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신의 건축물들
    [작가들 제주와 연대하다-마지막회] 최고의 건축은 아무 것도 건축하지 않는 것
        2013년 06월 21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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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연애편지를 쓴 43인의 작가들은 우리가 지닌 무기인 글과 마음, 그리고 몸으로 강정마을과 지속적으로 연대하겠습니다. 또한 독자 여러분께서도 제주에서 자행되는 국가 폭력이 하루 속히 멈출 수 있게 관심 가져주시길 호소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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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중에서도 강정과 그 일대는 지질학적으로 특이한 분포를 보인다.

    알다시피 제주도는 화산이 분출하며 생성된 현무암 지층이 대부분이다. 현무암은 용암이 굳어가는 속도에 따라 기포의 입자가 결정되어 검고 대부분 구멍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의 지표를 뒤덮고 있는 이러한 현무암의 특징 때문에 제주 전역에서는 물을 가두기가 쉽지 않아 논농사가 될 수 없다. 물을 가두려고 하면 현무암의 뚫린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정과 그 일대에서는 예부터 논농사를 짓고 살았다. 더욱이 쌀의 질이 좋아 임금님에게 진상까지 했을 정도로 뭍에서와 다름없이 논농사를 지었다. 그렇다면 강정 일대의 지반은 다른 제주지역의 그것과 다르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달라야 가능한 일이다.

    강정 일대의 기반암은 현무암이 아니라 응회암이다. 제주 전역이 화산의 분출로 만들어진 지형이라면 강정 일대는 바닷속에 있는 응회암이 융기했고, 그 위로 용암이 덮이면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지금 우리가 강정 해안에서 볼 수 있는 구럼비 바위는 응회암을 덮은 용암이 결정되어 생겼다. 말하자면 응회암에 착 붙어서 생긴 것이 구럼비 바위라는 것이다.

    (지금 강정 지킴이들이 다시 그 위에 착 붙어서 해군기지 공사차량을 저지하고 있다. 강정 지킴이들이 곧 구럼비라는 등식은 이렇게 성립한다.)

    그래서 강정에서는 세밀한 조직을 가진 응회암이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물을 가두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예부터 강정 사람들은 이 세밀한 응회암 덕에 쌀농사를 져서 먹고 살았다.

    이 물을 가둘 수 있는 강정의 기반암은 이 일대에 특이한 자연환경을 선물했다. 화산암 지역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하천도 만들었다.

    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건기 때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강정에는 마르지 않는 하천이 있다. 냇길이소라는 용천수에서 솟아오른 물이 응회암 기반암을 흐르며 바다로 흐르는 것이다.

    이 물은 냇길이소에서 발원하여 지금은 복개되었지만 강정 마을 회관 앞을 지나 아랫통물 앞을 흘러 강정포구의 서쪽으로 흘러 바다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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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는 진달래산철님 블로그(www.redji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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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는 논골이라고 불리는 과거 논농사를 지었던 지역의 위쪽에서 솟는 함백이물이다. 이 함백이물은 크고 작은 습지를 만들며 강정에 풍부한 식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물들이 바다와 만나면서 바다에는 제주 지역에서도 드문 다양한 해양생태계를 이루어 놓았다. 나팔고둥, 갯민숭이, 열대바다 서식종으로 알려진 긴침얼룩성게, 금빛나팔돌산호, 큰수지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가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정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의 혜택을 너무나도 고맙게 인식하며 살았다. 강정 사람들은 그렇게 흐르는 물이 곧바로 바다에 닿기 전에 자그마한 인공습지를 만들고, 흐르는 물을 끌어 들여 작은 연못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 농수로 썼다.

    그리고 주변에 야자수도 심고, 돌을 쌓아 수원을 보호하고 유채를 심어 운치도 더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강정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에 내려진 이런 큰 은혜를 신에게 돌리고 감사했다.

    서당, 갯당, 일렛당, 여드렛당 등 많은 신당이 있다. 어떤 것은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시는 곳도 있지만 이름 그대로 일주일에 한 번 지내는 신당도 있고, 여드레에 한 번씩 제사를 모시는 신당도 있다.

    이쯤 되니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면 일 년 내내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강돈균 마을회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번거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생활이니까요.” 옆에 김봉규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눈빛을 한다.

    이러한 신당들은 과연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아마 수 백 년은 되었음 직한 거대한 나무들이 있고, 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지형도 범상치 않다. 나무 자체도 울퉁불퉁하여 만고풍상을 간직한 힘이 느껴진다.

    그것이 자연의 힘이라면 사람이 만든 것에서 이러한 힘을 느끼게 하는 곳이 통물이다. 통물은 우기 때 물이 모이는 곳이다.

    강정 사람들은 내리는 비나 그것이 현무암의 작은 구멍들을 통해 흐르다 모이는 곳에 노천 우물을 만들었다. 그것이 통물이다. 이 통물은 윗통물과 아랫통물 두 군데가 있는데, 모두 기하학적인 형태가 돋보인다. 마치 인도의 가트(강가에 접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층계)를 연상하게 하는 이 인공구조물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강정 마을에는 이러한 인공이 만든 자연과 인간의 삶속에 스민 자연이 곳곳에 지금처럼 박혀있다.

    강정평화책마을만들기 모임은 이러한 강정의 자연에 주목하여 이 모든 요소들을 연결하여, 서가로 만들고 열람실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짓지 않고,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아무것도 파헤치지 않는 건축을 하고 있다. 최고의 건축은 아무 것도 건축하지 않는 것이다. 강정 사람들이 예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함성호: 시인. 199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1991년 『공간』 건축평론신인상 수상.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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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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