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소설-사랑얘기가 아니라니깐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2013년 06월 24일 03: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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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사랑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과 거의 같은 말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온 호머의 <일리아드>는 전쟁 이야기지만 그 전쟁은 절대미모의 여성에게 매료된 남자 때문에 시작된다.

    소설의 기원이 된 중세의 로맨스는 기사의 사랑 이야기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소네트라는 연애시가 문학의 대세였다. 어릴 때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빠지고 사춘기 때는 하이틴 로맨스에 매료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역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연애소설은 남녀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연애소설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연애소설은 여러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과 결혼을 이루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연애소설에서 남녀를 결합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돈이다. 연애소설의 일반적 인물 유형에서 남자는 돈과 권력이 있고 여자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매력적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가 가난하지만 착하고 매력적인 여자의 사랑을 구하는 것이 연애소설의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착하고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여자가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를 유혹하는 구조가 사실상의 연애소설의 구조이다. 이런 연애소설의 구조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소설이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이다.

    19세기 초기에 나온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베넷이라는 집안의 다섯 딸이 남자들을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큰딸은 예쁘고 착하다. 둘째딸은 지적이고 줏대가 있다. 셋째 딸은 책을 많이 읽어 현학적이다. 넷째 딸은 여전히 귀여운 어린애 티를 못 벗어났고 다섯째 딸은 감각적이어서 감정에 쉽게 휩싸이며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 딸들과 관계를 맺는 남자들은 오만한 성격이지만 귀족 신분에 해당하는 지주, 똑똑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중산층 남자, 높은 사람에게는 아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난 체 하는 속물 목사, 말로 사람을 녹이는 잘 생긴 군인 등이다.

    이런 딸들 중에서 누가 가장 연애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일까? 이런 남자들 중 누가 가장 매력적일까? 대개의 남자들은 예쁘고 착한 여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예쁘고 착한 큰 딸과 돈 많은 지주가 될 것이다. 다른 여자와 남자들은 주인공들을 보완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보조 인물들이 될 것 같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그렇지만, 아니다.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돈 많은 지주인 것은 맞지만 여자 주인공은 착하고 예쁜 딸이 아니라 지적이고 줏대 있는 둘째 딸이다.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똑똑한 여자가 어떻게 돈 많은 남자를 차지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어떻게 차지하는 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이 소설의 첫 문장에서 확인된다.

    재산 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 문장은 결혼하지 않은 돈 많은 남자는 여자의 돌봄이나 애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남자는 결혼할 여자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정말로 뜻하는 것은 돈 없는 여자는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면 이 남자를 붙잡기 위해 무슨 수단이라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 소설의 큰 흐름은 돈 없는 여자가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났을 때 그 남자를 어떻게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오스틴은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이 문장이 말하는 것은 그런 돈 많은 남자가 주변에 나타나면 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여자를 좋아하든 관계없이, 그 남자 자체를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덤벼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덤벼들면 그 남자가 도망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 남자 자신이 여자를 원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덫을 놓고 덫에 걸리게 하여야 하지 남자를 잡으려고 그물을 내던지면 그물을 찢고 도망가 버리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돈과 남녀의 사랑을 동시에 말하면서도 사랑을 이루어야 하는 젊은 여자들은 돈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같이 이야기를 꾸민다. 돈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작중 화자이거나 딸들을 결혼시켜야 하는 부모들이다. 돈은 배경이고 진짜 사건은 남녀의 사랑인 것 같이 꾸민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돈이고 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사랑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베넷 집안의 딸들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절실하다. 이들은 지주 계급에 속하는 재산이 있는 부친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앞날이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베넷 집안의 재산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한정상속’이라는 상속법에 의해 남자 후손에게만 재산이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아들이 없기 때문에 부친의 재산은 남자 친척에게 물려주게 되어 있다.

