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연합정당' 실험이 필요
    연합정당(블록정당) 모델이 더 ‘현대적 표준’이 아닐까 생각해봐야
        2013년 07월 15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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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민교협 공동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보정치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단상을 올렸다. 여러 정당으로 분립 분화되어 있는 진보정치의 현실에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재편과 재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그 실천적 맥락과 상통하는 의미있는 제언이라는 생각에, 조희연 선생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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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적은 것은 메모노트이며, 아주 가설적인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표준적인 근대적 정당모델은 ‘단일한 성격을 갖는 계급정당’이었다. 우파 정당이건 좌파정당이건 이러한 ‘단일성의 신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좌파정당에서도 이러한 ‘단일성’은 열악한 조건에서 어떻게든지 변혁을 위해 ‘철의 규율을 갖고 정치사상적 통일성’을 갖는 정당을 이상화하는 식으로 표현되었다(이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사회의 다양화와 정치적 정체성의 분화, 소수자적 정체성의 부상 등을 생각해볼 때, 정당모델도 재인식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도 고민 중이다.

    근대 초기의 민주주의는 압도적으로 ‘다수자 통치’모델로 사고되었다. 그러나 이제 ‘소수자의 문제’가 생겨났다. 그리고 ‘차이’들이 중시되기 시작하였다. 철학적으로도 모든 개체들이 특이성을 갖는 존재로 개념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면서, 정당모델도 새롭게 사고할 수는 없는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 계급정당이 퇴조한 대신에 이른바 포괄정당(catch-all party)가 등장하였다. 이것을 계급정당의 희석화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사회의 다양화와 정치적 정체성의 분화에 대응하는 정당의 변신의 의미도 담고 있다.

    연합정당의 성격과 작동방식

    여기서 나는 ‘연합정당’ 혹은 ‘블록정당’을 상상해보게 된다. 단적으로 다양한 집단들이 스스로의 독자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인정받고 그 위에서 다양한 ‘차이를 갖는 정체성들’의 연합정당인 것이다. 내가 상상해보는 것은,

    (1) 여러 정치세력들(이들은 사회적 세력들을 대변한다)이 독자적인 정치적 분립(分立)을 하도록 하고 그 차이들이 존중되는 기초 위에서,

    (2) 여러 독자적인 정치세력들이 연대하는 ‘연합정당’을 구성하는 것이다(이를 통해 보수적 지배블록과 ‘국민적-대중적’ 대치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3) 그리고 이를 위해, ‘연합정당’으로서의 새로운 의사결정구조와 내적 작동방식을 규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규칙에는 다수자의 이니쉬어티브와 소수자의 발언권이 동시에 보장되는 방법이 내포되어야 한다(사실 이 3번째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연합에 대한 논란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총선과 지자체 선거를 둘러싸고 ‘연합정치’ 논의가 많았다. 이것은 ‘정당들 간의 선거연합‘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연합정당은 (선거연합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에서의 공통성을 갖는 정치세력이 연합하는 정당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실험된 ‘연합정치’ 모델은 단지 다급한 조건에서 어떻게든 야권이 연합해서 보수정당을 이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서, 현대적인 다양성의 시대에, 나아가 정치세력도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정치적 정체성을 갖는 시대에, 그것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일종의 ‘블록정당’을 만드는 식이다. 이것이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단일성의 정당’이 아니라-‘공통성의 정당’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사를 보게 되면, 분단 상황에서 레드콤플렉스가 엄존하고 권력의 탄압이 존재하는 속에서, 어떻게든 여러세력이 통합된 ‘통합정당’이 이상적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급진적인 계급적 정체성을 억압하는 조건으로도 작용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염두에 두면서, 오히려 새로운 창조적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아예 급진적인 계급적 정체성을 억압하지 말고 그것을 전면화하게 하고, 단지 그것을 단일정당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일정한 수준의 공통성을 갖는 정당끼리 블록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것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 진보정치세력이—이전의 페북에도 썼지만—현저히 ‘주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국민적-대중적 정당’일 수 가능성을 상실하고 완전히 주변적인 ‘정체성 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87년 이후의 진보정치세력화의 자산을 다 까먹고

