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의 또 다른 얼굴들
[책소개]《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육영수/ 돌베개)
    2013년 07월 13일 12: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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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탈취 사건으로 불거진 프랑스혁명은 근현대 혁명의 맏형 이자 ‘원조혁명’으로 불린다. 200년도 더 된 프랑스혁명을 다시 읽는 일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육영수 교수가 쓴 대중교양서다.

프랑스혁명이야말로 상반된 두 해석 틀(마르크스주의 대 수정주의)이 상호 충돌하면서 역사해석을 더욱 풍부하고도 복잡하게 만든 대표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간 학계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통(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를 펼쳐나간다. 그러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혁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정통주의적 시각과 달리 부정적 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프랑스혁명의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여성, 흑인 등 역사적 소수자의 눈으로 보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정답 없는 현재적 문젯거리를 항상 새롭게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프랑스혁명은 지적 모험가들이 탐험을 멈추지 말아야 할 미지의 엘도라도”라고 말하는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읽는 프랑스혁명의 다양한 모습이 생동감 있게 전해진다.

혁명의 불임시대, ‘원조혁명’을 재발견하다

작년 말 국내에 개봉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넉 달 동안 약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른바 ‘레미제라블 현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언론은 개봉 시기가 우연히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겹쳤고, 선거 결과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이 현상을 해석했다.

혁명의 배반

그러나 저자 육영수 교수는 “정말 야당 후보를 지지했던 48퍼센트의 사람들은 ‘배반당한 혁명’에 분노하며 바리케이드에서 쓰러진 순결한 젊은이들을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민중의 노래’를 따라 불렀을까? 연말연시의 분위기 속에서 극장을 찾았던 많은 관객들은 혹시 ‘혁명과 진보’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에 더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며 의구심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리케이드 전투가 아니라 장발장-팡틴느-미리엘 주교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재회하는 피날레였을지도 모른다.

성탄절인 12월 25일에 개봉 이후 가장 높은 극장 점유율 77.7퍼센트를 기록하면서 35만 5,800여 명이 <레미제라블>을 관람했다는 통계자료가 이런 짐작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반짝 나타난 ‘레미제라블 신드롬’을 2012년 대선 결과에 대한 자기치유 과정이라고 ‘좌파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오히려 ‘레미제라블 대박현상’은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지금 이 땅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인구분포의 실체와 그 한계를 반영하는 대중문화 현상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라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다.

‘레미제라블 현상’은 자연스럽게 프랑스혁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5년 넘게 프랑스혁명을 연구해온 저자는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어야”(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하는 이 시대를 ‘혁명의 불임시대’로 진단한다.

1789년 ‘원조혁명’에서 20세기 마지막 혁명인 ‘68혁명’ 이후 우리는 혁명의 불임不姙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가 생산을 주도하고, 경제가 정치를 대리하며, ‘부자되기’가 ‘분노하라’에 우선하는 소위 후기 산업정보사회 혹은 국가·법인 자본주의체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잠재적 혁명계층으로 기대를 모았던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되고, 중산층은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에 허덕이고, 혁명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자임했던 지식인들은 ‘닥치고 논문쓰기’에 고립되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짓하기’를 꿈꾸는 예술가들은 ‘밤샘 알바’로 급진적 상상력을 팔아먹으며, ‘아프니까’ 대학생들은 예비 실업이 순전히 “내 탓이요”라며 자기 가슴을 찢는다. 지난 반세기를 지배했던 “하면 된다!”는 함성에 깜짝 놀라 “안 돼!” 정신에 탯줄을 감고 있는 혁명이 날마다 낙태하는 풍경이다. (233쪽)

이제 혁명 혹은 혁명정신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인가. 저자에 따르면 ‘박제화된 혁명’은 가도 저항의 기억은 되살아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수많은 저항의 백가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발발 200년 후에야 마침내 ‘혁명의 교리문답’의 따분한 책을 덮고,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며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저항의 춘추전국시대가 개막되었다.

