹성도 보였지만 산업혁명 초기의 자유주의자답게 그는 언젠가 “산업사회의 발전”이 훨씬 덜 군사화된, 덜 폭력적인 사회의 형성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사회 진화”는 결국 사회의 점차적 비폭력화이었습니다. “적자생존”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별로 인기 없는 일이 됐지만, 상당수의 온건 리버럴들은 지금도 스펜서의 가설대로 “산업사회의 문명화”가 결국 점차적 비폭력화를 의미한다고 믿더랍니다.

    뭐, 하버드대에 있다는 스티븐 핀커 라는 사람이 <우리 천성의 보다 나은 천사들: 왜 폭력이 감소되는가>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라는 두꺼운 책을 내서 거기에서 “폭력 감소 추세”를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글쎄, 보스턴 부촌의 테두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폭력이 이 세상에 더 이상 거의 없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봤는데, 참 살기 편안한 곳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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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핀커 교수와 그의 책

    핀커 논리의 문제는, 그가 “폭력”을 너무나 좁게, 즉 “살인”으로만 규정한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살인을 안하는 것도 물론 아니에요. 하죠. 단, 주로 세계체제 주변부의 자원지대에 가서 합니다.

    예컨대 미군과 함께 한국군도 노르웨이군도 한 때에 핀란드군까지도 가세해 그 모든 “문명국 군대”(?)들이 “원주민 토벌”(?)을 열심히 해대는 아프간에서 말입니다. 토벌해봐야 결국 “원주민 광신도”들에게 이제 사실상의 패배를 당한 꼴이지만, 좌우간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아주 요긴하게 이용해왔습니다. 신종 무인폭격기들을 시험해보기 위한 일종의 인체 실험 재료로서요.

    하지만 이것은 자원지대 이야기고, 제조업 국가인 우리하고는 관계가 약간 멀죠. 핀커 주장과 달리 전혀 수그러들지 않으려 하는 우리 사이의 주된 폭력의 형태는, 주로 자본의 횡포, 요즘 유명해진 말로는 “갑질”입니다.

    예컨대 파견 업체를 통해서 비정규직들을 1년짜리 계약으로 마구 모집해놓고 그들을 정규직들과 같은 라인에서 일을 시킨 다음, 정규직들과 동일노동하거나 오히려 더 힘든 일 하는 그들이 (사실 모자라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거해서라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만 하면 그들을 바로 계약해지시키고 내보내는 것.

    직장 이외에 그 어떤 복지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실업수당을 최장 10개월 동안 받고 나서 그저 굶어죽기라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렇게 하는 게 폭력이 아니라고요? 글쎄, 무엇보다 가장 기초적인 正義를 모조리 짓밟는 강자의 부당 대우 그 자체는 원천적으로 바로 광의의 “폭력”에 내포되지 않을까요?

    이런 입장에서 보다 보면, 핀커의 주장과 정반대로 우리 사회가 비폭력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패악질이 누적됨에 따라 더더욱 더 폭력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폭력화 과정의 중심에는, 바로 “비정규직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폭력”이 성립되자면 꼭 누군가가 나무막대기를 들고 또 누군가를 향해서 돌진해야 하나요? 비정규직이 안되더라도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60-70시간이나 일하고, 몇 년이 지나면 태심한 골병들을 앓게 되는 노동자는 현대차 등의 재벌기업들을 살찌우는 과정에서는 그 몸들에 대한 엄청난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어지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온갖 부수적인 폭력들을 생각해보죠. 재벌의 이윤극대화에 바쳐지게 되는 만큼 본인에게 무의미해지는 인생의 서러움을 잊기 위해서 먹는 술이 우리 몸에 가하는 폭력, 술기운에 주변 사람, 특히 가족들에게 저지를 수도 있는 폭력,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 의해서 아이들에게 끝내 제대로 주지 못한 애정의 결핍에서 파생되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학교 폭력….

    정규직들도 폭력으로 만들어지고 폭력으로 유지되고 폭력으로 먹고 사는 이 사회의 폭력성에 온 몸으로 노출되지만, 아주 부당하게 언제나 밥통마저도 무조건 빼앗길 수 있는, 아무리 더 힘들게 일해도 “동료” 취급 자체도 아예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들이 체험하는 폭력의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이제는 보수 언론들이 며칠 전의 울산, 현대차 공장으로 간 희망버스를 “폭력”으로 막 매도하기 시작하고, 국가도 거기에 잘 편승해 희망버스 조직자들을 고소하여 구속 수사 등으로 위협합니다.

    애당초부터 정규직으로 고용했어야 할 사람들을 임금 착취 등의 목적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그 피땀을 쥐어짠 자본의 본래적 폭력성은 아예 관심 밖이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마저도 무시한 현대차 자본의 온갖 불법 행태들도 “폭력”의 定義에 들어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등이 던진 돌이나 발사한 분말기 등에 의해서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린 희망버스 참석자들의 직접적인 “폭력 경험”도 다 무시됩니다.

    하기야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 가는 일을 극도로 피할 정도로 국가와 (특히 울산에서 거주하는 경우에는) 현대 자본의 보복을 우려했습니다. “을”이 맞아 터져도 “갑”의 보복이 두려워서 맞았다는 소리조차도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물대포

    경찰과 용역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비폭력화되어 가는 산업사회? 핀커가 한국에서 비정규직 생활을 약 몇 개월 해봤다면 그의 책을 정반대로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이 은폐돼 논외로 다루어지고, 깃대를 들고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과 대치한 몇 명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행동만이 “폭력”으로 규정되어지는 상황 자체가 이미 폭력성의 극치가 아닐까요?

    정규직이 됐어야 할 사람을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으로 10여 년 동안 고용하고 그 조합활동을 계속 불법적으로 탄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는 자본 밑에서 살다가 절망에 빠진 나머지 결국 깃대를 잡게 된 “을”의 발버둥을 문제 삼기 전에 여태까지 “갑”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소상히 밝혀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과연 깃대를 들고 항거한 몇 명의 공장 진입 시도 등은 희망버스의 전부인가요?

    있지도 않은 “폭음 잔치” (<세계일보>)등에 대해서 소설을 써대는 보수 언론들이 거의 다 무시했지만, 실제 참가자들 중에서는 일본 비정규직 조합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으로서는 아주 부담되는 항공료를 지불하고, 이렇게 아낌없이 한국에서 탄압을 받는 동지들을 위해서 연대를 하러 온 셈이었죠. 오사카에서. 도쿄에서. 시골의 오지에서. 우리가 여태까지 관념적으로만 생각해온 “동아시아 민중 연대”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한국인 “을”과 일본인 “을”의 자발적인 밑으로부터의 연대는, 히로시마 원폭을 “신의 벌” (<중앙일보>)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은 한국 보수 언론들의 행태와 좀 비교되지 않나요? 도대체 누가 진정한 폭력자일까요?

    만약 노동자들을 악질적으로 쥐어짜고서 수천억의 누적 배당금을 10여년 간 챙기는 사업주나, 학생이나 직원들을 언제 사고로 죽을지 모를 “해병대 캠프”에 무조건 보내버려 인간병기화시키려 하는 교육 관료, 직장 관리자들이 폭력자가 아니고 절망적으로 항거하는 노동자들이 “폭력자”라면, 이 사회는 “을”로서는 도대체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건 과연 우리가 진정 원하는 바일까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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