    1987년 이후 ‘진보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자산들을 다 까먹고 이제 ‘그라운드 제로’에 서서 다시 20-30년을 전진하겠다는 자세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왜 기존의 진보정치세력화가 실패했는가를 생각할 때, 오히려 그 근저에 사회의 다양화, 정치적 정체성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단일성’의 신화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정작 차이들이 존중되지 않고 더구나 그것이 의사결정 구조에도 반영되지 않고 그 결과 이른바 ‘패권주의’ 논란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모두가 경험했듯이, 0.2%의 지지로 왜소화된 진보정치세력이 4명의 후보를 냈다(2명은 사퇴했지만).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패권주의’를 둘러싼 논란으로 분당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단일한’ 진보정당 모델로 여러 진보정치세력이 공존하기에는 너무 균열이 심화되어 있다.

    자 이런 조건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보수지배체제는 공고화된다.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보수적 지배의 경제적 기반이 완성되었다고 한다면-이제 선거민주주의를 통하여-진보정치세력들이 ‘주변화’되면서 보수적 지배체제는 정치적으로 최종적으로 완성될 상황으로 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이른바 ‘부르주아적 지배체제’의 최종적인 완성은 좌파정당들이 ‘대안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주변적인 정당으로 존재하게 됨으로써 가능했다).

    여기서 여러 정치세력들의 독자성, 정치적 분립을 인정하고 그것이 반영되도록 하는 의사결정규칙을 갖는 연합정치모델을 통해서, 보수적 지배의 최종적인 완성까지 가지 않는 국민적-대중적 대치선을 유지하는 한국적 경로가 없다면, 한국의 정치는 일본의 정치를 따르게 될 것이다.

    연합하는 블록의 범위는?

    물론 최종적으로 문제는 남는다. ‘연합’하는 블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모델이 조희연 선생의 제안과 비교적 유사하다.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모델이 조희연 선생의 제안과 비교적 유사하다.

    즉 만일 연합정당을 사고한다면, 그 연합정당에 어느 정치세력부터 어느 정치세력까지 참여·공존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좁게는 진보좌파세력들이 공존하는 연합정당, 현재의 여러 진보정치세력들을 모두 망라하는 연합정당, 노동진보좌파세력들과 녹색당세력까지를 망라하는 연합정당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혁자유주의정치세력과 진보정치세력 간에 이런 진보-중도 연합정당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안철수세력과 민주당을 포함하여, 중도개혁자유주의정치세력들도 ‘중도적 연합정당’을 사고할 수는 있다고 본다).

    요즘 ‘생태사회당’말도 많이 하는데, 생태환경정치세력과 노동좌파세력이 ‘블록정당’ 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하는 것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연합의 범위는 참여하는 정치세력들이 일정한 ‘정치적 공통성’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고 합의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주체들의 정치적 인식에 따른 가변적인 것이다.

    연합정치에 대한 좌우편향적 인식을 넘어

    또 하나, 이 연합정치를 바라보는 데에도 우경적 편향과 좌경적 편향이 존재할 수 있다.

    우경적 편향은-진보정치세력의 기준에서 본다면-기존의 ‘비판적 지지’처럼 개혁자유주의와의 연대 속에서 스스로의 독립된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좌경적 편향은 연합정치의 합리적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 채, 소수자적인 정치적 정치성의 분립(그리고 이것은 언제가 ‘단일한 다수’가 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만을 유일목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순수한 단일한 정당’ 모델은 사실은 신화이다. 예컨대 진보좌파정치세력들 내부에서도 다양한 균열과 차이가 존재한다. 일정한 국면에서 ‘단일’하다고 인식하는 것도 다음 국면에서는 그 내부의 ‘하위 균열’이 전면화되면서 ‘단일’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연합’과 ‘단일성’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후 제 생각이 심화되면 더 글을 올리지요.

    필자소개
    민교협 공동대표.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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