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진보’운동의 가장 중요한 역사
    [서평]《하늘을 덮다》(민주노총 김** 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메이데이)
        2013년 07월 13일 0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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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중앙당에서 일하던 시절 2009년 7월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 및 피해자 지지모임 공개 제안 기자회견’을 다녀왔다. 그때부터 피해자 지지모임의 진보신당 담당자가 되었고, 2011년 진보신당을 그만두기 전까지 회의에 참석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출간된 백서를 받아들고 나니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과 사건 해결을 둘러싼 여러 가지 고민이 확 되살아난다. 또한 전혀 활동을 함께하지 못했던 정진후 비례후보 철회 운동을 보면서 느꼈던 부채감과 동시에 ‘과도하(게 열심히 한)다’는 어쩌지 못했던 느낌도.

    김** 성폭력 사건에 ‘과도하게’ 대응했던 이유

    특히 이렇게 조직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사건의 경우엔 사건의 발생부터 해결 과정까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오히려 사건의 발생보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느꼈다.

    피해자 지지모임 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해하는 방식은 운동사회의 가부장성, 조직보위론, 정파적 이해관계였다. 매우 추상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교조의 성폭력 징계 재심위원회 결정과 민주노총과 전교조,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당시 민주노동당 등의 공식적 결정, 조직적인 무시와 책임 방기 등을 통해서만 봐도 김**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활동에 동참하면서 운동사회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이유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지지모임을 하면서 피해자 대리인과 더불어 핵심적인 활동을 하던 분들의 ‘과도한’ 분노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 갑갑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문건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전교조 내 관계와 이 사건 발생의 맥락, 그리고 무엇이 피해자 선생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지독하고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고통스럽게 하였는지, 나아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렇게 오랫동안 전교조를 비롯한 일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활을 걸고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드디어 ‘하늘을 덮으려고 했던 힘’의 실체가 드러났다. 심촌(피해생존자) 선생님의 눈물과 피로, 주먹과 가슴으로 쓴 1부의 글은 사건의 진실을 구체적이고 ‘감정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을 읽고 마음이 찢어지면서도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피해자 선생님이 ‘과도하다’고 비판받았던 이유를 가슴 깊이 느낀다. 과도한 것은 이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 자체였고, 그 과도함은 정말 조직의 입장에서는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늘을 덮다

    성폭력이 발생했을 당시, 피해자 선생님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숨겨준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상황이었고, 허위 진술을 위해 성폭력 가해자인 김**과의 개인적 친분을 위장하는 것이 유일하게 주어진 대책이었다. 그 대책을 세운 날 김**은 그 ‘친분’을 성폭력 가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심지어 사건 직전까지 함께했던 전교조 집행부 손○○, 박○○ 또한 그 상황에 함께하며 그것을 동의하거나 묵인했다(돌이켜보건대 양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당시 정황에 밝던 자라면, 게다가 이후 펼쳐진 철저한 묵인의 맥락에서도 더욱 뒷받침되듯이, 광의의 성폭력을 예상하거나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전후 사정의 한복판에 당시 전교조 위원장이 있다.

    여기까지의 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가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싸움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건 발생 이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김**이 술 취해서 그 중차대한 시기에, 조직의 명예를 지키는 데 이용해야 할 인물인 피해자를 상대로 실수를 저질러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입막음과 순응을 위한 조직의 방식과 핵심적 공모자, 그들 자체였다.

    이러한 상황은 추상화되어 조직적 은폐 행위 조장이라는 말로, 2차 가해라는 말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과 2차 가해라는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사건은 유독 ‘2차 가해자’들이 성폭력 사건의 발생과 실제적으로/상징적으로 함께 탄생했고, 그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인정할지 말지를 둘러싸고 전면에 나선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은 재판장에서 심판을 받고 만기출소했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조직적 해결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이 복잡하고도 지난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실수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조직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후속조치를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지지모임의 활동은 실패하지 않았다. 어쩌면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치를 해냈다. 조직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사용된 성폭력이라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이 다시 위기가 되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과 대중의 지지와 침묵을 얻어내는 과정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 한들 이보다 어려웠을까.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

    피해자 지지모임이 백서를 만들겠다고 결정한 시점, 더 이상 전교조와 민주노총에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한 때일 것이다. 몇 년간 사력을 다했지만 진실이 오히려 가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무기였을 터다.

    “더 끔찍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피해 사실을 믿어주지 않고 피해생존자를 정신이상자로 바라보며 차가운 눈빛을 보낼 때다.”(32쪽)

    “사건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비난했고 질타했다.”(33쪽)

    거대한 음모에 맞서 혼자, 혹은 소수가 싸워나가야 하는 스릴러 영화도 아닌데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으로 몇 년을 살아야 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 영화는 영웅이 되거나 실패자가 되는 길밖에 없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피해생존자의 글, 등장 인물들의 실명이 유일하게 드러난 그 글에는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그 의미를 찾아내고,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 건 싸움을 해온 몇 년간의 삶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성폭력 피해의 경험이 신체적으로 발현되는 고통과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분투하면서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묻고 있다.

    이 사건이, 그리고 피해생존자의 이 글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성폭력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성폭력 유형을 처절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성폭력마다 대처하고 대항하는 방식도 각기 다를 수 있다. 피해생존자가 느끼는 고통과 이를 견디는 방식도 다르고, 해결을 위해 누가 어떻게 동참하고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지도 다르다. 운동사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또한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피해생존자가 밝혀낸 진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이 가진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의미를 재차 파악하는 일이다. 이 사건은 조직의 성격과 대표성의 본질, 그리고 진보와 운동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질문과 답을 하는 이들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책이, 특히 피해생존자의 글이 한국사회의 진보운동을 증언하는 중요한 역사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숨죽이고 있는 수많은 싸움과 증언과 시도가 앞으로도 들고일어나는 데 힘이 되기를 바란다. 피해생존자와 지지모임 동지들의 살과 피로 엮인 이 책이 그런 힘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필자소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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