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명의 정치학
    [기자 생각] 진보정당의 당명 개정을 지켜보며
        2013년 07월 23일 1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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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진보’라는 이름에서 탈출하려고 하나

    진보정의당과 진보신당의 당명이 진통 끝에 개정되었다. 한쪽은 사회민주당의 추격 속에 ‘정의당’으로 결정되었고 다른 쪽은 무지개사회당의 추격 속에 ‘노동당’으로 결정되었다. 2011년 말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통합하여 새로 출범할 때도 나름의 진통 끝에 ‘통합진보당’으로 결정된 바 있다. 이 경우에도 ‘진보’에 방점이 찍혔다기보다는 ‘통합’에 강조점을 두었다.

    결국 이 세 경우의 공통점은 모두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상대화이다. 한국 사회에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과 구분되는 정치적 제3지대를 표현하는 개념이 ‘진보정당, 진보정치’였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든다.

    진보 개념 상대화의 계기는 진보진영 내외부에서 동시에 다가왔다.

    외부적으로는 ‘민주 대 반민주’의 한국정치의 오래된 구도가 일정하게 와해되면서 민주당 등 중도세력 내에서도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거나 혹은 진보진영의 가치와 포지션을 포섭하려는 움직임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의 대표적인 세력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친노세력이다.

    스스로를 전통적인 민주당의 호남 토호들과 구분하면서 386운동과 재야운동의 적통을 이어갈 이름으로써 ‘진보’로 스스로를 호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중도진영 내에서 차별화된 이름으로써, ‘진보’가 탈이념적이고 부담 없는 이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진보진영 내부적으로는 ‘진보’들이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모두 진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지도 못하고, 대중적으로는 운동권세력, 종북세력으로 과잉 인식되는 것에 대한 부담에서 적극적으로 ‘진보’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것은 진보진영 내부에서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 운동권, 친북이라는 인식과 스스로 단절하고자 한 시도의 부메랑 효과인 것이다.

    즉 전통적인 진보의 ‘외부’였던 민주당 일각에서는 진보가 부담 없으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이름으로 인식된 반면, 진보의 ‘내부’에서는 진보가 운동권, 민주노총, 친북이라는 이름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강한 부담을 느꼈던 것. 진보가 중도세력에게는 정치적 영토 확장의 개념적 대상이었던 반면, 진보세력 스스로에게는 탈출해야 할 개념적 대상이 된 것이다.

    문제는 탈출의 방향성

    ‘진보’라는 개념을 중도세력에게 내주고 스스로를 진보와 구분하고 단절할 것이냐, 아니면 일정하게 모호했던 ‘진보’의 내용과 지향을 보다 뚜렷히 드러내면서 진보의 내용을 새롭게 재점유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후자의 방향을 명확히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방향성이 곧 이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향을 대중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지, 내외부의 고려해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가지는 상징적 표현과 자산이 무엇인지 등이 방향성과 함께 작명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인일 것이다. 그것의 우선순위과 가치순서를 둘러싸고 각 당에서는 나름의 논쟁과 토론이 격화되었다.

    당명

    정의당, 당원투표 50% 간신히 넘겨 결정

    진보정의당에서는 정의당과 사민당이 격돌했다. 민들레당이라는 명칭도 있었지만 주된 대치선은 아니었다. 대치선의 세력 구도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NL세력’ vs ‘참여계+통합연대’의 구도와 유사했다.

    하지만 이 대치는 불안정했다. 당 내 NL세력을 대표했던 인천연합은 혁신NL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사민주의라는 호명에는 불편함을 느꼈다. 이들의 불편함에는 민주노총 등 전통적 운동세력과의 관계, 한반도에서 북한 등에 대한 태도에서 청산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포지션이 ‘사민당’ 호명세력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일정하게 탈이념적이면서 포퓰리즘적 경향을 띠는 ‘정의당’이었다. NL 경향의 속성이 이념성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보다는 일정하게 포퓰리즘적 성향을 띠는 것과 연관되는 것이다.

    반면 참여계는 인천연합과 같은 전통적 운동세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또 반면에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이념적 색깔을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었다. 이들에게는 ‘사회민주주의’도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체감되었던 것이다. 참여계 일부의 ‘민들레당’ 지지가 2순위에서는 사민당보다는 정의당을 선호했던 이유이다.

