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으로 재생시킨, 반디뿌르(Bandipur)
        2013년 07월 02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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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먼지투성이인 카트만두를 벗어난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잇는 프리뜨비 고속도로(Prithvi Highway)로 들어서려면 Thankot을 빠져나가야 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각종 화물트럭부터 여행객들을 태우고 떠나는 여행자대형버스, 마이크로버스라 불리는 지역교통수단까지 줄줄이 늘어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도로를 빠져나간다.

    네팔에 와서 몇 번 이곳을 지날 때마다 카트만두를 벗어난다는 것과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온다는 것이 주는 기분과 의미가 매번 남다르다.

    특히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가 아니기에 가는 내내 재봉틀을 돌리는 할아버지부터 빨래터의 아낙들까지, 파란 교복을 입고 손에 책을 잔뜩 싸들고 한줄로 위험스런 차 옆을 걸어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까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버스의 모든 승객들은 포카라로 가는 지, 포카라로 가기 전 ‘둠레(Dumre)’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다. 내가 가려는 곳은 2011년 유령의 도시에서 친환경관광마을로 바뀌었다고 CNN에도 소개된 반디뿌르이다.

    타나훈(Tanahun)주에 속하는 반디뿌르는 원래 티벳과 인도무역의 중심지였다. 말라이아가 퇴치되기 전 말라이아가 없었던 반디뿌르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머거르족(Magar)이 전통적으로 살고 있었지만 19세기 초 장사에 밝은 네와리족(Newari)이 박타푸르에서 옮겨오면서 현재는 네와리족의 전통 건물양식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 마을이 프리뜨비 고속도로 생기면서 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둠레(Dumre)’ 지역으로 상권이 옮겨가고 말라리아가 퇴치되면서 평야지대인 남부 떠라이(Terai) 지방으로 대거 옮겨가면서 반디뿌르는 찾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Community Development for Tourism British Columbia의 전 매니저였던 Laura Plant가 쓴 반디뿌르 사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마을에 1990년대 말 영국 기업가 Tony Jones가 Himalayan Encounters 라는 여행사를 열고 어드벤쳐 관광사업을 시작했고 네팔에서 가장 큰 동굴이 있고 도보여행의 가능성이 있는 반디뿌르에서 오래된 Old Bandipur Inn을 수리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이에 반디뿌르의 사회개발위원회(Social Development Committiee)도 합세하여 2003년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위원회를 결성, 유럽기금을 지원받기 위해 계획서를 내게 되었다. 채택된 후 유럽의 2개(그리스, 이탈리아)도시와 파트너쉽을 맺고 낡은 건물을 개조하여 여행자정보센터도 만들고 길을 넓히고 여러 레포츠 활동을 만들었다고 한다.

    둠레에서 반디뿌르 가는 지역버스는 45분에 한 대씩 있는데 내가 막 도착했을 땐 이미 문까지 사람들이 매달려 출발하려던 때여서 다음 버스를 타고 1,000m 언덕에 위치한 반디뿌르로 향했다. 버스는 마을 입구에서 멈춰야 했다. 반디뿌르 마을은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잘 정비된 듯한 도로 양쪽으로 네와르 전통 양식의 게스트하우스와 식당들이 늘어서있는 모습이 산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우기여서 관광객들은 별로 없어 한적했고, 차 없는 도로에서 동네아이들은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줄로 줄넘기를 하고 무리 지어 다 같이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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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룽체 언덕에서 내려다본 반디뿌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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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디뿌르 차없는 도로 모습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주인장 아저씨가 추천해주는 코스대로 마을을 걸었다. 둠레와 포카라지역, 미망나가르 등 아랫동네와 겹겹의 산들이 내려다 보이는 ‘둔디켈’과 마을 병원을 지나 이 마을 물의 주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띤다라(3개의 수도라는 뜻)’를 가려다 중간에 사원을 지나게 되었다.

    사원 앞에는 한 아이를 품에 앉고 있는 젊은 여성이 있어 띤다라로 가는 방향도 물을 겸 ‘나마스떼’ 라고 인사를 하니 우기 때 혼자 찾아온 내가 궁금했는지 이것 저것 물으신다. 자신은 머거르(Magar)족이라며 17살에 결혼하여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는데 큰 딸이 10살이며 지적장애가 있다고 했다. 품에 앉고 있는 그 아이었다.

    한국에서 왔지만 네팔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한국에는 어떤 민족이 있냐며, 너는 무슨 민족이냐며 묻는다. 다음에 올 땐 자기네 집에 들리라는 말을 하셨다. 띤다라를 거쳐 다시 시장골목으로 들어서려니 1985년 일본에서 온 카톨릭 수녀님들이 지은 학교 ‘노트르담 학교’에서 분홍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우르르 나온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룽체 언덕‘ 에 올랐다. 우기여서 히말라야 산맥들은 보이지 않고 사람조차 오르지 않는다. 가만히 혼자 두 시간 동안 앉아있으니 안개가 내려앉고 이동하면서 들리는 산과 산사이, 나무와 나무사이의 안개소리가 들린다.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돌에 앉아있으니 뒤로는 바람소리만, 앞으로는 마을의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밥 짓는 소리, 아낙들의 수다소리 등 바람소리와 마을의 소리가 적절히 어우러진다. 회색빛이 돌면서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져 얼릉 뛰어 내려왔다.

    2박 3일을 머물고 떠나오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둔디켈’ 에 다시 들렀다. 역시나 안개와 구름만이 산에 걸쳐있고 마을에 내려앉는 날씨이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 눈을 의심케 하는 하얀 설산이 보인다.

    구름과 안개 사이로 정말 일부분만 보여주고 있는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람중’ 이라고 했다. 이내 안개로 다 가려졌지만 잠시 동안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올 이유가 생겼으니깐.

    * 유럽기금을 지원받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여 네와리 전통양식으로 재탄생한 숙소

    Old Inn Bandipur http://www.rural-heritage.com

    Gaon Ghar http://gaunghar.com/

    위 2곳은 반디뿌르에서 가장 고급 숙소에 속한다. 그 외 일반 주민들이 빈 방에 침대하나 두고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홈스테이 같은 곳은 한국 돈으로 3천원부터 머물 수 있다.

    필자소개
    구로에서 지역복지활동으로 시작하여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을 공동창업하였다. 이주민과 아동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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