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이고 쥐어짜고 줄이고 회피하라"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비정규교수 문제 해법-1
        2013년 07월 22일 03: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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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위원장이 두 번째 주제의 기고 글을 보내왔다. 주제는 ‘비정규교수 문제의 해법: 정년 보장 정규교수 100% 충원과 연구강의교수제 도입’이다. 하지만 이 두 번째 기고 글이 길어서 두번에 나누어 게재한다. 그리고 이어서는 세 번째의 주제 ‘실천과제들: 교육대산별? 교육공공성 확보, 대학지배구조 개혁과 개입, 교육혁명대장정’에 대해 임 전 위원장의 글을 게재할 예정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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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번째 주제의 기고 글 링크

    1. 2010년대 대학 구조조정의 몇 가지 방식

    대학이 기업화되었느냐를 따지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영리공간과 영리사업의 확대, 기업식 운영 방식 도입, 기업문화 창궐, 대학 의사결정구조에서 자본의 직접 지배 등이 주로 거론된다.

    대학이 기업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인건비 절감 욕구는 [자본론]의 표현처럼 ‘흡혈귀의 유혹처럼’ 다가온다. 인건비 절감은 자본주의 대학 구조조정의 본질적 측면이다. 구조조정의 철칙은 “속이고, 쥐어짜고, 줄이고, 책임을 회피하라!”이다.

    속이기

    한국에서 취업률이 낮은 대학은 퇴출되기 십상(정부의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이기에 많은 대학은 취업률 부풀리기에 고심한다. 대학 안에 알바 자리(예: **조교라는 명칭의 ‘반듯하지 못한’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취업률을 높인다. 취업률 조작도 어렵진 않다. 대학통폐합도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서 대충한 뒤 상생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 운운하는 것은 ‘지적 사기’에 다름없다.

    교원확보율은 원래 법정교원확보율(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로 직급이 구분되는 고등교육법 14조2항의 전임교원만 포함한 비율)만 인정해야 하지만, 교육부는 겸임교수와 초빙교수 등이 포함되는 교원확보율 제도를 만들어 그것으로 대학을 평가한다. 법정교원확보율은 당연히 100% 확보가 기본이나 교육부는 60% 정도만 되면 불이익이 없도록 하여 대학에 면죄부를 준다. 법정교원확보율은 이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는 교육부-대학(대교협) 커넥션에 따른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쥐어짜기

    대학은 교원들의 평가를 좋게 받는 확실한 방법인 연구실적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때로는 연구실적이 높은 비정규교수를 전임교원으로 발령내어 평가를 잘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한다.

    비정규교수들 중 교원확보율에 포함되는 사람은 정규교수보다 더 많은 연구실적을 강요받는다. 정규교수들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저술이나 번역 및 교육에 힘쓰기보다 연구실적에 도움이 되는 일에 목을 매단다. 평가도 평가지만 연구실적에 따라 급여 차이가 많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년트랙에 배치된 비정규교수의 경우 재임용 심사 탈락은 곧 해고이기에 연구실적을 높이기 위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학 운영에서 전임교원의 강의담당의무시수를 늘리는 것은 기본이다. 대학 교원에게 1주일 9시간의 강의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은 편인데도 1주일에 12시간, 15시간을 하지 않으면 성과급 등에서 패널티를 먹이기도 한다.

    대학은 정규교수들에게 ‘상호약탈적 성과급’을 강요한다. 교직원들에게도 성과급이 강요된다. 기존의 정규교수들에게 적용하기 어려우면 신임 정규교원부터 적용한다. 2~3년 전부터 국립대학 신임 정규교수도 성과연봉제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총액을 정해 놓고 누군가는 더 많이 가져가고 누군가는 더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성과연봉제이다. 대학구성원 대부분은 이 잔혹한 검투사의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줄이기

    전임교원의 강의담당비율을 높이려면 당연히 전임교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대학은 오히려 비정규교수를 대량해고하고 기존의 정규교수에게 잔업수당(초과강의수당)을 안겨주는 방식을 택한다. 도처에 해고라는 사회적 살인을 당한 비정규교수가 넘쳐난다.

