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요금에 관한 아주 불편한 싸움
    [에정칼럼] 최소 필요치에는 무상 전기공급, 초과수요는 누진제 강화
        2012년 06월 08일 09:36 오전

    Print Friendly

    전기는 생활필수재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소한의 전기 공급은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이 에너지 기본권이다. 하지만 전기 생산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와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된다.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 수요를 줄이는 건 필수요건이다. 이것이 환경권이다.

    이 두 가지 핵심 자연권(천부인권) 문제가 요 근래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전기가 생활필수재라면 물이나 공기처럼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막상 그렇게 하자니 사회적 리스크나 피해가 너무도 커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요금을 그대로 두자니 작년과 같은 전력 부족사태가 일어나 블랙아웃이라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고 올리자니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가 얌전히 있을리 만무하다.

    주요나라의 전기 소비 증가율 비교

    결론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대는 것 자체는 치하 받을만한 일이임은 분명해보인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된 상태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작년에 이미 주택용 전기요금은 한 차례, 산업용 요금은 두 차례 인상됐다.

    그런데도 올해 다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건 전기요금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방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총선과 대선 두 차례의 중요한 선거가 있는데도 전기요금을 계속 올리고 있다는 건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전기요금 적자의 대부분은 주택용이 아니라 산업용에서 발생

    그런데 불편하다. 많이 불편하다. 왠지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말 품새가 앞서 말한 거룩한(?) 갈등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천박하게도 그냥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다.

    지난 달 한국전력이 정부에 전기요금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하자마자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16개 경제단체가 낸 공개 의견서가 대표적이다. 산업계는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쟁국 대비 비싼 실정”이라며 모든 전기요금을 올리라고 주장했다. 산업용(고압)의 경우 원가회수율이 높으므로 원가회수율이 낮은 다른 분야부터 올려야 된다는 게 요지다. 산업용 요금만 올리면 배 아프니 서민들 주머니도 털라는 의미인가? 그게 평등이라고 강변한다.

    지난해 한전의 당기순손실은 3조 2930억 원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적자를 봤고, 이 정부 들어 한전 적자는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2009년 전력소비량은 총 394,473GWh로 이중 주택용은 14.6%, 농업용은 2.3%에 불과하다. 생산부문에서 17.5%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이 주장하는대로 전력생산 원가에서 차이가 나고 원가회수율이 차이가 있더라도 한전 적자의 대부분은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인 것이다. 절대 손실분은 숨긴 채 상대 손실분만 계산해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는 농업용 전기를 올려야 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자기모순은 의견서 자체에서도 나타난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려는 이유는 전기요금을 1% 인상했을 때 주택용은 762억 원 수입이 늘어나지만 산업용은 2,043억원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연간 4조원씩 적자가 나는 판에, 그걸 국민 세금으로 다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인상효과가 더 높은 곳을 올리는 건 지극히 상식이다.

    전기가격 논쟁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정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전력 과소비 책임을 일반 국민에게 돌리면서 서민용 전기요금을 올리려는 정부방침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대기업 전기요금만 올리자고 주장했다. 일견 타당한 논리다.

    에너지 수요관리 시대에 주택용이나 일반용도 인상이 불가피

    그런데 문제는 이제 주택용이나 일반용 전기요금 역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에 있다.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얻어야 하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지금 전기요금 체계대로라면 전력소비를 줄이고 블랙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도 부담을 나눌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지구온난화와 전력부족이라는 사태를 당신들에게 갈 표와 거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며칠 전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누진제 완화에 관해 쓴 칼럼에도 유감이 많다. 참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1단계와 6단계의 차이가 11배에 이르기 때문에 혹한기나 혹서기에 난방용 전기제품이나 에어컨을 많이 사용해 누진제 요금을 적용 받게 되면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요지인데, 전력 과소비가 사회 안정성마저 위협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까.

    에너지 수요관리가 시대의 화두가 된 마당에 난방용 전자제품이나 에어컨 소비는 늘려도 된다는 의미인가? 그런 논리대로라면 종국에는 전력공급량이 부족해 또 핵발전소를 비롯해 발전설비를 무한정 늘려야만 한다. 지나치게 단선적인 시각이다.

     고소득층은 생활의 ‘불편’ 때문에 전기과다 사용, 저소득층은 ‘생존’의 문제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자택의 경우 월평균 전기 소비량은 3만4101kWh로 동기간 주택 전체 평균 사용량 229kWhdml 150배에 달한다. 한 달에 2,400만원의 전기요금을 낸다.

    누진제가 완화되면 더 큰 이익을 보는 그룹은 이런 고소득층이다. 우리나라 소득계층별 전력비 비중은 정확하게 U자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광열비 중 소득 중위 계층은 전기요금 비중이 낮지만 소득 하위계층과 상위계층은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소득 상위계층은 하절기 냉방 전력 소비가 많고, 저소득층의 경우 동계 난방용 수요가 증가하는데, 한 쪽은 ‘생활의 불편’이 이유지만 한 쪽은 ‘생존권’에 결부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소득층이 쓰는 전기량보다 고소득층이 쓰는 전기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전력 수요관리를 위해서는 누진제는 필수적이고, 오히려 강화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현행 전기요금에는 전기 사용으로 인한 외부비용, 즉 환경개선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순히 생산원가 개념으로 접근하면 불평등해보이겠지만 이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부담은 사용량에 따라 누적폭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저소비 가구가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전기수요는 외부비용을 감안해 누진제를 더 강화하고, 이를 통해 수요관리와 불평등 해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대신 사회적 이유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복지 대책은 별도로 강화할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전기요금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다면 아예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게 방법이다.

    전기요금 체계를 아예 다 바꿔버리는 것이다. 에너지기본권과 복지 차원에서 ‘기본소득’개념과 비슷한 최소 필요 전략공급 제도를 도입해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초과 수요에 대해서는 누진제 강화를 통해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면 터무니없는 상상일까?

    그리고, 사용량이 많은 산업용과 일반용의 경우는 외부비용을 감안해 생산 원가 이상으로 가격을 책정해 소비량을 줄이도록 하는 것도? 이런 상상은 제도 설계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여태까지 고정된 틀 안에서만 얘기하고 있었을 뿐이다. 문제가 복합적이라면 접근 방법도 복합적이어야 한다. 단선적인 정책 접근으로 해결하기에는 전기요금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견고하자. 이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