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수사에서 망각되어서 안되는 기본 원칙들
        2013년 07월 03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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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기사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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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범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주 상식적인 명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식적인 명제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 실제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즉 범죄는 자신이 속한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여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란 중산층 혹은 중간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상층이나 하층은 다르다는 것인가? 맞다. 계층(이외에도 조직형태, 문화, 조직, 사회통제)에 따라 범죄 신고, 기소, 체포, 유죄판결을 받는 것, 교도소 보내는 것, 사형선고 받는 것 등의 ‘법의 양’이 다르다는 것이, 블랙의 ‘법의 행위이론’ 이다.

    1976년 도널드 블랙은 ‘법의 행위’라는 이름의 사회이론서를 출판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아서, 상류층일수록 본인을 위해 더 많은 양의 법을 이용할 수 있고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양의 법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층일수록 그 위의 계층보다 자신들에게 더 많은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재벌 회장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본인에게 유리한 많은 법들을 만들거나 ‘김앤장 변호사’와 같이 비싼 변호사를 동원, 유리하게 해석해서 잘 빠져나가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리 작은 죄를 지어도 훨씬 더 많은 형사법과 민사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삼성의 유조선이 태안 앞바다에서 상당한 과실로 인한 기름 유출을 해서 서해를 폐허로 만들어도 수많은 법을 동원해서 잘 빠져나가는 것이 바로 블랙이 말한 ‘법의 행위’이론의 가장 적절한 사례이다.

    이렇다고 볼 때, 우리가 범죄에 대해서 얘기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그 범죄를 보고 접하는 사람의 주체적인 상황일 것이다. 대부분의 상층 사람들은 다른 계층 사람들이 말하는 범죄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할 것이다. 이는 하층 사람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언론이나 생활에서 언급되는 중요한 범죄는 대부분 중간층의 삶과 관련된 범죄로서, 거리범죄, 폭력범죄, 재산범죄, 성범죄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사회계층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서의 범죄에 대한 질문은 달라야 할 것이다. 즉 범죄는 없앨 수 있는가? 이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에서 특정한 이유로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발견되는 범죄는 없앨 수 있는가? 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은, 범죄는 사회적, 구조적이라는 명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범죄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인식의 경계를 넘어야 하며, 또한 개인이 처해있는 상황을 객관화해야 범죄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누구나 모든 범죄를 없애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자신이 분노하는 범죄를 없애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 범죄와 그 수사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서, 아무리 수사 기법이 발달해도 그것은 범죄수법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몇 주 전에 경찰의 숫자와 사회 규모(시민화, 조직 정도 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을 것이다. 7-80년대 미국의 한 도시는 당시의 경찰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범죄(거리 범죄를 포함)로 인해 심각한 치안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뉴욕시장 ‘줄리아니’처럼 신임 시장은 몇 배나 많은 경찰을 일시에 고용해서 대대적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치안을 확보해 나갔다. 그 결과는 깨끗한 거리, 안전해진 귀가길, 낮아진 범죄율 등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다른 곳에서의 범죄는 줄었는데, 대신 경찰에 의한 범죄 즉 경찰폭력, 내부 비리, 경찰과 지역 주민 사이의 마찰 등이 급증한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 해당 시장이 퇴임한 후 실제 전체 범죄율 즉 다른 영역에서의 범죄율과 경찰에 의한 범죄율을 모두 합해보니 결과적으로 해당 시장이 많은 경찰을 고용, 범죄와의 전쟁을 진행하기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다소 충격적인 결과는 우리에게 진짜 범죄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매우 귀중한 사례일 것이다.

    경찰의 과잉실적 경쟁 등을 다룬 코메디영화 '체포왕'의 한 장면

    경찰의 과잉실적 경쟁 등을 다룬 코메디영화 ‘체포왕’의 한 장면

    이 사례의 본질은 이러하다. 해당 도시에도 범죄가 이전부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보통의 도시였으나 도시의 불균형한 개발로 인해 특정한 지역이 산업적으로 피폐해졌고 결국 그 지역을 중심으로 거리범죄가 많이 발생했으며 다른 지역의 범죄자들이 그 지역을 본거지 삼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에 따라 조직범죄 집단 사이의 총격전도 발생하는 등 치안이 대단히 나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던 정치인들이 그 본질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채우기 위해 ‘범죄 없는 도시’, ‘강력한 공권력’ 등의 정치적 캠페인을 시도했고 결국 문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단지 균형 잡힌 도시개발을 다시 시도했어야 했던 것이다. 많은 경찰력을 동원하는 대신….

