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연산군 기억하나
[산하의 오역] 조선왕조실록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2013년 06월 25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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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임금은 소문난 책벌레였다. 하도 책을 읽어제끼자 그 눈을 우려한 태종이 세종의 처소에서 책을 죄다 치워버렸을 만큼 책을 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읽지 못하는 책이 있었다. 그건 실록이었다. 대체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 무슨 말을 써놨을까 궁금해서 좀이 쑤셨던 세종은 기록을 보겠다고 나서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어찌어찌 할아버지 태조의 실록은 봤지만 아버지 태종과 자신의 기록은 보지 못한다. 나중에는 임금답지 않게 어깃장을 놓기까지 한다. “내꺼는 안본다니까. 그건 나도 알어! 하지만 아버지 걸 좀 보겠다는데 어때?”

그러자 신하들은 고개를 쳐든다. “그걸 편찬한 게 저희들이온데 그걸 보시면 저희들 마음이 편하겠사옵니까.” 세종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았고 왜 그것이 잘못인지를 알았다.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포기한다.

세월이 흘러가 세종의 고손자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을 무렵 이극돈이라는 친구가 살았다. 이 이극돈이 사국당상, 즉 실록을 편찬하는 관리가 되어 부임하여 사초를 훑는데 갑자기 눈이 튀어나오고 식은 땀이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조의 부인 정희대비가 죽었을 때, 즉 국상이 났을 때 기생첩 옆에 끼고 권주가를 부른 사실이 낱낱이 사초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이극돈은 당장 사초 작성자 김일손에게 달려간다.

김일손의 과거 급제 때 그 답안지에 시비를 건 적이 있었고 이후로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애걸복걸을 한다.

그러나 김일손은 단호했다. “사국당상도 사관이 아니오이까. 사관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사관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이럴 때 너 나중에 두고 보자고 마음에 재워 뒀다가 술 몇 잔 먹고 세월 흐르면 까먹기 마련인데 이 속 좁고 음흉한 인사는 자신보다 더 머리가 좋지만 그 머리를 좋게 쓰지는 못하는 남자를 찾아간다. 유자광이었다.

유자광이라면 김일손이나 그 스승 김종직이나 신진사림들에게서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 하지만 머리 하나는 기깔나게 돌아가던 사람.

“그 사초 좀 보여 주시오.”

“뭐라고요? 사초를? 아니 어찌 대감이 사초를 보신다는 말씀이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잡지?”

이극돈은 그만 이 꾀돌이 영감의 능력에 눈이 어두워 사초를 보여 주고 만다. 여기서 유자광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조의제문’이었다.

항우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라는 임금을 조상하는 글이었는데 결국 이는 숙부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을 조상하는 내용이었다. 세조는 지금 임금의 증조 할아버지. 유자광은 실록 편찬의 책임자라 할 어세겸을 찾아가지만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자 아예 세조 이래의 권신들을 찾아간다. “당신들은 세조대왕한테 이러면 안되지 않아?”

어찌어찌 하다가 연산군도 알게 됐다. 그는 당장 김일손의 사초를 거둬들이라고 호령한다. 이때 이극돈이라는 이가 말하는 냥을 보면 얼마나 찌질하고 저열한 인사인지, 이런 인사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태어나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옛부터 임금은 사초를 보지 못하지만 (옳거니!) 일이 종묘사직에 관계되면 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응?) 신등이 그 상고할 것을 절취하여 올리겠나이다. (야 임마!) 그러면 일을 고열할 수 있고 -즉 사태를 알 수도 있고, 임금이 사초를 보지 않는다는 의에도 합당합니다. ”

이래서 들여온 조의제문을 낱낱이 해석하고 적당히 ‘마사지’하여 연산군의 부아를 돋운 것은 유자광이었고 연산군은 당장 그 일당을 잡아들이라 호령호령한다. 무오사화의 시작이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포한이 있었고 유자광은 김종직에게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들은 훈구파로 성종 대에 조정에 진출한 사림파와 대립하고 있었다.

개인적 증오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들은 임금조차 볼 수 없는 사초를 제멋대로 읽고 가리고 ‘절취’하여 임금에게 올렸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룬다.

연산군 또한 왕권 강화의 걸림돌인 언관, 사관들의 태반을 이루는 사림들을 손보고 싶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 태풍의 눈이 결코 임금이 봐서는 안되는 기록들이었다.

사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신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그 나라가 속한 사람 사이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뢰는 필요한 법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문화유산인 조선 왕조 실록은 최소한 이 기록을 임금이 제멋대로 열람해서 자신의 치적을 왜곡한 신하들을 때려잡거나 자기 아버지에게 몹쓸 소리를 한 사람들 주리를 틀지 않는다는 보장 위에서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록이 방대해서 중한 게 아니라 그러한 믿음이 쌓아올린 금자탑이기에 보물인 것이다.

국왕이 툭하면 눈 부릅뜨고 사관을 불러 “너 지난 번에 내가 한 일을 뭐라고 썼니? 뭐라 안할 테니 바쳐 봐.”식으로 대응했다면 그 사관은 붓을 함부로 놀릴 수 있었겠는가.

자기한테 불리한 기록이 있다고 고쳐달라고 조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그에게 불리한 기록을 ‘발췌’해서 왕에게 갖다바치는 일이 횡행했다면 과연 실록은 보물이 될 수 있었겠는가.

나라와 나라의 정상들 사이의 회담도 마찬가지다. 이는 그 자체로 역사의 기록이며 그것이 역사가 되었을 때 사초로서, 사료로서 기능하는 것이지 정권의 향배에 따라, 정권을 쥔 자의 득실에 따라 열었다가 닫았다가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이전의 위정자들의 행동을 낱낱이 열람하고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라치면 “얼레리 꼴레리 얘들은 이랬대요.”라고 애들같이 설치는 자가 다스리는 나라라면, 그런 소인배들이 권력자를 보좌하는 나라라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게서 믿음을 살 수 있을 것이며, 그 나라의 국민들은 과연 그 나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미 다 죽고 없는 두 사람, 노무현과 김정일의 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국정원은 오늘날 일종의 사관 노릇도 하는 기관이다.

그들을 매개로 온갖 비밀스런 대화와 공작이 오가고 대개 그들이 남긴 기록들은 몇십년 비밀 기한 딱지를 두른 채 캐비넷 속에 잠자고 있다가 역사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들의 행동은 그저 이극돈이다. 유자광이다. 아울러 연산군이다. 이극돈과 유자광이 세종 이래 지켜온 군신의 신의를 무너뜨리고 피바람을 일으켰듯, 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목을 죄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부끄러워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죽어간 수많은 군인들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다가 죽어간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열적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들이 지나온 세월의 결과가 이런 나라란 말인가. 그들이 이런 나라를 위해 죽었단 말인가.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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