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의 노래:
    미완의 민주 향한 민중의 분노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시인 보다는 혁명가로 불리기 원했던 김남주의 '시'
        2013년 07월 08일 0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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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몇 년 전 북부아프리카로부터 들불처럼 번져나간 아랍의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염원과 저항은 현재도 진행 중인 바, 수많은 희생 속에서 시리아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리아 민중의 저항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이 외에도 이집트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출범한 무함마드 무르시가 또 다시 이집트를 반민주주의로 회귀시키려는 정치에 대한 저항이며, 터키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표면상 탁심 광장을 무차별적으로 개발하려는 것에 대한 터키 민중의 분노가 점화된 것이지만, 기실 이 분노의 밑자리에는 터키 민중과 민주주의적 소통이 부재한 가운데 국가권력의 일방통행식 개발주의에 대한 터키 민중의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이 함의돼 있다.

    브라질-1

    그런가 하면, 브라질 민중의 반정부 시위는 민중의 삶을 궁핍하도록 하는 물가상승, 부패한 정치, 이른바 사커노믹스(soccernomics)에 치우친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문제 등이 복합적 요인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퇴행하고 있는 브라질 민주주의를 향한 브라질 민중의 저항이다.

    기실, 이러한 민중의 분노는 한국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둘러싼 정치권의 진실 공방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민중은 참담함과 자괴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대통령의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민의(民意)가 정상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인 선거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단 말인가.

    어디 이 뿐인가. 쌍용차, 재능교육, 대학 시간강사 등을 포함한 이 땅의 숱한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 4대강 개발에 따른 각종 생태위기와 밀양의 송전탑과 관련한 민중의 생존권의 심각한 위기, 한반도의 비핵화와 개성공단으로 직접적으로 표면화된 분단체제의 사회적 고통 등 한국사회의 민중이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은 지구촌의 문제들과 밀접히 연동된 가운데 민중의 분노가 사회 곳곳에 팽배하고 있다.

    이렇게 지구촌 곳곳에서 타오르는 민중의 분노를 접하면서, 문득 시인 김남주(1946~1994)가 눈에 밟힌다. 혹시 우리는 이 같은 세계의 급변화 속에서 구미 중심의 세련된 좌파 담론에 휩싸이고, 신자유주의의 성장주의 신화 속에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우리가 그토록 힘들게 쟁취한 ‘민중(성)’의 가치를 망실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가에 꽂힌 김남주의 시집들을 펼쳐보면서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꽃속에

    그렇다. 시가 혁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시가 혁명을 넘어서고자 한 적이 있었다. 시의 노래가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을 자연스레 타 넘어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환희 밝혀주는 시의 정념을 보인 적이 있었다. 시인이기보다 혁명가로서 불리우기를 원했던 우리 시대의 뜨거운 상징인 김남주가 절규한 언어들이 그렇다.

    나는 나의 시가/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최신 유행의 의상 걸치기에 급급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가/생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순수의 꽃으로 서가에 꽂혀/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나는 또한 바라지 않는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의 시가/한과 슬픔의 넋두리로/설움 깊은 사람 더욱 서럽게 하는 것을

    ― 「나는 나의 시가」 부분

    김남주에게 시는 너무나 뚜렷한 목적이자 수단이다. 그에게 시는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부정한 것들과의 목숨을 건 투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에게 시는 민중들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세련된 시적 상징과 치밀한 시의 짜임새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애써 위무해주는 달콤한 노래도 아니고, 더욱이 그들의 힘겨운 삶을 현실을 초월한 종교의 깨우침으로 승화시키거나 미화시킨 것도 아니다.

    그의 시는 민중을 향한 무한한 사랑에 바탕을 둔, 민중의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한 가차 없는 부정의 시적 태도를 취하는, 바꿔 말해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민중시’일 따름이다.

