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사회’가 복지사회 열망의 근원
[책소개]《복지한국 만들기》(최태욱 엮음/ 후마니타스)
    2013년 07월 13일 12: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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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한국에 대한 열망을 낳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

“복지국가 건설은 한 사회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가 사회적 의제 및 대안으로 떠오른 근본적인 배경은 ‘불안 사회’라고 압축해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현실이다.”_이창곤

2012년 2월 초 20~4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조사 결과, 5명 중 3명꼴로 삶이 불안하다고 답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거·교육·의료 등 당장의 기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이 같은 인식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2011년 5월 한국은행의 ‘가계금융조사’ 결과를 보면, 가계 수입의 62.8퍼센트가 교육비(28.4퍼센트), 병원비(15.0퍼센트), 주거비(19.4퍼센트)로 지출된다. 사교육비, 등록금, 대출 이자 등에 치여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노후 준비를 꿈꾸기는 어렵다.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경제 위기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실업 등 고용 불안이 커지고 빈부 격차를 비롯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과 그 속에서 “사회적 약자는 물론 중산층의 삶도 순식간에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복지에 대해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이 클 때 구축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과거 10년간의 복지 뉴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2011년 이래 복지 관련 기사 수가 더 많았다는 집계가 나왔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주요 화두는 복지였다. 이 같은 현상들은 복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 그 속에서 보편 복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시민들의 달라진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증세 없이 복지 없다’

“복지 논쟁은 이데올로기 수준에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갈등을 완화, 관리하는 데 취약하고, 사회적 연대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를 재계층화하지 못하는 한국의 복지 체제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_신동면

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늘었지만, 담론을 위한 담론에 그친 면이 없지 않다. 총론 대신 각론을 쓰고, 추상적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세워 보자는 것이 이 책을 시작한 문제의식이다.

선진 복지국가의 역사와 경험을 확인하며 얻는 교훈은, 한국의 복지국가를 그들이 지나온 경로를 따라 건설하기는 어렵다는 깨달음이었다.

영향력 있는 좌파 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합의주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데다가, 시민들은 복지 수혜 욕구가 강한 데 비해 복지를 위한 부담에는 인색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강하지 않다.

신동면은 “세계화와 탈산업화에 직면해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고, 기존의 일자리가 양극화되며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선결 과제는 소득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사회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이다. 한국의 복지국가가 “더 많은 기회보다 더 높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소득 보장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복지 담론에 포함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자 증세를 둘러싼 논란은 복지국가를 위한 재원 마련의 출발점일 뿐이다. 큰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조세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_윤홍식

윤홍식은 자본의 이동성에 따른 법인세 감면과 그에 따른 세 부담이 자본에서 노동(임금과 소비)에 전가되는 현실을 “차악을 피해 최악을 선택”한다고 표현한다.

그는 북유럽 국가들처럼 기업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되 개인에게는 높은 누진적 세율을 적용하는 이중 과세 체제를 강화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익금이 기업에 머무는 한 낮은 세율을 적용하지만, 개인소득으로 전환되면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으로, 이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기업 통제가 이루어져야 함을 전제한다.

그는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 체제 개혁의 핵심이 특정 대상의 세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증세를 통해 총 조세 규모를 확충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높여, 1970년대 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폐기되었던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공정한 조세원칙이 우선 복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만 광범위한 대중이 사회 지출을 위한 세금을 부담하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한국

