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복지국가의 역사와 배경
[책소개]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형성과 재편』(안재흥/ 후마니타스)
    2013년 07월 06일 1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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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국내에 소개되었던 서유럽 복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글들은 주로 일국적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별로 복지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던 역사적 기원과 과정을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예컨대 스웨덴 모델, 핀란드 모델, 네덜란드 모델 등이 바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국적 사례에 대한 설명은, 한국과의 역사적 ·제도적 ·경제적 차이들로 말미암아 과연 한국에서도 그 모델들이 실현 가능한 모델인지를 두고 다양한 논란을 빚어 왔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서구의 복지 자본주의 국가들의 재편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이 전개되기도 했다. 예컨대 과도한 복지 지출에 기반을 두었던 서유럽 강소 ·복지 국가들에서 출현한 우파 정권의 등장은 해당 국가 사회복지 모델의 파산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이런 해석은 과연 맞는 것일까?

이 책의 주제는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의 변동을 추적해 그 원인을 밝힘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정치가 공생 ·발전하는 정치경제학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화 이후 대외 의존형 정치경제가 겪어 온 흥망성쇠의 동학을 서유럽 강소 ·복지 국가 5개국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세계화 이후) -에 대한 실증적 분석과 비교 역사 연구를 통해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한국에서 복지 자본주의로의 이행 가능성을 쟁점의 차원에서 논의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정치적 연합과 함께 정책 조합의 피드백 효과를 원인, 즉 독립변수로 삼고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의 동학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 사민주의 복지 자본주의가 등장했던 시기에 대한 분석은 물론,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복지 자본주의가 재편되었던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복지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응과 관련해, 이 책이 분석을 통해 견지하고 있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즉, 서유럽 강소 ·복지 국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정책 연합을 통해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했으나, 그 정책 조합의 피드백 효과로 말미암아, 정책 연합 사이 내에서 다양한 분열이 발생했으며,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다수의 경제적 약자가 출현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유럽 복지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가, 노동, 자본 및 제 정당들은 공공 악재(특히 세계시장에 편입된 결과,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유발한 공공 악재)를 합의 정치와 사회적 협의라는 집단행동을 통해 극복했다.

이 책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나

기존 연구는 정치과정과 정치경제를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입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두 영역의 상호작용이 정치경제 레짐의 형성과 변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정치 대표 체계와 기능 대표 체계가 의회의 입법 과정을 중심으로 연계될 때 복지 자본주의의 정치경제 레짐은 작동한다. 이와 같은 시각의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한다.

첫째, 합의제 모델과 코포라티즘 및 조정 시장경제는 늘 제도적으로 친화적이지는 않았다. 합의제 모델과 코포라티즘 및 조정 시장경제에서 조정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합의에 의한 조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위로부터의 통치가 맞물려 성사될 때 정치경제 레짐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부가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입법 과정에서 다수를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거나 의회가 코포라티즘을 거친 법안에 비판적일 경우 이익집단은 코포라티즘을 통해 정치적 교환을 시도하기보다는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에 주력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정치가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한다.

복지....

둘째, 소득정책이 저실업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소득정책을 노동시장의 유연화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연계하는 사회 투자 정책은 고용 여건을 호전시켰으나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소득정책이 실행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소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지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었을 때에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선순환했다.

셋째, 입법 과정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 통제와 노동과 자본의 조직적 조건 -포괄성, 중앙 ·집중화, 대표성 -의 상호작용이 강력한 코포라티즘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정부가 입법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했으며 중앙·집중화된 노동과 자본의 정상 조직들이 임금 협상을 자율적으로 조정했다.

반면에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는 입법 과정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노사 모두 분산 ·분권화되어 있음에도 정치권 -네덜란드는 공공중재위원회, 덴마크는 공공중재위원회와 의회 -이 개입해 중앙 임금 협상을 성사시켰다.

복지국가 형성기에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보다 코포라티즘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복지국가 성장기에 코포라티즘의 약화 정도도 심하지 않았다.

넷째, 노사정 타협의 역사적 타이밍에 따라서 세계화 이후 정치경제 레짐이 다르게 변동했다. 세계화 이전에 노사정 타협을 모색했던 국가들 -덴마크와 네덜란드 -는 세계화 이후 합의 정치의 복원을 통해 복지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반면에 그렇지 않은 국가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 세계화 이후에 복지 개혁을 두고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섯째, 세계화 이후 정치 행위자들은 복지 개혁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반발을 회피하기 위해 합의 정치를 도모했다.