    최근 2년 동안 최소 1만 명 이상의 비정규교수가 강단을 떠나거나 일감이 줄었다. 지식공장의 정규노동자는 일을 더 하면서 잔업수당을 챙기고, 그만큼 비정규노동자가 해고당하는 꼴이다. 교직원 역시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대기발령기간동안 비정규직으로 견습생처럼 일한다. 정규직이 나간 자리는 비정규직 직원으로 채워지고, 이들은 노조에도 제대로 가입하지 못한다.

    학생들에게도 ‘줄이기’는 교육환경 파괴의 방식으로 강요된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줄여 더 적은 강의를 듣게 하면서도 등록금은 더 받는다. 최대수강인원을 늘리고 폐강기준을 강화하면서 더 적은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심대하게 훼손한다. 다양한 강좌는커녕 획일화된 일부 강좌에 학생 상당수를 밀어넣고 게을러서 수강신청을 하지 못하였다고 타박한다.

    학과통폐합을 통해 필요 강좌와 교직원 수를 줄인다. 정규교원과 정규교직원 수 줄이기, 강좌 축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예전에는 정규직으로 뽑혔던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교원의 예를 들면 초빙교수, 겸임교수, 비정년트랙교수, 강사를 쓰면서도 법적 지위가 있는 교원을 쓴 것으로 위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는 대학 구조조정의 대표적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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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책임 회피

    외주화는 대학의 책임을 부정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청소, 시설관리, 식당, 기숙사 관리는 이미 오래전에 외주업체로 넘겨 버렸다. 이제 어학교육원과 전산교육원도 거의 다 외주로 넘어가고 있다. 다음에는 글쓰기 등 대량으로 분반이 개설된 강좌들에 대한 구조조정일 것이다. 대학은 글쓰기 교과목의 운영을 학원에 넘기고, 학생들은 필요학점 이수를 위해 추가 학비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부실재단들은 외주화보다는 아예 자산을 팔아 이득을 챙기면서 대학운영권을 다른 곳에 넘기는 방식에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미 새누리당은 관련 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학을 운영하던 재단이 운영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대가로 대학 자산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신나게 돈 벌고 폼 나게 팔아 한 세상 즐기는 가진 자들의 천국이자 자본의 신전-학내에서 계급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만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자본 축적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신전-이 대학의 현재 모습이다.

    2.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비정규교수 문제의 올바른 해법

    비정규교수노조가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대안은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로 법정 전임교원확보율 100%를 달성하고 연구강의교수제를 보완적 대책으로 도입하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오해에 대한 답변과 주요 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정규교수 문제는 인력 수급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강사가 자살했다거나 처우가 열악하다는 기사가 뜨면 우리나라엔 박사와 강사가 너무 많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 교수가 더 늘어나는 건 곤란하다는 얘기를 한다. 한마디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아 생긴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두 가지 중요 사항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교수 수는 너무 적다. 법정교원확보율이 70%를 넘는 대학은 얼마되지 않는다. 계열별로 따져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돈이 되는 의학계열의 법정교원확보율은 대체로 차고 넘치지만 인문사회계열의 법정교원확보율은 50%대가 수두룩하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재학생 기준으로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5명 이상으로 나오는데(휴학생을 포함한 재적생 기준으로 하면 35명 수준. 전문대학은 4년제 대학의 1.5배 이상. OECD 평균은 교수 1인당 학생 15명.), 이는 곧 콩나물 교실로 이어진다. 대학에 다녀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의 학생 수가 많은지 대학 강의실의 학생 수가 많은지.

    법으로 정한 법정교원확보율만 100%를 유지해도 문제의 상당부분은 해결된다. 학령인구가 감소해도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줄이고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면서 대학 교육을 내실있게 하기 위해서는 비정규교수 문제를 꼭 해결해야만 한다.

    둘째, 비정규교수 문제는 박사학위자가 별로 없을 때에도 있었고 강사 수가 얼마 안 될 때도 있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존재하는 문제인 것이지 학위의 남발이나 큰 규모의 문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런 것이 없어도 비정규교수 문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정규교수 문제는 1962년에 박정희가 쿠데타 직후 지식인을 통제하기 위해 ‘국립대 시간강사 강사료 지급규정’을 만들고 난 뒤 더욱 악화되었고,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1980~1990년대에 심화되었다.