    통합연대 경향의 이들에게는 당의 재창당과 진보 혁신의 상징이 ‘사민당’으로의 당명 개정이었다. 재창당과 혁신의 다른 요인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민당’, ‘사회민주주의’의 표방이야말로 그것을 담보하는 유일한 근거였던 것이다. 이들이 사민당 당명 채택 불발에 대해 실망감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간극들이 이후 어떻게 해소될지 혹은 불거질지 지켜볼 일이다.

    노동당, 두 번의 당대회와 수많은 표결 끝에 결정

    진보신당에서 노동당으로 변경되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 이념과 노선 논쟁적 성격과 당 내 주류에 대한 비주류(?)들의 반발이라는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진보신당에서는 2008년 창당 당시부터 진보신당의 과도기적 성격을 종료해야 한다는 요구가 당명 재개정이라는 요구로 오랫동안 있었다. 과도기적 성격이라는 것이 명칭에서 온 것은 아니지만 그 명칭 개정을 통해 과도적 성격을 종료하고 싶은 심정적 이유도 적지 않았다.

    그 누적된 욕구가 2012년 총선을 거치면서 정당 등록이 취소되고 다시 재등록을 하는 당 전열 정비 과정에서 강하게 불거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2012년 총선 이전 사회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당명 개정을 약속했던 것과도 연결된다.

    하여튼 진보신당의 당명 개정 과정은 6월에도 7월에도 선호하는 이념적 지향을 담는 명칭을 다수결로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진보정의당과 달리 그 기준이 2/3이었기에 절대 다수의 공감대를 얻어가는 과정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말 그대로 의미 있는 ‘작명’들이 많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핵심적 대치선은 노동당(6월에는 녹색사회노동당)과 무지개사회당이었다. 여기에는 당 명칭에 대한 논쟁의 한 편에 녹색사회주의연대 등 당 주류세력들에 대해 구 사회당과 일부 비주류세력들의 기존 당 운영에 대한 비판적 평가라는 성격도 혼재되어 있었다.

    노동의 가치 속에 다양한 진보의 가치와 노선들이 포함되어 있고,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이라는 대중적 상징이 뚜렷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무지개 진보노선을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에는 노선적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다.

    또한 여기에는 노동정치 진보정치 전체의 흐름과 상황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판단과 진보신당의 독자성을 장기간 더 뚜렷히 해야 한다는 판단의 차이도 깔려 있다. 그 차이가 이후 어떻게 나타날지, 혹은 어떻게 해소될지 지켜볼 일이다.

    미래는?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녹색당이라는 이름보다는 정의당, 노동당, 진보당, 녹색당이라는 이름이 각자 차이는 있지만 보다 더 뚜렷한 변별성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들의 진보가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지, 어떻게 진보를 재구성하려는지를 그 명칭에서 조금씩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구나 다 알 듯이 이름이 그이의 본질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재옥 진보신당 전 부대표가 당게시판에서 썼듯이 자신의 이름은 자신이 가장 많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대중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것이다. 자기가 보는 얼굴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비친 얼굴이 자신의 본 모습이라는 것이 ‘정치’의 역설이고 속성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 하나는 진보진영 내에서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진보당이 각자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과 독립적으로 진보진영이 그 이름이 무엇이든 새누리당의 보수세력, 민주당과 안철수세력 등 중도세력과 다른 제3세력으로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과제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물론 진보 일각에서 나오는 제3세력을 포기하고 새누리당과 비(非)새누리당의 양자 구도 속에서 한 블록과 분파로 진보진영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과제도 달라지는 것이다. 역사적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포기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세와 포지션은 진보 내 다른 세력을 어떻게 호명하고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카톨릭의 역사에서 바티칸 공의회 1차 회의와 2차 회의는 큰 차이를 보였고 특히 2차 공의회는 카톨릭에서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평가한다. 1차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류설을 견지하면 개신교 등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면 2차 회의는 개신교를 ‘분리된 형제’로 규정하며 타 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적 입장을 거두었다. 우리의 진보는 어떤 미래를 그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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