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 1조 정신의 역사
[책소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박찬승/ 돌베개)
    2013년 07월 20일 0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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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정체를 밝힌 우리 헌법의 첫 문장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문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우리 헌법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조항이 담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군주국의 나라였고, 대한제국은 전제군주국을 표방하기도 했다”면서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불과 9년 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면서 출범”하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이어받아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동기를 밝힌다.

저자가 제헌헌법 제1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조문이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규정하는 선언인 동시에, 이 조문이 헌법에 명문화되는 과정이 곧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성립되는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구한말 서구의 정치제도의 소개로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한 입헌정치와 민주주의가 망국亡國과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쳐 어떻게 제헌헌법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담고 있다.

▶ 군주국의 나라 한국은 어떻게 민주공화국이 되었나?

1919년 3월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라고 선언했고, 9월에 통합된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 인민 전체에 있음”을 선언했다. 오늘날 제헌헌법의 기초가 되는 핵심 선언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임시헌장 제1조가 표방한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용어”였다고 주장한다.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이나, 유럽과 구미 각국의 헌법에서도 나오지 않는 용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대한제국기에 유학생들이나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 ‘민주공화제’나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곧 한말 대한협회, 도일유학생, 그리고 미주동포들이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민주공화제’ 유형, 그리고 미국의 민주공화제 모델을 염두에 두면서, 새로 세워질 나라는 민주공화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임시헌장을 기초한 조소앙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본문 137~141쪽)

1948년 제헌헌법의 제1조는 1919년 임시헌장 제1조를 잇고 있다. 그러나 제헌헌법을 기초했던 유진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에는 또 다른 취지가 있음을 강조한다.

보통 공화국이라 하면 세습군주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를 말하고, 또 20세기 초기에 이르기까지에는 공화국과 민주국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각 민주국가는 ‘공화국’의 명칭만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근시에 이르러서는 공화국 중에도 권력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정체를 채택하는 국가도 있고 (중략) 공화국의 정치 형태가 동일하지 않으므로, 본 조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라는 명칭만을 사용하지 않고, 권력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공화국임을 명시하기 위하여 특히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본문 339쪽)

즉 유진오는 국체로서의 공화국, 정체로서의 민주국이라는 개념을 합하여 ‘민주공화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공화국’이 아니라 굳이 ‘민주공화국’이라 한 것은 권력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공화국임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던 ‘인민공화국’의 경우 권력분립이 아닌 권력집중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구분하기 위하여 ‘민주공화국’이라고 표현했다는 의미였다.

1919년 이후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서 ‘귀족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하여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1948년의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인민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해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는 제헌헌법 제2조를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제헌헌법 제1조를 뒷받침하는 조항인 제헌헌법 제2조 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의 권력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곧 주권이 군주나 자본가 혹은 노동자와 같은 특정한 계급에 있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헌법학계에서는 민주공화국은 곧 공화국이며, 이는 군주국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지만, 이처럼 제헌헌법 제1조에서 단순히 ‘공화국’이라 표현하지 않고 굳이 ‘민주공화국’이라 표현한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민주공화국

▶ 근대 한국인들은 어떤 나라를 세우려 했는가?

제한군주국과 입헌군주국

서구의 정치체제에 대해 한국인이 알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이었다. 유길준, 박영효 등 조선의 개화파는 이 가운데 일본의 사례를 모방해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제한군주국을 거쳐, ‘군민공치’君民共治의 입헌군주국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 운동은 모두 그러한 연장선 위에서 일어난 사건과 운동들이었다. 여기서 군민공치제는 행정·사법·입법의 삼권분립과 의정에서 입법을 하고 군주가 이를 허락하여 반포하는 절차를 통해 법이 시행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저자는 1910년 망국 이전까지는 국내 지식인들이 대체로 입헌군주제에 대한 지향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화국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으로 무너진 뒤, 국내외의 지식인들은 독립 이후 세울 새로운 나라로 ‘공화국’을 구상했다. 더 이상 ‘군주국’에 대한 주장은 없었다.

이는 1911년 중국에서의 신해혁명의 영향과 독일혁명·러시아혁명이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1919년 3·1운동 당시 국내에서 뿌려진 각종 전단에 나온 임시정부안은 모두 공화국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안창호에 의해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는 기관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국민국가론과 ‘국민=주인론’을, 미주 한인사회에서 설립한 미주 공립협회는 기관지 『공립신보』를 통해 국민국가론과 국민주권론을 드러내며 공화제로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문 104~109쪽)

1919년 9월 상해의 임시정부와 러시아령의 대한국민의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출범시켰고, 임시의정원을 통해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헌법」을 제정했다. 곧 1880년대 이후의 제한군주제·입헌군주제 운동, 그리고 1910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국민주권·공화제 운동이 ‘민주공화제 임시정부’로 하나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조소앙의 삼균주의

