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평등한 에너지를 원한다
    [책소개] 『나쁜 에너지 기행』(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매진)
        2013년 06월 22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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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이 문제다!” ― 1%를 위한 착한 에너지, 99%의 삶을 파괴하는 나쁜 에너지

    가난한 25퍼센트의 사람들은 3퍼센트도 쓰지 못하고, 부유한 20퍼센트는 70퍼센트 이상을 소비한다.

    한국인 1명은 차드인 386명이나 아프가니스탄인 373명이 쓰는 에너지를 혼자 쓴다. 전력 수급이 비상이라는 오늘도 전세계의 16억 명은 전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나쁜 에너지 기행 ― 기후정의 원정대, 탈핵을 넘어 에너지 평등을 찾아》는 나쁜 에너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 기록이다.

    에너지·기후 분야의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김현우, 손은숙, 손형진, 유예지, 이영란, 이정필, 이진우, 한재각이 꾸린 ‘기후정의 원정대’는 2010년 《착한 에너지 기행》에 이어 또다시 에너지 기행을 떠났다.

    나쁜 에너지 기행

    원정대는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일본을 누비며 에너지 평등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에너지 불평등의 시대, 착한 에너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에너지 빈곤층의 현실, 기후 부정의의 현장, 탈핵의 희망을 찾아

    1부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 에너지 불평등’에서는 국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에너지 빈곤 실태를 살펴본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받고 있다. 내가 쓰지도 않는 에너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나를 위해 쓰이지도 않는 에너지가 만들어지려고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불 꺼진 제3세계에 희망의 불빛이 될 수 있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2부에서부터 ‘슬픈 에너지 기행’이 시작된다. 필리핀 이사벨라 주에는 지구 온난화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바이오 에탄올을 만들려고 조성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에 고통받는 원주민들이 있다.

    또한 수도 마닐라 근방의 쓰레기 매립장인 파야타스에는 쓰레기 산을 뒤져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핵 발전의 위험성 때문에 23억 달러나 들여 1984년에 완공된 핵 발전소를 한 번도 가동하지 못하게 만든 승리의 기억도 생생하다.

    바타안 핵 발전소는 입장료 4000원만 내면 누구든 원자로 안까지 볼 수 있는 훌륭한 탈핵 관광지다.

    관광 대국 태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에너지 불평등이 심화된 곳이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철강 단지 조성과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등을 막아낸 강인한 주민들이 있고, 축산 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가스 시스템을 개발해 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주민과 활동가들도 있다.

    캄보디아는 1960년대 한국처럼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 편익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서민들은 에너지가 필요한 도시 때문에 판자촌으로 쫓겨나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전기도 없이 생활한다.

    메콩 강에 짓는 대규모 수력 발전 댐은 소수 민족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수 민족인 세 두인 아저씨는 해마다 쉴 새 없이 범람 피해를 당하면서 1년의 반 이상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아저씨의 소원은 보상이 아니라 댐 건설 중단이다.

    세계 최빈국 라오스도 개발의 바람은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메콩 강에 세워질 예정인 대규모 수력 발전 댐은 지역 주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는 대부분 ‘수출용’이다.

    중앙 집중식 대전력 중심의 발전 방식이 아니어도 에너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시골 마을 냇가에 설치된 초소수력 발전기와 산골 학교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에서 희망의 빛을 찾고 돌아왔다.

    3부에서는 ‘평등한 에너지’와 ‘정의로운 기후를 위해’ 노력하는 현장을 찾았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해마다 열리지만, 이런 자리의 주인공은 몇몇 기후 깡패 국가일 뿐이다.

    민중에게 권력을 달라는 기후정의의 외침은 총회 장소 밖에서만 울려퍼지고, 2010년 멕시코,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기후변화 총회는 인류가 지구를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인류의 노력은 계속된다. 독일은 2024년까지 핵 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뒤 시민들부터 정치권까지 차근차근 탈핵 절차를 밟고 있다. 소도시의 일요 시장과 광장의 맥주집에서, 녹색당의 환경정책부장과 연방 의원,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환경정책연구센터 교수에게서 굳건한 탈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후쿠시마 사태 뒤 탈핵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와이시마라는 작은 섬의 주민들은 29년 동안 반핵 투쟁을 벌이며 핵 발전소 건설을 막고 있고, 반핵의 성지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대회에는 평화와 탈핵을 기원하는 촛불이 가득했다.

    “핵 발전소, 됐거든!” ― 에너지에 정의가 필요한 이유를 찾아

    ‘블랙 아웃’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우리는 왜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지 관심 없고 그저 한여름에 우리 집이 정전될까 귀찮기만 하고, 밀양 송전탑 문제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세계 4~5위에 해당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한국에도 130만 가구 이상이 에너지 빈곤에 놓여 있다. 대체로 잘사는 나라가 많은 유럽도 에너지 빈곤층을 5000만 명에서 1억 25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제3세계 사람들은 대부분 에너지 빈곤층이나 마찬가지다. 에너지 빈곤층은 에너지가 없어서 일상이 고단하고, 쓰지도 않은 에너지, 쓰지도 못할 에너지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다.

    에너지는 공기, 물, 음식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정의와 평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후정의 원정대와 함께 ‘기후변화 시대, 평등한 에너지란 무엇인가’ 묻는 《나쁜 에너지 기행》을 떠나보자. 오늘 내가 무심코 쓰는 에너지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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