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발전 위기, 전력 위기
    이번만큼은 방향 제대로 잡자
    [에정칼럼] 원전의 '가동 중단'이 문제 아니라 원전 그 자체가 문제
        2013년 06월 21일 12:1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올 해가 중요하다!

    2011년, 2012년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핵발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 해라면, 2013년은 과연 그 인식의 전환이 어느 정도까지 정책 전환과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지를 판가름 짓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올해 초반까지만 해도 이 말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한미원자력협정 협상 등 짜 놓은 일정이 그렇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밀양송전탑 투쟁과 터져 나오는 원전 비리로, 이제 에너지 문제는 어느 때보다 들끓는 이슈가 되었고, 에너지 정책의 일대 전환은 모두가 입을 모으는 방향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판과 대안이 넘쳐난다고 상황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종합불량식품 핵발전소”, 멈춰서 다행이다

    작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원전 비리가 끝이 없다. 주변부품 핵심부품 가릴 것 없이 거의 전방위적으로 불량부품이 납품되었고, 여기에는 하청업체부터 한수원 등 공기업 고위 간부까지 얽히지 않은 곳이 없다.

    가장 최근의 소식을 들어보면 한 매체의 표현대로 ‘점입가경’이다. 신고리 3, 4호기의 원전내부 수소폭발을 막는 핵심안전장치 부품이 내진성능 실험 검증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수소폭발로 지붕이 완전히 날아가고 방사능이 더 대량으로 누출된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우리는 수소폭발에 대한 대비가 갖춰져 있다고 당당하게 공언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더 어이가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원전 비리가 메인으로 다뤄지고, 폭로성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보수언론에서조차 원전 마피아, 핵 마피아와 같은 용어를 심심찮게 사용할 정도다.

    사진은 부산환경운동연합

    사진은 부산환경운동연합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앞을 다퉈 ‘원전’ 비리를 보도하고는 있지만 이상하게 초점은 원전 ‘비리’로 맞춰지고 있고, 부실한 부품을 사용해 위험천만하게 돌아가던 ‘원전’을 중단한 것이 전력 대란의 ‘원인’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돌아가는 프레임은 대략 이렇다.

    “원전 비리 ⇒ 원전부품 부실 ⇒ 원전가동 중단 ⇒ 전력 위기”

    얼핏 보면 문제없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저대로라면 우리는 이제 원전 비리 인사들을 처벌하고, 부실 부품을 교체한 후, 원전가동을 재개하면, 전력난이 해결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즉, 묘하게 전력 위기를 원전 비리와 연결하면서, ‘문제는 원전 그 자체’인데 ‘원전 가동 중단이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9.15정전의 기억에 기대어 전력난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전력난을 해결하려면 미우나 고우나 원전을 가동해야만 한다는 포석을 깔면서 말이다. 참 집요한 원전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최근의 사태는 어려울 게 없다. 정부가 선전해 온 한국 원전의 우수성은 “세계 최고 안전불감증”이라는 모래 위의 성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 원전의 경제성은 안전에 대한 비리‧부실 검증으로 가능했고, 역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용률도 작은(?) 문제 따위는 눈 감고 그저 열심히 가동만 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보통 스캔들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스캔들이다. 그뿐인가? 지금 드러난 비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우리에게는 노후 핵발전소와 송전망 포화라는 더 크고 위험한 상수가 있다. 이제 원전은 물론이고 대규모 공급 시스템 자체가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정리하자. 안전하지 않고, 경제적이지 않으며, 툭하면 멈춰야 하는 종합불량식품 ‘핵발전소’는, 돌리면 돌릴수록 국민의 안전과 경제와 심지어 전력 공급까지 위기로 몰아넣는다. 멈춰서 걱정할 것이 아니라 멈춘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전력, 피크관리에서 좀 벗어나자

    자, 그럼 이제 전력 위기로 넘어가 보자.