    시의 내용은 생활의 내용 내 시에는/흙과 노동이 빚어 낸 생활의 얼굴이 없다/이제 그만 쓰자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도/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자/가자 씨를 뿌리기 위해 대지를 갈아엎는 농부의 들녘으로/가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물과 싸우는 가뭄의 논바닥으로/가자 뿌리를 추위를 막기 위해 북풍한설과 싸우는 농가의 집으로/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그 위를 찍어 내리는 곡괭이와 삽의 노동이고/노동의 열매를 지키기 위한 피투성이의 싸움이다/대지 노동 투쟁-/생활의 이 기반에서 내가 발을 떼면/내 시는 깃털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보라 노동과 인간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생활의 적과 싸우는 이 사람을/피와 땀과 눈물로 빚어진 이 사람의 얼굴을

    ― 「다시 시에 대하여」 전문

    김남주는 “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라고 선명히 말한다. “노동과 인간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게 자신의 시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그는 아주 분명히 밝힌다. 이러한 ‘대지의 뿌리내림’은 김남주의 시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민중성의 핵심으로, 다음과 같은 시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살아 숨 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사상의 거처는/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 나간다는 것을/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 「사상의 거처」 부분

    민중해방을 향한 김남주의 사상은 이와 같이 “존재의 거대한 율동”으로 이뤄진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넓게 깊숙이 뻗치고 있으며, 그 대지에서 자라고 있는 “사상의 나무”, 즉 민중해방을 향한 사상은 투쟁할 대상을 “바르게 식별”할 준엄한 실천적 인식력을 얻는다. 이렇게 성장한 사상이므로 이 사상의 꽃은 그 어떠한 것보다 귀하고 아름답고, 그 열매 또한 무성하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아니라 한두 사람이 아니라/만인의 입으로 그것이 들어오”는(「사상에 대하여」), ‘민중해방’의 숭고한 가치를 지닌 열매이기 때문이다.

    김남주

    그런데, 이 숭고한 가치가 무참히 짓밟히고 갈갈이 찢겨져 나갔다. 김남주는 박정희 군부독재에 맞서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1979년에 투옥된 가운데, 그 이듬해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광주의 학살 소식을 전해듣고는, 그 학살을 직접 목격이나 한 것처럼 학살이 자행된 그 날의 공포와 죽음을 생생히 재현한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심장이었다/밤 12시/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밤 12시/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밤 12시/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밤 12시/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밤 12시/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 「학살 1」 부분

    수인(囚人)이었던 그는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광주의 민중들이 무참히 죽어간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의 죽음의 광란을 한 컷 한 컷 자세히 찍어보이고 있다.

    김남주는 감옥 안에서 그 예각적인 역`사의 감각으로써 광주의 민중들의 죽음이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에 의한 것인지를 꿰뚫고 있었다. 이것은 박정희의 군부독재를 종식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군부독재로 이어진 반민주·반민족·반인류의 개막을 위한 “악마의 음모”였다.

    1980년대는 이렇게 광주의 핏빛을 머금은 채 시작하였다. 하지만 광주의 민중들이 외롭게 떠안은 역사의 고귀한 희생은 민주회복과 직결되는 민중해방의 숭고한 가치를 위한 투쟁의 불길을 사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의 기운으로 넘실대었다.

    광주 도청

    김남주는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소하기 이전까지 감옥 안에서 이러한 시대적 염원을 담은 시들을 담뱃곽 안의 은박지에 촘촘히 새겨넣었다. 김남주는 살아 생전 단 한순간도 민중해방을 향한 그의 사상의 불을 꺼트리지 않았던 것이다.

    김남주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주름살투성이 얼굴과/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고목」)고 하였듯이, 그는 민중의 대지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채 민중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나무’다.

