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파와 반칙에 맞서는 용기 필요
    [720희망버스 기고-2] 이 질긴 철탑의 시간 노동자만의 몫으로 둘 텐가
        2013년 07월 11일 01: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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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내기라서 좋은 점이 정말 많았다. 개강파티 참가비로 내야하는 돈이 적었던 것은 물론이고, 어려보이지 않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덤으로 ‘귀엽다’, ‘풋풋하다’라는 등의 말도 듣고 지냈다. 고등학교 내내 바랐던 교수님을 뵙고 코 앞 거리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고, 발 닿는 대로 여행도 다녔다.

    허나 지금은 모두 지난 이야기가 됐다. 2013년이 열리면서 ‘누나’ 혹은 ‘언니’로 불리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헌내기’가 되었다. 이제 스물 하나가 된 새파랗게 젊다 못해 어린놈이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어른들의 시간만 빨리 가는 건 아니다. 나의 시간 역시 무던히도 빠르게 훌쩍 지나가버렸다.

    1년이 하루 같다던 할머니의 말씀이 부쩍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길 위 노동자의 2년도 과연 그랬을까 하는 물음에는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다. 입술이 자꾸만 대답을 망설인다.

    나의 첫 연대는 딱 2년 전 이맘때쯤 부산 한진중공업 85크레인을 향해 출발한 희망버스였다. 김진숙 씨를 비롯한 소금꽃들을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스에 올랐던 2011년. 그해의 기억이라고는 ‘연대’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오히려 희망을 받고 돌아온 순간들만 한 가득이다.

    처음 희망버스를 탄지 일 년이 되던 날, 나는 강의실조차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 허둥거리던 대학교 새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새내기에게 능숙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줄 정도로 썩 학교에 익숙해진 헌내기가 되었다. 내겐 빠르게 흘러갔지만, 2년이란 그 정도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나 많이 흐른 시간이지만, 노동자들의 상황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다. 85크레인 고공투쟁은 철탑에 오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아프게 이어졌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가 침탈되고 철거되었다는 소식은 빈번하게 트위터 타임라인을 타고 들려왔다.

    며칠 전 찾아간 대한문 앞에 펼쳐진 모습은 이곳이 노동자 투쟁 장소인지 경찰집합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재능, 유성을 비롯해 대중들이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애쓰며 저마다의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원하고 바라는 꿈이 아득해 보이는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물리적 시간은 같다 해도, 늘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은 오롯이 노동자가 견뎌내야 하는 몫이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힘내라고 외치기도 하고 그네들의 등을 다독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버스커 버스커가 사랑한다는 말로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던가. 그처럼 힘내라는 말로는 힘낼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힘내라는 말에 담긴 마음은 진심이지만, 어쩐지 공허하게 다가가는 것만 같아 쉬이 내뱉지 못할 때가 있다.

    링 밖의 응원과 연대를 무용지물로 취급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장(場)이 부당한 권력의 영역이 아닌, 노동자들의 홈그라운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응원보다 좋은 것은 없다.

    다만, 그렇게 링 밖에서 온 힘을 다해 응원하다가도, 필요하다고 판단이 섰을 땐 망설이지 않고 링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연대의 가능성에 관해 말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안으로 들어가 심판의 편파 판정과 상대의 반칙에 맞서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심판의 멱살을 부여잡기도 해보고, 이러면 아니 되는 것이라 힘껏 외쳐도 보고, 마실 물도 가져다 놓고, 서로 땀도 닦아내주는 날을 상상해본다.

    한국 사회 노동자의 시간은 야속할 만큼 더디게 간다.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이 시간을 넘어가듯이 노동자들 역시 지난한 투쟁의 시간을 뛰어넘어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단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허나 자꾸만 처지고 늘어져버려서 좀체 흐르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을 ‘제대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권력이란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시간 찾기 프로젝트. 우리가 링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래서 시계태엽을 함께 감는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더 빠르게 흘러가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잘 맞게 흘러가도록 할 수는 있다. 어쩌면 더 빠르게 만드는 것도 될지 모를 일이다. 나는 우리가 함께 감는 태엽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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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학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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