    정규교수가 되지 못한 교원들이 시간급에 갇힌 일용직으로 수 만 명 존재하는 데도, 법으로 정한 정규교수 수를 채우지 않아도 되도록 정부-대학이 협잡했기 때문이다. 비정규교수 문제는 철저히 국가와 자본이 만든 문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 나무라기가 아니라 체계 나무라기의 입장’을 택하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현 체제와 시스템을 뒤바꿀 수 있는 세력 교체를 염원한다. 민주당이나 엇비슷한 집단으로 정권을 바꾸어 봐야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이 보인 행태를 보았을 때 올바르고 근본적인 비정규교수 대책을 수립할 리 만무하다.

    왜 강사가 아니라 연구강의 ‘교수’인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강사가 아니라 연구강의교수라 칭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드러내고 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비정규교수들도 연구를 한다.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까지 절반 가까운 수업을 비정규교수들에게 듣는다. 비정규교수도 정규교수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점도 부여한다. 그런데 왜 강사라고 하는가. 우리를 강사라 부르려면 정규교수들도 서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라 구분해서 불러야 온당하지 않겠는가.

    신참 강의자이거나, 학위가 없거나, 젊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비정규교수와 정규교수는 다르다고 어떤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 간 격차를 집단 간 차별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강의 경력이 짧은 상태에서 정규교수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전공에 따라 박사학위가 없는 정규교수도 상당수 있으며, 정규교수와 비정규교수의 4년제 대학 155개 대학 강의평가 결과는 거의 같았다.

    강의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젊은 비박사 조교수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르고 있는가. 강의를 10년 하고 강의평가 점수가 높고 50세 된 박사 비정규교수(특히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또 무엇이라 호칭하고 있는가. 시간강사, 강사라는 제도와 용어 자체를 폐기해야 차별을 해소할 수 있기에 대안 수립에서 명칭은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에, 지금은 정년 퇴임하신 은사 한 분으로부터 당신을 교수라 부르지 말고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것이 당신을 존중하는 것이라 배웠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다른 정규교수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필자는 정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지도교수를 ‘선생님’이라 하고, 지도교수는 필자를 ‘교수’라 부른다. 운동적 차원에서 말이다. 대학의 교원에게는 모두 ‘교수’라는 법률적 용어를 사용토록 하고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르자는 마음이 당긴 제도의 명칭이 연구강의교수제이다.

    풍선효과 방지를 위해 각종 비정규교수 제도 통합 관리

    연구강의교수제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정규교수-비정년트랙 전임교원, 비정년트랙 비전임교원, 겸임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전문경력인사교수, 기금교수, 임상교수, 외래교수, 시간강사 등 정년이 보장되는 트랙에 배치되지 않는 모든 비정규교수-제도를 ‘통합’하고, 이들이 연구와 강의를 주로 담당하니까 ‘연구’, ‘강의’, ‘교수’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제도이다(이전에 전임교원의 가장 낮은 직급이 전임강사였는데 이를 줄여 ‘전강’이라 많이 불렀다. 연구강의교수는 줄이면 ‘연강’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즉, 시간강사에게만 교원지위를 부여할 경우 교원이 아닌 다른 비정규교수들이 양산되고 이들이 하층을 차지하게 될 뿐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제대 비정규교수 구조조정 대응 투쟁1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가 시간강사를 전업강사와 비전업강사로 구분하니까 대학들은 강의료를 적게 줘도 되는 비전업강사를 양산해 왔다. 국립대학에서 비전업강사는 2013년에 시간당 30,000원 정도를 받는다. 반면 전업강사는 시간당 80,000원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국립대학에서 몇 년간 비전업강사의 수는 2배 이상 증가(현재 4만명!)하였다. 대학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겸임교수와 초빙교수가 대폭 증가한 것도, 또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임용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인건비 절감과 직결된 것이다. 그렇기에 비정규교수를 통합하여 관리하지 않는다면 한 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불이익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대학의 책임성 담보가 우선