    여기서 우리는 김남주의 민중해방을 위한 시적 혁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분단극복의 강렬한 의지를 지나칠 수 없다.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조국은 하나다라고/그리고 나는 내걸리라 마침내/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에 내걸리라/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들의 손가락 끝도/언제고 끝내는 부자들의 편이었다는 신의 입김도/감히 범접을 못하는 하늘 높이에/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겨레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 「조국은 하나다」 부분

    시인은 “조국은 하나다”라는, 이 지엄하고 결연한 테제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싶다.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이 깃발을 자랑스레 드높이 걸고 싶다. 시인의 민중해방은 분단극복이고, 이것은 탈식민을 쟁취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허리가 두 동강 난 한반도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한반도의 민중들만의 참세상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 지구상에서 신제국주의 피식민으로서의 억압을 받고 있는 “식민지 모든 인민”의 해방을 위한 길에 동참하는 것이다. 따라서 「달라 1」에서 보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유무형의 자원을, ‘달라’로 상징되는 모든 식민의 권력이 침탈하는 것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왜 그리로 가는가 달라는/그곳에 빵을 기다리는 굶주린 인류가 있어서인가/그곳에 평화를 기다리는 부러진 날개의 새가 있어서인가/그곳에 자유를 꿈꾸는 가위 눌린 나무가 있어서인가/아니다 거기 가면 아시아에 가면/보다 넓은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아니다 거기 가면 아프리카에 가면/보다 값싼 노동력이 있기 때문이다/아니다 거기 가면 라틴아메리카에 가면/보다 높은 이윤이 있기 때문이다

    ― 「달라 1」 부분

    “보다 넓은 시장”, “보다 값싼 노동력”, “보다 높은 이윤” 때문에 아직도 정치경제적 식민 침탈은 여전하다. 김남주의 민중해방과 탈식민이 전세계의 민중해방의 맥락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것을 쉽게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이 점을 간과할 경우 자칫하면 그의 민중해방을 한반도 민중의 민족주의로 국한시킬 수 있다. 이것은, 다시 강조하건대, 김남주의 민중해방의 사상을 왜곡시킬 수 있는 경계해야 할 생각이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직결된 ‘삼팔선’에 대한 그의 시적 인식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지는 달과 함께 자며/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제 노동으로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고/한 사람의 평등한 인간이고자 고개를 쳐들면/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허리에도 있다/어디 그뿐이랴 삼팔선은/농부의 가슴에만 노동자의 허리에만 있으랴/그 가슴 그 허리 위에 巨財를 쌓아 올리고/아무도 얼씬 못하게 철가시를 꽂아 놓는 부자들의 담에도 있고/그들과 한통속이 되어/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하는/패자들의 남침 위협 공갈 협박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 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삼팔선은 나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나라 밖에도 있다/바다 건너 마천루의 나라 미국에도 있고/살인과 약탈과 방화로 달러를 긁어모으는 그들의 군수산업에도 있고/그들이 북으로 날리는 위장된 평화의 비둘기에도 있다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

    김남주에게 ‘삼팔선’은 한반도의 민중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민중의 삶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분단’의 장애물이다. 이러한 그의 시적 인식은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인식과 분단극복에 대한 의지가 결코 한반도 민중의 민족주의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그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전세계 민중의 삶을 억압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식민의 ‘삼팔선’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가 그토록 염원하는 민중해방의 세상은 요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김남주는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자유」)라고 목놓아 부르고, 민중해방을 향해 “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노래」)와 같은 민중의 분노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민중의 “쌓이고 맺힌 서러움”(「아우를 위하여」)을 풀어내기 위한 길을 민중과 함께 간다. 비록 그의 간절한 민중해방의 염원이 아직도 실현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귓전에는 지금도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쓰여진 그의 시들이 그의 카랑카랑하면서도 웅숭깊은 그의 준열한 음성으로 쟁쟁히 들린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투쟁 속에 동지 모아/셋이라면 더욱 좋고/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열이면 열 사람 천이면 천 사람 어깨동무하고 가자/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고/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해 떨어져 어두운 길/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가시밭길 험한 길 누군가는 가야 할 길/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전문

     

    필자소개
    문학평론가, 광운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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