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휴업한다면,
'정당정치' 왜 필요하나
[기고] 민주당, 정당 혁신은 자신 없고 대충 여론에 묻어가겠다?
    2013년 07월 10일 05:13 오후

Print Friendly

민주당, 당황하셨어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휩싸인 민주당의 모습은 우왕좌왕, 갈팡질팡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안 하자니 밖에서 난리고, 하자니 안에서 들썩거린다. 원칙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민주당의 전매특허이긴 하나 이번엔 여진이 꽤나 남을 듯 싶다.

민주당의 갈등은 한 마디로 말해 자신들이 정당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곤혹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정당의 정치활동이 유권자로부터 심판받는 순간이 바로 선거다. 따라서 정당은 선거에 임하여 정책을 발표하고 후보를 세운다. 선거는 정당 정치활동의 정점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금,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당이길 포기하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지난 7월 4일, 민주당의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는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2년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자당의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후보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정당의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문제는 이 공약을 지키면 정당으로서 역할을 폐기하는 것이 된다는 것.

이 ‘찬반검토위원회’에서 정당공천제 폐지 의견을 내자 민주당의 대변인이 “민주당의 폐지 의견은 매우 높은 수준의 논의와 무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새누리당의 개인적 성격이 강한 단순 아이디어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논평을 냈다. 물론 새누리당 역시 대선에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 역시 당론으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것을 정한 바는 없었다. 결국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안철수에 놀란 가슴 진정시키기 위해 ‘단순 아이디어’ 차원에서 정당공천제 폐지가 공약으로 나온 것일 뿐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정당이 정당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견해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논의와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논의가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계속 진행되어 공직선거법 상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차원으로까지 진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주당의 지도부가 당 내의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강행할 정도로 강단이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진성당원제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전당원투표를 통한 가부 결정을 논의하는 것 또한 민주당 지도부의 고뇌가 읽히는 지점이다. 민주당, 많이 당황한 듯하다.

“높은 수준의 논의와 무게”의 결론은 ‘개점휴업’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 그 중에서도 특히 기초지방자치의 현실이 매우 곤궁한 상황임은 예전부터 지적되어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른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앞서 언급한 민주당 ‘찬반검토위원회’의 의견에 그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찬반검토위원회’는 현재 기초지방자치의 상황이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정치, 불공정과 부패로 얼룩진 공천과정, 지역주의와 결합한 공천제의 폐단”으로 인하여 고사상태라고 진단한다.

사실 ‘찬반검토위원회’가 지적한 내용은 한국 정치를 분점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 당에서 모두 벌려놨던 일들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만 회상하더라도, 특히 영남에서 한나라당, 호남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공천의 사천(私薦)화, 민주적 경선의 실종, 공천기준의 무력화와 공천과정의 부패 및 시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만연했다.

이런 과거를 염두에 두고 보면 ‘찬반검토위원회’의 진단은 실제로 민주당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었다.

진단이 이렇다면 처방은 어때야 할까? 먼저 당의 공천과정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다. 공천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야 한다. 특히 실질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당원들의 선택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진성당원제가 구현되지 않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이 단순한 절차적 원칙을 지키기도 버거울 것은 틀림없다.

한편,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역정치의 활성화가 당 정치활동의 최전방에 위치해야 한다. 지방정치에서 정당의 기능이라는 것은 지역 사안의 전국의제화, 혹은 전국적 사안의 지역의제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민주당처럼 중앙은 물론이려니와 지역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정당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 지역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민주당이 호남의 맹주로 군림하고 새누리당이 영남을 항구적인 거점으로 삼는 현재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정당을 불허하는 현행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저 ‘찬반검토위원회’가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의 지역정당의 필요성은 지역주의적 정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고유의 의제와 쟁점을 가지고, 현재와 같이 정당의 전국적 요건을 갖추지 않더라도 정당으로 등록할 수 있고 그 정당 이름으로 지역의 생활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

그런데 ‘찬반검토위원회’의 처방은? 난데없이 정당공천제 폐지다. 뭐하자는 걸까? 결국 이 ‘찬반검토위원회’는 애초부터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론으로 내려놓고 이론을 구성한 것이다.

투표용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의 모형 투표용지

민주당의 산화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거름

관악구의회 의원인 진보신당의 나경채 의원은 이와 관련하여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지적한다. “안철수가 의회입성하여 민주당의 입지가 땅에 떨어졌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서울에서 지방선거 참패를 넘어 궤멸될 수 있다는 공포를 선체험 했다. 정당지지율이 2위도 안 되는 제1야당의 꼴이라니.”

근거의 적실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재 민주당의 모습은 제1야당의 위상에 많이 딸리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정당공천제가 유지되면 진보신당에 뭐가 유리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건조하다.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할 건 하나도 없다. 그건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은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어야 하고 또 내야 한다.

아주 간단하게 질문해보자. 정당으로 하여금 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까?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정당은 뭘 해야 할까?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할까?

선거시기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것은 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은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황을 의미한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 전현직 기초지방자치단체장 협의회, 행정학자 등 일부 전문가 집단이 지방정치의 온갖 문제점을 거론하며 그 모든 문제의 근저에 정당공천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당은 기초지방선거에 후보를 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정당에게 ‘개점휴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상세한 사항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의 진실 Q&A 참조. 이에 대한 진보신당의 반론은, 경실련 Q&A의 진실 제대로 읽기 Q&A 참조.)

 여론에 따르는 것이 정치라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민의의 진심이 정당에게 정당노릇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인지 잘 헤아려야만 한다. 민심이 정당공천제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제도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기성 정당들의 폐단에 대한 진저리인가?

만일 민주당이, 혹은 새누리당이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면, 더 나아가 자기 정당의 혁신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정치집단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결국 정당공천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간에 민심은 정당에게 ‘제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편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느냐 마느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풀뿌리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면, 비례대표제의 확대, 실질적인 중대선거구제 도입, 후보공천의 투명성과 객관성 보장 등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거대 양당의 지역할거구도를 해소하고 지방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정당설립의 보장 등 정치관계법 전반에 걸친 개혁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위원회까지 만들어가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법을 고민했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대안을 제출했어야 한다. 하지만 달랑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론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당의 혁신이라는 감당 못할 주제로 부담을 안기보다는 대충 여론에 묻어가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나름의 꼼수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나경채 의원은 이렇게 일갈한다. “너희 당이 부끄러우면 차라리 해산하라. 나에게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나의 당의 공천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 우유부단한 데다가 자기 중심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이 당당함 앞에 부끄러움이나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이 수준이라면, 민주당은 그냥 새누리당과 합당하는 편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훨씬 “높은 수준의 논의와 무게”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