    이 집안의 딸들은 현재는 돈이 있지만 미래에는 돈이 없는 것이다. 친척인 법정 상속인이 상속을 받는 순간 자신의 집에서조차 쫓겨날 처지에 있는 여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돈 많은 남자를 잡아야 할 절대적 위급함에 놓여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중상류층의 사교계는 결혼시장이다. 그러나 사교계에 나온 여자들은 결혼 상대가 될 수 있는 남자의 돈이 가장 큰 관심거리겠지만 돈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자의 성격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돈이 많아서 좋은 남자가 아니라 친절하거나 배려가 있어서 좋은 남자라는 식이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돈 많은 다아시가 오만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다아시는 자신이 상류층이기 때문에 중산층 여성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거리를 둔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다아시는 중산층 여성인 엘리자베스가 지적이고 판단력이 있는 여자임을 알게 되고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가 오만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절한 사람임을 알게 되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다.

    이 소설의 제목인 ‘오만과 편견’은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오해가 풀리게 되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의 다아시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면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에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 소설에서 다아시는 연 수입이 만 파운드로 나오는데 지금의 한국 원화로 계산하면 대강 연수입이 10억 정도이다. 요즘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재벌급이다. 베넷의 연 수입은 약 1억5천정도 된다. 이는 부친의 수입이 그렇다는 것이고 딸들 자신은 아무런 재산도 없고 앞으로 스스로 돈을 벌 방법도 없다. 그리고 곧 무일푼이 될 상황에 놓여있다.

    오스틴은 연 수입 10억의 남자와 무일푼의 여자가 만났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성격 차이로 쉽게 사랑하지 못하다가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의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다고 이 소설의 이야기를 꾸민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냐고? 현실이라면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이야기를 사실인 것 같이 꾸미는 것이 연애소설이다. 이것이 바로 연애 소설의 환상이다. 그리고 작가 오스틴의 환상이다.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바로 베넷 집안의 딸과 같은 여자였다. 중산층이지만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오스틴은 중산층의 교육을 받았지만 친척 집을 전전하며 소설을 쓰는 데서 나오는 수입으로 연명을 했다.

    글쓰기라는 재능이 있어 당시의 재산 없는 대부분의 여자들과는 달리 남의 집 식모나 가정교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다아시같은 남자를 만나기를 꿈꾸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오스틴 같은 똑똑하고 자존심 있는 여자가 돈 많은 남자면 그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돈 많은 남자가 절실하지만 잘난 여자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남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방식이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로, 그리고 그 남녀는 각각 약간의 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만나 알게 되면서 그 결점을 극복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관계로 설정을 해야 한다.

    <오만과 편견>은 똑똑하고 자존심 있는 여자가 꿈꾸는 결혼의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남자를 못 만나서인지 오스틴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모든 연애 소설이 환상인 것은 아니다. 연애소설이 환상이며 그런 환상을 믿었을 때 여자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다.

    영화 '보바리 부인'의 포스터

    영화 ‘보바리 부인’의 포스터

    연애소설에 대한 연애소설인 셈이다. 보바리 부인인 엠마는 수녀원 학교에서 학생 시절을 보낼 때 연애소설을 많이 읽어 그런 소설에 나오는 사랑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꿈을 가진 여자이다.

    그러나 현실의 남자들은 소설 속의 남자와는 다르다. 엠마는 자상하지만 지겹게 현실적인 남편을 견디지 못하여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하지만 그 남자들 역시 연애소설 속의 이상적 남자와는 다른 단지 엠마의 육체를 탐하는 남자들이다.

    엠마는 그런 남자들과의 이런 저런 관계를 유지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고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들의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엠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연애 소설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사랑은 현실의 엠마를 파멸시킨다.

    현실의 남자들은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남자들이 아니라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남자들이다. 현실의 여자는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엠마이다.

    부엌일을 하면서도 왕자를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신데렐라의 꿈이 남아 있는 한 연애소설은 끊임없이 쓰이고 읽힐 것이다. 연애소설의 모티브는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고정 소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연애소설의 사랑을 꿈꾸는 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한 현실의 신데렐라는 파멸하고 평강공주를 만나는 온달을 꿈꾸는 한 현실의 온달은 바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연애 소설의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 조조할인 티켓으로 영화를 같이 보는 사랑, 기말고사를 같이 공부하는 사랑, 식사 준비는 아내가 하고 설거지는 남편이 하는 사랑, 돈 걱정을 같이 하는 사랑—이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필자소개
    민교협 회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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