1930년을 전후하여 중국 관내 독립운동은 정당 중심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들 정당들의 당의黨義와 당강黨綱은 대체로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에서의 균등”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균등’은 기본적으로는 ‘기회의 균등’, ‘권리의 균등’을 의미하지만 결과적으로도 어느 정도 ‘고르게 잘 사는 것’을 지향했다. 공산주의에서 강조하는 결과의 ‘평등’이나 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능력에 따른 결과상 불평등의 인정’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럼 좌우를 불문하고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주요 정당들의 기본이념으로 채택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과거 조선 사회를 매우 불평등한 사회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이 보는 조선 사회는 일부 양반 가문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토지 소유 또한 매우 불균등하고, 신분제가 엄격하여 일부 계층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평등은 일제 지배하에서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즉, 일제가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온갖 악법으로 한국인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일인 지주와 자본가들이 토지를 겸병하고 경제권을 독점함으로써 한국인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있고, 교육에서는 차별교육과 제한교육이 실시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삼균주의는 ‘제3의 이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당시 한국의 실정을 감안한 독창적인 이념이었다고 강조한다. 곧 해방 후 새롭게 세워질 나라는 이와 같은 이념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본문 365쪽)

삼균주의는 1940년대 이들 정당의 임시정부 참여로 건국강령에 반영되면서 이후 제헌헌법에도 그 정신이 반영된다.

민주공화국과 인민공화국

그럼 해방 후 남북한 좌우의 정치 세력은 각기 어떤 국가를 세우려고 했을까? 해방 직후부터 미소공위 결렬 전까지 좌우파 정치 세력은 새로 세워질 국가의 정치체제를 구상한다. 먼저 우파는 민주공화국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우파 쪽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개원된 민주의원은 「대한민국임시헌법」이라는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임시헌법의 정부 형태를 보면,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독특하게도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을 주고 있었다. 또 국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며, 국무총리와 국무원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의회에 선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곧 대통령제에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가미한 정부 형태였다.

반면 좌파는 인민공화국 체제를 염두에 두었다. 여운형과 허헌, 박헌영 등이 주축이 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조선민주공화국임시약법」의 헌법 시안을 마련했다. 여기서 권력의 기초는 모두 인민대표대회에 두고 있었다. 입법기관인 인민의회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된 인민의회 의원으로 구성하며, 중앙인민위원회가 내각의 역할을 하는 정무위원회가 되고, 대통령은 정무위원회의 결의에 의하여 권한을 행사한다.

이와 같은 정부조직은 훗날 북한의 인민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그대로 현실화된다. 민주공화국이 삼권분립과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전제로 하는 반면, 인민공화국은 인민대표대회에서 의회의 구성원은 물론 내각을 구성하는 최고 통치자, 법원과 검찰의 책임자도 선출하는 등 인민대표대회에 사실상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다. (본문 276~282쪽)

▶ 제헌헌법에 담긴 건국정신 ‘공화주의’ –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조화

그럼 제헌헌법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국가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제헌헌법의 기초 작업을 했던 인물들의 증언과 제헌헌법의 내용을 분석하며 그 속에 나타난 기본정신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저자가 보기에 제헌헌법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헌법이다.

저자는 제헌의원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본가와 지주층에 의해 권력이 농단되는 금권정치의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의원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무한정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특히 저자는 제헌헌법의 ‘경제’라는 장에 주목한다.

6장 ‘경제’의 첫 부분에는 임시정부 헌법이나 건국강령에는 없었던 조항이 있었다. 즉 제84조에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는 조항이 있다. 각 개인의 경제활동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또 위에서 본 제15조의 재산권과 관련된 조항의 앞부분에서는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유진오가 헌법에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개념까지도 담고 싶어 했는데, 그러한 생각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곧 제헌헌법의 경제 조항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자유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이에 일정한 통제를 덧붙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 350~351쪽)

제헌국회는 남한의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주류 인사가 빠진 채 한민당과 이승만의 독립촉성회 등의 우파 세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헌법기초위원회의 서상일 의원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제헌헌법은 그 정신에 있어서 임시정부를 계승하고자 했고, 임시정부의 삼균주의가 제헌헌법의 만민균등주의로 계승·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제헌헌법은 힘 있는 자, 부유한 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여러 조항을 두고 있으며, 공공부문에서의 사회적 소유(공유)를 적시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헌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로 이끌어내려고 했을까? 저자는 제헌헌법 제5조를 주목한다. 제헌헌법 제5조(“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에서 보듯, 제헌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양자를 조화시킬 것을 중요한 의무로 삼고 있다. 곧 국가는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공화주의’라는 개념을 도출한다. 공화국을 의미하는 ‘res publica’는 ‘공공의 것’, ‘공공의 일’이라는 뜻으로도 번역된다. 곧 민주공화국이란 “법과 공공성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제헌헌법에서 지향한 공화국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였다고 강조한다. 제헌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으면서, 양자의 대립적 측면을 공화주의로써 조화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이자 건국정신은 ‘공화주의’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문 354~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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