복지국가 건설의 두 주체는 함께할 수 있는가

“복지국가는 ‘정치적 프로젝트’이다. 복지 재정, 복지 공급 체계, 일자리 개혁 등의 과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대중적 복지 주체를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결합되어야 한다.” _오건호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는 오건호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는 증세에 대해 “본인이 더 낼 용의가 있는지”를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2퍼센트가 동의했다는 점을 비롯해 증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어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이 같은 대중적 복지 주체의 힘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문제를 지적한다. 보수 세력이 제기하는 ‘세금폭탄론’을 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증세는 독배’라며 일반 시민들의 조세 저항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증세를 논의할 여건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오건호는 보편 증세 방식에서 중간 계층이 실제로 부담하는 추가 세금은 그리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직접세 증세는 부자 증세 성격을 띠며, 추가 재정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서 나온다. 전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중 약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득세 면세자는 사실상 사회복지세 부과 대상에서도 제외되기에 하위 계층의 추가 부담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일반 시민의 재정 주권 운동을 통해 증세 논쟁을 돌파할 것을 제안한다.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실현하거나 복지 동맹을 형성할 수 있을까?” _은수미

은수미는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노동이 없는 복지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동 ‘없는’ 복지”의 두 가지 의미를 살피며 노동과 복지의 연관성을 탐색한다.

첫째, 상품이 아닌 노동, 공정한 노동을 보장하는 1차 복지가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면세점(免稅點) 이하 노동자가 40퍼센트가 넘고 저임금노동자가 25퍼센트가 넘어 복지 재정 기여자는 줄어들고 복지가 필요한 집단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수립할 수는 없다.

주변부 노동시장 확대, 중간 일자리 축소, 저임금 혹은 비정규 노동 확대, 근로 빈곤 위험이 만연한 현실, 즉 노동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국가 건설 시도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노동조합은 복지국가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노동조합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10퍼센트대에 불과해 노동조합이 취약하고 분권적 노사 관계를 형성하는 국가군으로 분류된다.

산별 전환 노력, 청년유니온이나 비정규직 노조 결성, 지자체와 중앙정부 기관 등 공공 부문에서 저임금 일자리를 개선하고 노동3권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높이거나 단체협약을 확대 적용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법 제도와 관행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은수미는 복지 수요가 확대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복지 동맹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는 노동 이슈가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임을 지적하면서 양자를 어떻게 연계할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학습 효과를 가져다줄 정치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나

“선거제도가 비례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되고, 권력 구조가 연정형으로 전환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합의제적 성격이 강화되고, 어쩌면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에 가깝게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_최태욱

스웨덴 사민당은 1932년 이후 70년 넘게 집권했지만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1982년부터 2002년(1991~93년 제외)까지 17년간 집권하면서 단 한 차례도 다수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정도였다.

스웨덴 사민당은 우파 정당과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지 않고는 (증대되는 사회 지출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필요한) 어떤 조세개혁도 실행할 수 없었다. 기업과 부자에 대한 세금 인상은 우파와 기업의 반대로 불가능했고, 임금 소득에 대한 증세는 노조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한 방법은, 사회 지출의 확대를 원하면서도 자신이 그 부담을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직접 부담이 되지 않는 소비세 증세였다.

모두를 완벽히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대안이라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었다.

바람직한 정책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를 도입할 수 있는 정치적 힘과 그 기반이 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다.

최태욱은 현재 한국 사회에 사회경제적 약자의 선호와 이익을 대변하고 대표할 수 있는 제도적 기제, 즉 누구에게나 효과적이고 동등한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적 대표성이 높은 포괄적인 정당 체제가 미비하다고 평가한다. 포괄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제로서 비례대표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에 있다.

복지국가 정치 전략의 수립 및 이행과 관련해 고려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어떤 복지국가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 혹은 정책을 개발하는 문제다. 복지국가 정책이 사회복지 정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 정책, 보건 정책, 노동정책 등 각 사회정책이 서로 연계돼야 함은 물론, 그 사회정책들이 경제정책들과 통합적 틀 속에서 연동하는 정책 패키지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는 재원 문제다. 좋은 복지는 돈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재원 없는 계획이란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 ‘선진’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OECD 평균 수준의 복지 지출을 해야 한다.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할 것인가?

셋째는 가장 중요하기도 한 주체 형성의 문제이다. 누가 복지국가 시대를 열 것인가, 즉 ‘시장을 지배하는 세력’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유력한 ‘복지 세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앞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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