    연구강의교수제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은 정부가 교육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고등교육재정을 확충하여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사립 중·고등학교의 교사 인건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재원이다. 재원 확보 없이 비정규교수의 처우개선이나 권리보장은 불가능하다. 재정추계가 없는 법안들은 공허하다. 재원은 기본적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고등교육재정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 돈을 비정규교수 인건비로 지원하는 것에 비례하여 등록금을 감액하면 등록금 규모도 대폭 줄일 수도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등록금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등록금으로 교원과 교직원의 인건비를 주는 시스템을 바꾸어야만 한다. 국립대학 기성회비 제도의 폐지는 당연하다. 교원과 교직원의 부족한 급여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할 것이 아니라 정부에 요구하고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부가 ‘부족한 재원을 던져놓고 알아서 나눠먹으라는 총액인건비제’와 같은 방식을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교직원이 내야 할 연금액 일부를 학생들 등록금으로 충당하여 적발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어디 연금만 대납하겠는가. 어디 그 대학들뿐이겠는가. 부산의 어느 유명 대학은 학생 등록금에 포함된 기성회비 수백억 원을 특정 건물을 짓는데 담보로 쓰기도 하였는데(결국 그 대학 총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러한 비리 역시 그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인건비와 공사비 등을 학생 등록금으로 채우지 못하도록 해야 등록금이 뻥튀기 되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적어도 교원과 교직원의 인건비는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교육권 보장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는가에 대한 책임을 교원과 교직원에게 묻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정규교수 문제부터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보자는 게 필자의 제안이다.

    대학설립운영규정 등을 보면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기준 이상의 교사, 교지, 교원을 확보해야 한다. 사립대학의 경우 정년을 보장받는 트랙에 배치된 정규교수의 인건비는 재단이 부담하는 것이 기본이다. 재단 전입금에서 인건비 전액을 부담할 수 없다해도 사학연금이라든지 몇 가지 주요 사항만큼은 꼭 책임져야 한다.

    인건비 일부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할 경우에는 반드시 학생 대표단의 입장이 강력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학생 한두 명 끼워 넣는 ‘등록금심의위원회’로는 탐욕의 폭주를 결코 막을 수 없다.

    교원과 교직원의 생활임금이나 연금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한 재단은 대학을 운영할 자격이 없다. 그런 부실재단은 퇴출하고 그 대학은 국공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국립대학의 경우 인건비는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문제는 정부가 그걸 먼저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국회-정부(교육부만이 아니다. 재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 수 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등 각종 부처들도 다 공범들이다)가 공모한 최악의 합작품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이다.

    그런데, 교육공공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재정 책임을 지자고 주장하면 일각에서는 ‘사립대 적립금을 환수’하여 재원을 확보하자고 한다. 필자가 그 적립금이 부당하게 축적된 것이라면 10조원 이든 그 일부든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그 돈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돈을 낸 사람들인가, 국가인가? 둘째, A대학의 적립금을 B대학이나 C대학이 사용할 수 있는가? A대학 구성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셋째, 적립금이 거의 없거나 작은 규모인 대부분의 대학들은 어디서 재원을 마련하는가? 넷째, 사립대 적립금 규모 정도로 비정규교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몇 년도 제대로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필자는 부당한 적립금 환수에는 동의하지만, 그 적립금을 비정규교수 문제 해결에 쓰자는 주장의 적절성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교수 문제 해결에 들어가는 재원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고등교육 예산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예산을 조정하거나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떤 이들은 정부가 재정을 대는 것에 대해 부실 대학에게 돈다발을 안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강의교수의 인건비는 대학이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비정규교수가 인건비를 수령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이기에 대학의 배를 불릴 부작용은 없다. 인건비를 정부로부터 받으니 비정규교수가 재단의 눈치를 덜 봐도 된다. 다만, 비정규교수를 쓰는만큼 대학도 그에 상응하는 재정 투여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정규교수보다 비정규교수를 더 많이 쓸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계속>

    필자소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 경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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