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25주기]노동자 건강권은 현재 진행형
        2013년 06월 28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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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지가 벌써 25년이 지났다. 세월이 오래되긴 했지만 일반인들이 아직도 이황화탄소 직업병 문제를 기억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중요한 역사가 잊혀져가는 것 같아 노동자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써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스러움이 든다.

    과거 40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직업병 문제를 비롯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폐증과 소음성난청만이 유일한 직업병으로 보고되었던 60-70년대 시기가 있었고, 직업병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여기는 암울했던 5공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1988년에는 15세 소년 문송면 군의 수은 중독 사건과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원진레이온의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 사회에 알려졌고, 비로소 직업병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슈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업보건 정책 및 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81년에 처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었고, 1989년과 1995년에 걸쳐 대폭적인 법 개정이 있었다.

    이후 2002년에는 근골격계질환, 스트레스, 실내 공기질 등에 대한 사업주 의무사항을 법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정책 범위가 확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안전 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원진

    원진레이온의 작업모습. 사진에서 노동자는 보호구를 착용했으나 이는 문제가 발생한 이후로 1988년 이전에 원진노동자는 보호구 없이 작업했다. ⓒ 교육센터 자료사진

    첫째, 산재추방운동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은 80년대에 소수의 전문가와 시민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산재추방 운동을 노동단체, 시민단체,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90년대 들어 광주, 대구, 인천 등 주요 지방 도시에 산재추방 운동단체가 설립되면서 전문가들과 노동자들이 산재추방 운동을 함께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노동안전 분야의 정책적 변화와 발전을 이끌었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새로운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최소한의 보장만이 있었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송면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과 심각한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면서 제도개선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결국 1989년 12월에 법이 개정된 성과를 가져왔다.

    이 때 산업재해예방기금 설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한 노동자 대표의 참여권 보장, 산재예방교육 의무화 등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 왔다. 이후 이와 같은 제도개선 투쟁은 1995년 작업중지권과 노동자의 알권리, 산업의학 전문의 제도 등의 신설로 이어지게 된다.

    셋째, 우리나라 직업병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직업병은 진폐증과 소음성난청이었다(특히 진폐증 비중이 90% 이상). 이 두 가지 직업병이 전체 직업병의 99% 이상을 차지하였고, 기타 직업병은 극소수(연간 10여명 미만)에 불과했다.

    이러한 왜곡된 직업병 통계가 문송면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사이 사건들을 계기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문송면 수은중독 사건은 중금속 중독이었고, 원진레이온은 유기용제 중독인 관계로 이 분야에 대한 환자 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90년 중반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뇌심혈관계질환과 2000년대 들어 근골격계질환자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넷째, 노동조합이 비로소 노동보건 활동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노동안전부가 조직되어 있지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담당부서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88년 문송면 군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례가 이슈화되면서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건강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시기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고, 노동자 스스로가 직업병을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다섯째. 일반시민들이 환경병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공장에서 발생되는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담장 안에서는 직업병, 담장 밖에서는 환경병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러나 원지레이온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고, 또한 1989년 상봉동에 위치한 연탄공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의 진폐증 소송이 승소하면서 이러한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은 전문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피해자들이 함께하면서 일회적인 투쟁이 아니라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우리나라 산업보건의 역사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원진레이온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장이 폐쇄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직업병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원진레이온과 같은 심각한 직업병 문제는 그 대상이 반도체공장으로, 다양한 직업성암 문제로, 그리고 또 다른 노동 현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역사를 교훈 삼는 것은 똑같은 불행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25년 전에 시작된 원진레이온의 투쟁 사례와 교훈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노동자 건강문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소개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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