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이제 됐다… 날아오를 시간이…”
    [책소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 길찾기)
        2013년 07월 06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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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2010 스페인 국립 만화대상을 비롯 28회 바르셀로나 살롱 델 코믹 3관왕(최고 스페인 작가상, 각본상, 작화상), 2010 카탈루냐 만화대상, 33회 디아리오 드 아비소스 리얼리즘 만화대상 최고각본상, 조르나다스 드 아빌레스 비평가상 최고 작가상과 최우수 작품상, 2009 깔라모 엑스트라오디너리 프라이즈 등 스페인 내 만화 관련 상을 거의 독식했다.

    한 작품에 쏟아진 이와 같은 전폭적인 찬사는 스페인 만화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번역서로서는 드물게 2011년 프랑스 ACBD 비평대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2012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발 본선 경쟁작으로도 출품되었다. 단연 스페인 최고의 만화라 할,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한국에도 날아왔다.

    스페인 만화의 성숙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규모와 질감을 갖춘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한 독자를 사로잡는다. – 안토니오 마틴 마르티네즈(스페인 평론가)

    문학과 만화의 최대치를 오롯이 엮어

    아버지의 생애를 만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 그는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며 바스크 대학교 불문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문학의 세례를 듬뿍 받은 그가 아버지를 그리는 데 ‘만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만화와 문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담뿍 담은 ‘문학-만화’를 낳았고 평단은 찬사로 응답했다. 한국어 번역본을 먼저 접한 분들 역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화예술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슈피겔만의 <쥐>가 나치 치하 아버지의 간난신고를 그렸던 것처럼, 이 작품의 화자 또한 아버지의 부침과 곡절을 좇아 유럽의 격동기를 보여준다. – 이희재(만화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만화와 문학의 최대공약수라 할 이 작품이 그려낸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스페인의 역사와 한 아나키스트의 생애다. 우리 문학 <광장>이 그렸던 한반도의 역사와 이명준의 생애, 우리 만화 <오! 한강>이 그렸던 한반도의 역사와 이강토와 이석주의 생애, 이런 우리의 걸작과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학-만화가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스페인어 원제는 El Arte de volar, ‘비행의 기술’이다.)

    아나키

    “자, 이제 됐다… 날아오를 시간이…”
    2001년 5월 4일 나의 아버지는 자살했다.
    ‘안토니오 알타리바 (스페인, 1910~2001)’

    20세기 초반까지 프리모 데 리베라 군부의 독재 하에 신음하던 스페인에 제2공화정이 수립되었다. 이때가 1931년, 아버지 안토니오가 막 성인이 된 해이다.

    안토니오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장밋빛 삶을 기대했으나 공화정은 그저 말뿐인 체제였다. 새 시대에도 여전히 부를 독차지한 계층과 우익 세력, 그에 맞선 좌익 세력의 봉기로 스페인은 다시금 혼란스러워졌다. 모로코 독립운동을 진압하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그의 군대를 끌고 본토로 쳐들어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회 개혁에 목마른 시민들이 1936년 총선거에서 인민전선 결성에 동력을 제공해, 정권은 다시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노동자를 대변하는 인민전선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에 기득권을 빼앗긴 세력과 프랑코가 규합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과 맞선다. 이틀 만에 승리를 거둔 기쁨도 잠시,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아 재정비한 프랑코군에 의해 이후 수 주 동안 수십만의 시민들이 학살당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평범한 시민들이 이룬 정권을 전복시킨 프랑코 세력과 자신들의 국제적 입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파시스트의 손익 계산이 맞아 떨어지면서 이윽고 스페인에 프랑코 독재 체제가 열린다. 1910년에 태어나 2001년에 자살한 안토니오는 스페인과 프랑스를 오가며 그 시대와 그에 이어진 속물의 시대를 온몸으로 ‘앓았다.’

    ‘늘 내 고향이 어디인지 고민했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밭 갈고 땅 넓히는 일에만 골몰하는 탐욕스러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치이면서도 늘 다른 세상을 갈구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 와 새 삶을 시작하며 어릴 적부터 소망하던 운전면허증도 땄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공화정 설립과 프랑코군의 쿠데타로 혼란스러운 도시와 내전의 상흔이 깊은 시골. 어느 곳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안토니오의 꿈은 멋진 차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것이었다. 공화국이 선포되던 날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고, 의용군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가 오랫동안 꿈꾸던 삶에 한 발짝 다가선다.

    어린 시절 구경만 했던 자동차를 몰 수 있는 세상, 가겠다고 마음먹은 곳으로 바로 떠날 수 있는 세상, 전선에 도착한 편지를 나눠주는 ‘평화의 배달부’로 일할 수 있는 세상……. 혁명에 대한 열정만으로 가득 차 있는 순수한 사람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총알이 날고 수류탄이 터지는 전장에서도, 노동은 고되고 급료는 처참한 프랑스의 시골 농장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간절히 원하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안토니오가 찾던 행복은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일 뿐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전우와 사업을 시작하고, 공장을 인수하고,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고, 평범한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행복하지 않다. 그가 버는 돈이 가난한 사람을 속이고 착취한 대가이기 때문이었다. 동료를 속이고 배신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찾아올 줄만 알았던 장밋빛 인생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던 투쟁의 시간을, 그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숭고한 사상과 함께 자유롭게 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2010 스페인 최고의 만화’

    저자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 내전에 고통받은 세대의 아픔을 풀어나갔다. 작가의 고뇌 끝에 선택된 만화라는 매체와 ‘융해’된 1인칭 시점의 전개를 통해, 독자는 당시 국제 정세와 스페인 내전 및 프랑코 독재 체제의 실상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

    순수한 열망으로 싸우고, 그 끝에서 날아오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개인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토해낸 작품과 이를 통해 스페인 내에서 형성된 새로운 유대 의식은 사회적인 것이었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로 이어졌으며, 이제 한국까지 왔다.

    그가 한평생 살아온 세상을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나이의 고백은, 지난한 역사를 경험하며 고통받은 많은 이들과의 동맹으로, 또 그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보려는 자녀 세대와의 새로운 동맹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 안토니오는 날아오르고, 아들 안토니오는 위무하며 아버지 안토니오의 저항하는 비행을 이어간다. 안토니오와 이명준과 이강토가, 이석주가 계속 날갯짓을 한다.

    ‘리얼리즘과 환상의 결합’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비극적인 생애가 한층 도드라지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림 작가 킴 덕분이기도 했다. 킴 역시 프랑코에 의해 희생당한 아버지의 아들이었는데, 킴과 안토니오의 만남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리얼리즘적이면서도 환상문학 같은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림과 연출, 풍부한 비유와 상징의 활용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통해 킴은 ‘스페인 최고의 만화가’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장엄한 비행으로 끝맺은 안토니오의 삶은 그의 아들이 직접 불어넣은 숨길로 21세기에 재탄생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살린 가치와 희망은 불행한 세월을 쥐고 험난한 여정을 헤쳐 온 이들에게, 또 그러한 시대를 반복하여 겪는 지금 우리들의 손끝에 이렇게 다가와 있다.

    두 안토니오가 함께 그려낸 이 작품은 지금 아직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헌정물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날마다 젖는 자들, 이념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신념을 따라 외롭게 뛰어간 이들, 투쟁에 지쳤으나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만은 놓지 못한 사람들, 권력과 돈이 아닌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용기를 낸 자들에게 털어놓는 고백이다.

    이러한 짙은 고백이 독자와 평단의 공감을 얻어 2010년 스페인 최고의 만화로 인정받았다. 스페인 유수의 만화 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2012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발 본선 경쟁작이며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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