    범죄가 아무리 많아도 무한정으로 경찰을 늘릴 수는 없다. 물론 예산의 문제도 그렇겠지만 경찰은 관리, 균형 등을 강제하는 보조수단이다. 범죄가 사회적인 것이면 사회적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약간의 수단 그것도 보조수단인 것이다.

    어떤 범죄가 발생하면 그 범죄에 대한 사법적인 접근은 즉응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결국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 범죄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사회적인 방법과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아니 좀 더 빈번히 범죄를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주가 되고 그 행위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호도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세 번째, 범죄예방과 예비검속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법기관(정보기관 포함)은 범죄예방을 해야지 예비검속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빈번히 권력의 유지나 강화 등을 위해 이러한 사례는 발생한다.

    가끔 신임 경찰관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상습적이고 악의적인 범죄의 경우 범죄예방보다는 선제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 사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특정한 경우 예를 들면 (특히 아동대상) 상습적인 성범죄자의 경우와 같이 공동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고 복수의 경로를 통해 인정된 경우 제한된 격리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이런 방법이 다른 수단에 대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할 것은 기본이고 실제 실행될 경우에도 그 주도권은 견제와 감시가 가능한 제 3의 기관에 의해야 한다.

    사법기관(정보기관 포함)의 경우 다른 여러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수사상의 편의 혹은 시간 절약이라는 명목으로 이런 종류의 예비검속에 대한 강한 유혹을 느낀다.

    물론 여기에서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고 해도 최소한의 인권이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다양한 경로에서 진행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충분히 다른 수단도 가능한데 왜 쉽게 예비검속을 이용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법기관에서의 수단은 권한의 확대를 의미하고 그 확대에는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재량권을 반드시 포함한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허리우드 영화 ‘저지 드레드’가 나오는 것이다. 거리에서 범죄를 인지하고 그 즉시 체포해서 즉시 즉결처분을 하는 방식, 이 방식이 사법기관이 가장 원하는 방식이다.

    사실 포괄적인 예비검속은 헌법이나 형법 등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초법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수사상의 편의를 위해 다양하게 유지되는 것도 이 예비검속이다.

    네 번째, 범죄수사의 과정이 과학적으로 유지되어야지, 결과가 과학적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범죄수사라는 것은 사회적인 행위이지 과학적인 결과물은 아닌 것이다.

    CHAIN of CUSTODY(증거물 연계성 원칙)은 범죄수사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며칠 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으나 결국 본론은, 당시 그렇게 많은 경찰력이 동원되고도 왜 범인을 잡지 못했을까? 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사실 나는 이전까지 사건보고서나 증거사진 등으로 사건을 접했을 뿐 실제 당시 담당 형사의 얘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 형사가 사건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사건기록이 정확히 작성되지는 않았다.

    하여튼 프로그램 촬영을 하면서, 아! 참! 왜 그 사건들이 연쇄사건이 되었으며 왜 잡지 못했는지를 문득 깨달았다.

    10여건의 발생사건 중 제대로 된 초동수사는 거의 없었고, 증거라는 개념도 없었고 공조수사, 수사집중 등등 진짜 제대로 된 수사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실제 당사자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물론 당사자는 제대로 했다고 계속 반복했고 사건 보고서도 그럴듯하게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에 충분했다.

    범죄수사는 당연히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Chain of Custody는 매우 핵심이다. 과정과 과정 그 하나, 하나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실제 수사 중 적지 않게 과정과 과정이 아닌 결과만 과학적인 수사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늘 끼워 맞추기 수사에 대한 의혹이 늘 따라다닌다.

    다섯 번째, 911테러와 같은 경우라도 그것도 역시 범죄는 범죄라는 것이다. (다음 계속)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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