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이성의 유효한 가치들
    2013년 07월 19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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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말을 처음으로는 1995년에 접한 것 같습니다. “탈근대”, post-modern의 일본적, 내지 한국적 번역어 말입니다. 그 해 체코, 프라하에서의 한 학회에서 만난 재독학자 송두율 선생님은, 그 단어를 한국어로 글쓰기하면서 본인이 처음 썼다고 주장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걸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이미 1980년대말부터 post-modern이 활발히 논쟁돼온 유럽에서 사시는 분인지라, 그러 논의에 맨 먼저 노출되셨을지도 모르죠.

국내에서는 얼추잡아 김대중, 노무현 집권기, 즉 온건 민주화 운동의 일부 대표자들이 집권해서 주로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실천했을 때가 “탈근대” 논의의 전성기이었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1991-1992년까지 “탈자본주의”를 이야기하셨던 분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살짝 빼서 그 대신 “근대”를 넣어 “탈근대” 담론의 장으로 이동하시기도 했습니다.

“탈자본주의”는 지루하고 자칫하면 “권위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는 일련의 상당히 고통스러운 현실적 행위–노조 건설부터 전위당 건설까지–를 의미할 수 있었지만, “탈근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감옥행을 각오하고 현장에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문화영역”에서, 아주 “쿨하게”, “담론”으로 근대를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그 당시에 유행해진 “탈근대적” 이야기 중에서는 제게 크게 어필한 부분은 아마도 탈민족주의 정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설이지만, 외세에 대단히 의존적이었던 박정희와 같은 한국의 지배자들이, 현실에서 그 잘난 “수출 주도 개발”에 필요불가결한 “외국시장”에서 미국과 일본이 80%를 차지해 대미, 대일 의존성이 절대적이라 해도, “담론”의 장에서는 충효사상부터 가족국가적 발상에서 비롯된 파쇼적 종족주의까지, 최악질의 민족주의적 망상들을 다 이용해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종족적 폐쇄성이야 좀 퇴진됐지만, 자녀들을 외고로, 아니면 일찌감치 아예 미국으로 보내는 강남족들이 제일 선호하는 표현은 “국가경쟁력”이 아닌가요?

하여간, 위선에 가득찬 저들의 국가 지상주의에 염증이 나서 “탈민족·탈국민”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탈근대” 이야기는 꼭 “탈민족·탈국민”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민족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잠재력이 많은 개념들까지도 부정의 대상에 올랐습니다.

근대적 (부르주아적) “합리성”이라면, 저도 분명히 억압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성을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이윤 최대화에 대한 계산을 위주로 하는 “합리성”이라면, 말 그대로 사람을 잡는 마귀일 뿐입니다.

가령, 포스코가 인도의 오리사주에서 지으려는 제철소는 “임금, 근방의 철광 매장량, 시장 잠재력”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즉 “시장성이 있는” 프로젝트로 보이지만, 자기 땅에서 쫓아고, 반항하면 살인의 위협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포스코의 현지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의 “합리성”은 파괴와 폭력만을 의미합니다.

포스코

포스코의 철수를 요구하는 인도 현지인들의 시위 모습

크게 봐서는, 자본주의적 근대를 비판하는 한도 내에서는 저만 해도 “탈근대”의 주장에 거의 모든 면에서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데, 근대라는 개념 내지 실천의 장은 과연 국가와 자본의 운동에 국한되는가요? 가령 보편적 이성이라는 근대의 개념을 봅시다.

과연 미셀 푸코 류의 주장대로 이성은 이성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억압”에 불과할까요? 이성의 정의들이 다양한데, 예컨대 타자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서로 연관되고, “나”의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타자의 고통도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보편적 이성의 규정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가하는 주체가 “우리”라고 상상되어지는 집단의 일원임에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리사주 주민들의 악몽인 포스코(관련 글 링크)와 한국 비정규직, 하도급 노동자의 악몽인 “무노조 경영의 왕국” 포스코 (관련 글 링크)가 하나라는 점,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등 각국의 포스코 피해자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근대적 이성”에 의해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종교집단/문화권 사이의 “경계”가 훨씬 더 절대시됐던 전근대에 이와 같은 보편적/세계적 반항의 연대는 과연 가능했을까요?

요즘 전근대는 중산층의 “문화 소비 대상”에 올라 우리에게 아주 미화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문화재 답사기>류의 책에서 등장되는 아담한 사찰 풍경의 사진, 궁중 요리 붐,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 사이의 애증이 엇갈리는, 그러나 그러면서도 너무나 다이나믹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다루는 무수한 대중적 저서, 좀 교양인 행세나 하려는 사람들이 꼭 읽으려는 추사 김정희의 평전…물론 전근대를 “아는” 것이야 나쁠 것도 없고 또 거기에서 한의학처럼 쓸만한 요소들을 (근대 과학과 접목시켜) 건져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봅시다.

옹방강(翁方綱)이나 완원(阮元) 등 고상한 귀족 김정희의 너무나 고상한 중국 친우들은, 18세기의 청나라가 준갈한국을 상대로 벌인, 결국 약 1백만 명의 유목민의 목숨을 빼앗은 제노사이드적 전쟁을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전쟁과의 투쟁, 내지 전쟁을 하지 않고서는 “국운 융성의 시기”를 보낼 수 없었던 제국과의 투쟁까지 요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비판이라도 말입니다.

천만의 말씀,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의 전통에는 “지나친”, “불필요한” 전쟁에 대한 비판의 사례는 있어도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동이서융남만복적 정벌”은 그저 천자의 신성한 “”평천하” 행위이었습니다. 수백 만 명의 목숨을 짓밟는 이 “치국평천하”에 본격적으로 맞설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근대적 이성의 발견이었습니다.

근대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 파괴의 시대인 동시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 그리고 전쟁으로 먹고 사는 국가와의 본질적인 조직적 투쟁,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 전쟁하는 국가를 넘어설 수 있다는 현실적인 확신, 그 이념을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투쟁 등이 가능해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 양면을 아울러 같이 봐야 하지 않나요?

전근대에는 주인의 비인 (非仁)을 억울하게 여겨 공개적으로 자살하는 노비는 상상될 수 있어도, 노동자들의 “스스로 주체되기”를 갈망하면서 자기 몸을 불태운 전태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전근대적 계급 사회에서도 예속 관계에 옭매인 하위자는 “주체”가 될 수 없었죠.

중세 유럽에서는 끝없는 전쟁에 지쳐 벽지의 수도원에 수도승으로 들어가는 종교인을 상상할 수 있어도, 기독교인이자 사회주의자인 스테판 홉하우스 (관련 글 링크)처럼 세계대전 와중에서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감옥 안에서도 계속 그 규율과 비타협적 투쟁을 해서 죽음의 문턱에 가는 투사를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성을 보유하는 인간이 왜 굳이 종교를 가질 필요가 없는가를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한 러셀 (관련 글 링크)과, 왜 사회주의만이 이 세계를 파탄으로부터 살릴수 있는가를 논리적으로 논의한 아인슈타인 (관련 글 링크)의 근대성이야말로 제가 애호하는 근대성입니다. 그 근대까지 우리가 “脫”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요?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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