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의 삶', 그것의 속살
[책소개] 『오리 날다』(신수원/ 아고라)
    2013년 06월 22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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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제1회 수상작인 「오리 날다」가 출간되었다. 얼핏 손바닥 하나로 다 가려질 정도로 작고 하찮아 보이는 노동자 민중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발굴해낸다는 취지로 제정된 손바닥문학상의 초대 수상작인 「오리 날다」는 지상 35미터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배변의 고통’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 신수원은 열일곱 살 되던 해에 구로공단 생활을 시작해 1989년 한 사업장의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는 등 오랫동안 노동과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이 책은 「오리 날다」를 비롯해 작가가 자신과 자신을 닮은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전하고자 많은 시간 공들여 다듬어온 아홉 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오리 날다

가장의 실직 후 모든 것을 잃은 가족과 인턴사원으로 일하다 회사가 망해버리자 카지노에 파묻혀 잭팟이 터지기만을 꿈꾸게 된 청년들, 기러기 아빠와 노래방 도우미 등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지만 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가장 많은 수로 존재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생생한 리얼리티, 깊이감 있는 진정성,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함께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소설로 구현되었다.

똥 눌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민중들의 이야기

「오리 날다」의 주인공인 진복연은 부당해고된 후 홀로 철탑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똥을 누는 것, 그녀가 매일 가장 정성들여 하는 행위는 똥을 신문지로 꼭꼭 싸매서 바구니에 담아 땅으로 내려보내는 일이다.

핸드폰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그녀의 밥줄을 잘라버린 이 사회는 그녀에게 마음 놓고 똥을 쌀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아, 그녀는 사방이 뻥 뚫린 공중에서 ‘누가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소리가 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배변을 치러야 한다.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존을 위협당하거나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박탈당한 이는 진복연뿐만이 아니다. 「용용 죽겠지」에서 대기업 노동자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개천에서 난 용’으로 불리던 아버지가 대량해고 후 무급휴직 상태에서 통장 잔고 5만 원만을 남기고 죽어도 세상은 ‘대기업 노조의 이기심’ 운운하며 그의 삶을 조롱할 뿐이다.

힘들게 공부해 꿈에 그리던 은행원이 된 「아름다운 커피」의 유경 또한 난데없이 은행이 합병되는 바람에 매일 아침 화장할 이유와 권리를 빼앗긴다.

그러나 작가 신수원은 노동자 민중의 고단한 삶을 처연하고 비장하게 그리거나 거창한 구호를 들먹이는 대신, 그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펼쳐 보이며 펄떡이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진복연은 배탈이 나 설사를 하고 공교롭게도 진압 작전을 시작한 경찰들과 맞닥뜨린 날, 경찰의 사다리를 향해 배설물을 담은 오리 변기를 힘껏 집어던진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생동감과 핍진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의 주체 스스로에 의해 발화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장성규는 민중들이 “빼앗긴 말을 되찾”는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평한다.

‘우리 자신의’ 삶의 속살을 드러낸 이야기 아홉 편을 담은 이 책은 민중소설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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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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