동시에 연립정부의 구성 단계에서 내각 참여 정당들은 선거에서 복지 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에 영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 위해 율리시스가 그러했듯이 연합 협정이라는 ‘돛대’에 자신들을 자발적으로 묶어 정부는 입법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했다. 연립 소수 정부의 경우 의원 다수를 동원할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마지막으로,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의 연구에서 에스핑-앤더슨의 복지 자본주의 유형론은 설명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에스핑-앤더슨은 종속변수에 해당되는 변수들 -탈상품화와 사회계층화 -을 이용해 복지 자본주의의 유형을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 복지국가로 분류한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성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독립)변수들은 서로 다른 유형 사이에서 유사성이 돋보였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와, 그리고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정치경제 레짐이 유사했다.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은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의 유형과, 그리고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이런 유형 분류는 복지 자본주의로의 이행 관련 변수들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바람직한 대안이 보편적 복지인가, 아니면 선별적 복지인가를 두고 선거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이념적 담론의 장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은 정치와 제도, 조직, 정책과 관련된 변수들을 담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지속 가능한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으로 이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외면했다.

한국형 사회 모델에 대한 제언과 평가

발전주의 국가에서 기원한 한국형 정치경제 레짐은 자유 시장경제와 친화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 민주화 이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정부는 자유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강행했다. 정부는 발전주의 국가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집착했다. 정부가 자유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강행한 결과, 숱한 문제가 발생했다. 외환 위기를 겪었고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첫째, 시장과 사회와의 제도적 맞물림에서 국가, 특히 관료 사회가 변신해야 한다. 이제 국가는 신자유주의에서 선회해 ‘후기 발전주의 국가’ 모형을 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정치의 공고화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에 노사정 협의의 제도화에 기반을 둔 조정 시장경제여야 한다.

시장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국가는 절대적 위치에서 상대적 위치로 이동해야 한다. 노사정 협의의 제도화를 통해 새로운 조정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정도와 보조를 맞추며 노련하게 질서 잡힌 후퇴를 연출해 내야 한다.

둘째, 입법의 정치를 중심으로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 레짐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주의 공고화의 관건은 입법 정치의 제도화에 달려 있다. 한국의 의회 ·행정부 관계는 제도상으로는 다수제 모델임에도 합의제 모델에 상당히 적응했다. 분점 정부가 단점 정부 못지않게 입법의 효율성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쟁점 법안인 경우 다수제의 공식적 규범과 합의제의 비공식적 규범이 충돌했다는 데 있다. 2012년에 여야는 거의 강제하다시피 합의 입법을 압박하는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법으로 인해 대통령제에 내재된 고질적인 문제인 의회와 정부의 갈등이 해소될지 아니면 ‘싸우는 국회’가 ‘무능한 국회’로 전락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소득정책의 형성과 집행이 가능하도록 노사(정) 관계가 재편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매우 높다. 서유럽 강소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 레짐은 정부, 정당, 노사가 그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공공 악재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정치경제 레짐은 경제 위기와 같은 공공 악재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정책이 낳은 폐해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갈린다.

넷째, 향후 한국 사회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면 서유럽 강소 ·복지 국가가 그러했듯이 아래로부터 참여의 공간을 확대하는 동시에 정부는 합의 정치를 통해 입법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입법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전제하에 두 가지 대안이 존재한다. 첫째, 정부는 노사 관계에 대한 직접 개입을 삼가는 대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자율적으로 통합하고 통합 노총이 내부적으로 대표성을 확보하는 대안이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분산된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들이 하나의 정상 조직으로 통합될 경우 구성 단체 간의 이념적 갈등이 중화되어 전체적으로 이념은 중위로 수렴되며 이는 노사정 협의의 제도화에 기여할 것이다.

둘째,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으로 분산된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을 그대로 두는 대안이다. 이 경우 덴마크, 네덜란드, 아일랜드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정치권이 노사 관계에 개입해 단체 협상 전반을 조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가 변모해야 한다. 조직 및 제도의 개혁만으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복지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서유럽 강소ㆍ복지국가에서 소득정책이 집행 가능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은 노사 모두 임금이 사회 ·경제 전체의 시각에서 조정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이익 갈등이 조정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은 정치의 몫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강소 ·복지 국가는 부침을 겪었다. 부침을 겪는 가운데 정치는 참여와 통치의 역설적 상호작용을 조율해 내는 역량을 키웠다. 의회 ·행정부 관계에서 정당 간의 합의 정치가 부활된 동시에 정부는 (연립) 소수 정부임에도 다수를 동원해 입법 과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정치는 참여와 통치 사이에 내재된 모순적 상호작용을 통합으로 승화시켜 내는 예술이다. 우리 사회에 절실히 요청되는 바는 제도 개혁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예술적 역량을 갖춘 정치이며 이는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설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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