새로운 제국의 네트워크 권력의 안팎이 없듯이, ‘전 지구적 시민권’과 ‘사회적 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저항은 국경의 경계를 모른다. 아이티 흑인 노예들이 따라 불렀던 혁명가요 ‘라 마르세예즈’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으로 메아리친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소재로 한 흘러간 영화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의 노래로, 군사독재 시절을 고발하는 극영화 <26년>과 <남영동>으로 변주된다. 언뜻 지지부진해 보여도 혁명의 유전자는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며 계속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숨 가쁘게 달음박질쳤던 4·19혁명과 그 아들딸들이 계승했던 1987년 6월 항쟁의 기억은 정녕 5·16 군사독재 망령의 부활과 신자유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졌는가?” 하는 물음을 곱씹어보기 위해 ‘원조혁명’으로 손꼽히는 프랑스대혁명의 성격과 역사적 유산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재발견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어리석게 혁명의 추억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 위해 원조혁명의 앞뒤와 안팎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프랑스혁명의 성격에 대한 반대해석과 역사인물 평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 가르기에 정비례해, 과거를 읽는 우리 시각은 더욱 예민하고 비판적으로 성숙한다. 그리고 혁명에 대한 사학사적 시시비비는 우리에게 과거는 숭배하거나 미워해야 할 무덤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교훈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추억의 껍데기는 가고 저항의 알맹이는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혁명이란 장기지속적이며 일상적으로 발생·진행·모색되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프랑스 혁명기행문이 날짜순으로 담겨 있다.

1부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에서는 서양·백인·남성적 편견으로 서술된 기존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모았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주류 해석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 입장으로 재성찰하고, 인권선언문과 아이티혁명 사례에 초점을 맞춰 프랑스혁명이 노출시킨 서구 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한다.

단적인 예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의 거두라 할 수 있는 로버트 단턴조차 유감스럽게도 ‘여성문제’라는 거울에 비쳐 프랑스혁명의 혁명성을 신중하게 재고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2부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혁명’에서는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소재로 삼아 문자기록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혁명의 다른 얼굴을 묘사한다.

저자에 따르면 “영상역사학이 가진 여러 장점들 중 하나는 그것이 역사를 종합적 과정으로 재현한다는 점이다. 문자로 쓴 역사가 주제, 지역, 시대 등의 카테고리에 따라 서술대상을 분리해서 취급하는 것과는 달리, 영상으로 쓴 역사는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취를 정치, 경제, 계급, 젠더 같은 다양한 차원을 하나로 융해해서 통합적 이미지를 제공한다.”(106쪽)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프랑스혁명은 영상언어로 쓴 스크린 위에서 어떤 모습과 빛깔로 다르게 재현되는지, 또 여성 영웅과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영화에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올바름의 훈육이 숨어 있는지를 날카롭게 고찰한다.

3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전환’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재조명해보려는 글들을 담았다.

“프랑스혁명 해석의 새로운 물결 중에서도 가장 파고가 높고 파장이 멀리 간 것은 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바스티유 감옥의 탈취로 시작되어 1799년 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로 막을 내린 프랑스혁명의 중요성은 봉건제도의 철폐와 공화정의 수립 혹은 봉건귀족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승리라는 체제 변화의 차원을 넘는 것이었다. 혁명은 앙시앵레짐이 물려주었던 거의 모든 문화적 전통과 관행을 파괴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낯선 것들로 바꾸었기 때문이다.”(150~151쪽)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살펴본 프랑스혁명은 봉건귀족에 대한 부르주아지 계급의 승리라는 거대담론일 뿐만 아니라 혁명가요와 혁명축제가 꽃피었으며 민중문화와 엘리트문화가 충돌하고 교류했던 정치문화의 일상무대였음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편 “우리는 언제부터 목을 조르는 넥타이를 매고 서구적 교양세례를 받기 위해 오페라 혹은 오케스트라의 공연장으로 달려갔는가?

엄숙하게 경청해야 할 연주 도중에 ‘중간박수’를 보내는 초보 팬의 반사적 흥겨움과 즉흥적 환호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음악적 무식함의 공개적 증표로 비난하는가?

불 꺼진 푹신한 지정관람석에 파묻혀 무대 위 화려한 공연을 수동적으로 구경하는 현대인은 과연 200여 년 전 파르테르 공간을 메웠던 입석 관객들보다 더 행복할까?

문명화 혹은 서양적 근대화가 질서와 청결, 공손함, 타인 눈치 보기, 충동적 폭력과 수치스러운 육체 숨기기 등으로 요약된다면, 프랑스혁명은 과연 환영할 만한 ‘문화적 혁명’이었는가? 우리는 정녕 승리했을까?”(230~231쪽)라는 저자의 묵직한 물음이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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