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보다가 TV, 아이스크림 먹기
    … 산만한 아이와의 책 놀이
    [책놀이 책] 아이가 산만한 것은 절반이 부모 책임
        2013년 07월 08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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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10

    “형우야, 책을 볼 때는 엄마가 어떻게 보라고 했지”

    “형우야,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책에 묻잖아!”

    “형우야, 책 읽다 말고 어디 가니”

    형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남편과 나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형우와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도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먹다가도 책을 보겠다며 떼를 쓴다.

    고집도 보통이 아니어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면 화를 내기 일쑤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할 지경이다. 책 읽는 것을 포함해서 어떤 일도 한 가지를 진득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형우가 점점 걱정된다.

    “형우야, 엄마랑 같이 책 읽자. 지난번에 이거 재미있다고 했지”

    “『엄마 사용법』이네? 나는 읽었던 책은 절대 다시 읽기 싫어.”

    “한 번 읽은 책을 왜 못 읽겠다는 거야”

    “재미없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

    “『만년샤쓰』도 읽은 건데 다 아는 걸 왜 또 읽어야 하는데”

    “그럼 이 책으로 엄마랑 빙고 놀이하자! 형우는 한 번 읽은 책이니까 당연히 엄마를 이기겠네”

    아이가 산만한 것은 절반이 부모 책임

    모처럼 주말이 되어 아빠와 아이가 거실에 함께 있었다. 아빠는 TV를 보고, 아이는 책을 읽고 있다. 아빠는 소파에 넓적 엎드리고 리모콘으로 TV를 연신 돌린다. 누가 봐도 난해한 자세다. 아빠 옆에서 아이는 누워서 책 읽다가 앉아서 읽다가 아빠가 보는 TV를 보다가 산만하기 짝이 없다.

    “OO야! 바른 자세로 책 읽어야지!”

    아빠가 아이에게 점잖게 훈수를 둔다. 이 모습은 여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이는 아빠의 말처럼 바른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바로 ‘비언어’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머라비언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목소리가 38%, 표정(35%)과 태도(20%) 등 보디랭귀지가 55%이며 말하는 내용은 겨우 7%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소파에 ‘난해한 자세’로 앉아 있는 아빠는 아이에게 “책은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보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10번 이상 한 효과를 준다. 부모가 말에 의존할수록 아이와의 소통은 반비례하고, 비언어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 반큼 소통이 잘 된다.

    예컨대 필자의 두 아들(3세, 5세)은 집안일을 놀이로 할 때가 많다. 세탁기 돌리기 놀이, 설거지 놀이, 빨래 널기 놀이, 밥짓기 놀이, 청소기 돌리기 놀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하겠다고 하는 까닭 역시 ‘비언어’에 있다. 엄마든 아빠든 할 것 없이 가사일을 함께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으레 하는 것으로 여기고 가사일을 자기들의 놀이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형우가 보여 준 또 하나의 문제는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안 읽는 습관이다. 다양한 책을 읽는 재미는 있지만, 몰입하는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반쪽 재미 밖에 맛볼 수 없다는 점이 걱정이다.

    18(115쪽-혼자드러누워읽는책)

    # 솔루션10

    형우와 나는 『만년샤쓰』를 펼쳐 놓고 빈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형우가 책을 보는 습관은 꿰뚫고 있었다. 처음 몇 장에서 단어를 뽑아낼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첫 번째 빙고 놀이는 당연히 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 말이 여기 있었어? 한 번 더 해!”

    형우는 오기가 발동한 것 같았다. 『만년샤쓰』를 다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빈칸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나, 빙고 다 채웠어!”

    형우의 눈빛부터가 이전과는 달랐다. 굉장한 비밀 병기를 숨겨 놓은 장군의 표정 같았다. 빙고 놀이를 한창 진행하다가 형우가 말한 단어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새끼!”

    “형우야? 새끼라고”

    “응, 새끼! 엄마 안 썼어? 그럼 또 내 차례지”

    “형우야, 책에 나오는 단어가 대부분 좋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가끔 안 좋은 말이 나올 수도 있어. ‘새끼’라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닌 거 같은데”

    형우가 갑자기 씨익 웃더니 책을 내 앞에 탁 펼쳐 놓았다.

    “창남이가 학교에 가다가 구두가 다 떨어져서 새끼를 얻어서 고쳐 신고 다시 학교에 가잖아! 여기 나오잖아! 엄마는 그것도 몰라”

    형우가 펼쳐 놓은 책에는 정확하게 형우가 언급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엄마를 이겼다는 생각에 으스대는 형우가 귀엽기도 했고, 내 실수를 정확하게 지적해서 놀랍기도 했다. 형우가 늘 집중력이 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승부’를 이용한 빙고놀이로 몰입도를 높여라

    요컨대 형우는 독서 태도뿐만 아니라 독서 습관 역시 산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몰입하는 재미를 맛보게 해주면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풀릴 수도 있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 ‘승부’를 도입하면 큰 효과가 있다.

    특히 ‘빙고 놀이’는 남자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 놀이다. 빙고 놀이는 여러 가지 책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부모님에게 빙고놀이를 하자고 성화를 부리는 아이들이 많아 부모님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책놀이의 특징은 책을 여러 번 읽게 하는 효과인데, 책을 한 번 이상 읽지 않는 형우는 빙고 놀이를 해보면 패턴이 읽히기 때문에 자극이 된다. 매번 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형우가 빙고 놀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책을 세밀하게 보면서 상대(부모님)가 쓰지 않았을 단어를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번 읽는 효과를 준다. 빙고 놀이는 두 명이 할 때와 여러 명이 할 때 다르게 룰을 정할 수 있다. 두 명이 할 때는 상대방에게 똑같은 낱말이 없으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방식을 쓸 수 있다. 이 경우는 희귀한 낱말 중심으로 빙고판을 작성해야 한다.

    여러 명이 할 때는 한 번씩만 일정하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이 경우는 상대방에게 있을 만한 쉬운 낱말을 중심으로 빙고판을 작성해야 하므로 전혀 다른 빙고판이 만들어진다.

    빙고 놀이는 특히 ‘시연’(rehearsal)이라는 효과를 주는데, 이 방식은 학습능력에 탁월한 효과를 주는 것으로 연구되기도 했다. 즉 미국 대학에서 여러 가지 방식을 동원해 기억력 테스트를 한 결과 습득한 내용을 앞에 나와서 설명하게 하는 시연 방식이 가장 뛰어난 기억력을 나타냈다.

    빙고 놀이는 내뱉은 단어가 어디에 나오는지 설명해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시연 효과와 승부 효과를 함께 주는 강력한 학습력 향상 놀이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누구나 최고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산만하다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고, 재미있게 책 읽는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빙고 놀이라는 재미 있는 책 읽기 놀이를 하면 자연스럽게 산만한 책읽기 습관도 고칠 수 있다.

    필자소개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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