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노동현실에는
    아직도 수많은 문송면 존재해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25주기] 노동안전보건운동 25년
        2013년 06월 24일 04: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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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송면/원진레이온 산재사망 노동자 25주기 추모조직위원회 구성 및 추모주간이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선포되었다. 1988년 25년전 우리나라 안전보건 역사에 큰 이정표가 된 두 사건이다. 이에 추모조직위원회에서 릴레이 기고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그 첫 번째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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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를 바꾸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압력계에 수은을 넣는 작업을 불과 한 달 남짓 한 후 수은중독에 걸린 15세 소년 문송면군의 수은 중독 사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상경하여 수은압력계 제조회사 협성계공에 다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노동환경으로 고귀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년의 이 충격적인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직업병 예방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자 건강권운동의 새 역사를 열었다.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장을 마치자마자 드러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은 직업병 역사를 다시 쓰게 하였다.

    문송면

    1988년 7월17일 치러진 고 문송면 산업재해 노동자장. 만장에 적힌 ‘세계제일 산업재해’는 24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구절이다(출처=일과건강)

    이황화탄소 중독 진단을 위한 직업병판정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 위원회에 노동자가 추천하는 의사들이 참여하였다. 직업병 진단에 대한 회사 보상금 성격의 위로금이 결정되어 오늘까지 거의 천 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았다.

    1988년 원진 투쟁은 그간 묻혀왔던 직업병이 당사자들에 의해 적극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신광조명과 유일계량기의 수은중독, 건화상사의 카드뮴중독, 구로공단 전자회사의 톨루엔 중독 등 ‘우리나라 최초’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연일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직업병은 이제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원진환자 및 가족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지속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투쟁은 역학조사 실시와 그 결과를 반영한 직업병 인정기준 변경 등 노동안전보건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법과 정부의 정책과 조직, 안전보건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직업병 원인과 예방에 관한 노동자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이후 대중적 안전보건운동이 노동조합을 통해 자리 잡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금속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각 사업장마다 안전보건 전담부서가 생기고 새로운 활동가가 만들어져 중요한 변화를 끌어냈다. 노조의 상급조직인 금속연맹, 민주노총 등에도 안전보건부서가 신설되어 노동조합운동으로서 조직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노동자의 기본 권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산재예방교육 사업주 의무화․물질안전보건자료 등 노동자 알권리 보장, 사업장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및 의결권 강화, 작업중지권 등이 법에 담겨졌다.

    정부조직에서 노동부 안전보건국이, 안전공단 내에는 안전보건연구원이 신설되었다. 직업병 예방을 위한 정부정책이 마련되었고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었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전문의(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자격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운동 25년에는 성공보다 깊고 많은 그늘이 있다. 그렇게 많은 산재노동자와 희생자, 직업병 환자들을 두고 우리의 노동안전보건은 겨우 이 정도로 밖에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하루에 7~8명씩 사망하는 노동자 문제가 25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노동자 건강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이 정규직보다 20배 이상 높고 50인 이하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300인 이상 사업장 발생률보다 3배 이상 높다.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과 사망은 정부 통계조차 잡히지 않지만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볼 때 빠르게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안전보건관련 법과 정책이 대부분 정규직, 금속 노동자를 중심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들 노동자들은 법과 제도에서도 소외되었다.

    노동자의 참여체계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 등이 보장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권리 보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참여 제도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시행하지만 이 제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의무 규정이 아닌데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배제되어 있다.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를 갖지 못해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참여체계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이다.

    25년 전과 비교하면 산재발생률은 감소되었지만 산재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지금도 하루에 7~8명의 노동자가 죽어간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음에도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을 살았다는 보고는 없어 처벌로 인한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안전보건관련 법․규정은 전적으로 사업주를 대상으로 강제되는 것이므로 실효를 거두는 문제는 사업주 책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산재보험제도 역시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적지 않은 노동자(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보호되지 못하며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산재를 당하면 직장을 잃게 되는 제도로 전락하였다.

    치료를 마친 후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송면군의 수은 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이 25년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송면이 처럼, 원진노동자 처럼, 자신의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이들이 지금의 송면이이고 원진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일터에서 건강한 노동을 하는 그날이 바로 송면이를 원진 노동자를 다시 살리는 일이다.

     

    필자소개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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