    “예비전력 400만kW” “전력수급경보 준비, 관심, 주의, 경계…”

    이제 많은 국민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다. 여기에는 또 꼭 붙는 수식어가 있는데 최저, 최악, 붕괴, 전력대란 같은 것들이다. 물론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말고는 전기를 아껴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한국에 이런 식의 경고가 주는 긍정적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면 전력 수요관리의 핵심처럼 등장하는 이 예비전력은 철저히 공급의 안정성을 위한 개념이며, 바로 아래에 설명할 내용처럼 경우에 따라 심각한 에너지 낭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핵심은 예비력 400만kW이라는 기준이 과하다는 점이다. 과한 것이 무슨 문제일까? 예비전력은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소비되는 것 이상으로 확보하고 있는 전력이다.

    달리 말하면 전력 수요가 갑자기 예상을 초과하거나 발전소가 갑자기 멈추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때는 그 만큼의 ‘쓰지 않는 전력’이 생산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400만kW면 거의 핵발전소 4기에 가까운 용량이다. 상시적으로 핵발전소 4기가 동시에 멈췄을 때를 가정해 수요 이상의 전력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기를 아껴 쓰라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예비력 400만kW가(게다가 이것은 최소 기준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는 더 많은 전력이 생산되곤 한다) 실은 평상시 기본적으로 낭비되는 전력이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도한 예비 전력은,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유도한다기보다는 ‘수요 관리는 비상 시 임시 대책’이고 결국은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블랙아웃’의 공포를 조장하며 이런 사회적 낭비를 부추기고 있는데, 이것 역시 왜곡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용량의 설비를 갖춘 대규모 계통에서는 발전기 고장이 블랙아웃으로 갈 확률은 거의 없다. 1~2개의 발전소가 멈춘다고 해도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발전소의 출력을 높이는 등 수초 수분 내로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때 10기의 핵발전소가 멈췄지만 정전은 없었으며, 9.15 정전의 원인도 발전기의 고장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제기되는 의혹에 따르면, 이렇게 과도한 기준은 전력당국이 현재 예비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안전빵’으로 높게 설정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국회 차원의 조사단이 구성되어 조사 중이라 하니 지켜볼 일이지만, 그것이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니어도 과도한 예비력 기준이 문제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과도한 예비력 기준의 문제는 사실 전체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공급 중심의 정책을 아직도 전혀 버리고 있지 못하다. 에너지 정책은 이제 수요관리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내놓는 대책이 죄다 전력 피크관리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전기요금제 개편이다. 지금 에너지 소비의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전력 소비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전기요금이 값싸기도 하고 특히 유류보다도 싼 전기라는 기이한 구조로, 심지어 철을 녹이는 데에도 전기를 쓰는 곳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전기란 바로 열에너지로부터 나왔는데 그걸 다시 열에너지로 바꿔서 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구조란 말이다.

    웬만한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도 이런 값싼 전기요금이 문제라고 진단은 내리면서, 대안으로는 전력피크요금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피크요금제는 말 그대로 잘해야 전력피크를 피해서 전기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기능만 할 뿐이다.

    전기로 불야성을 이루는 대도시 도심의 모습

    전기로 불야성을 이루는 대도시 도심의 모습

    이렇게 에너지 소비 전반을 줄이지 않은 채 전력 피크를 억제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수요관리가 아니라 공급 정책에 불과하며, 그래서 해외에서는 대부분 피크관리를 수요관리 정책으로 보지 않는다.

    답이 없는 핵발전소 멈추고, 에너지 소비 줄이는 진짜 수요관리를 하자

    정리해 보자. 지금 드러나고 있는 송전탑 갈등이나 원전 비리 등은 모두 핵발전의 위기를 방증하고 있다. 따라서 전력난을 핑계로 원전 재가동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상당수의 핵발전소가 멈춰도 수요관리만으로 국가 운영이 가능함을 우리는 지금 체험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전력난은 수요관리가 답인데, 여기에서 수요관리는 기존의 피크 관리가 아니라 총량의 관리 즉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특히 지나친 전력화 현상을 되돌려 놓는 것은 핵심이고, 이를 위해 유류보다 값싼 전기요금의 정상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 이제 눈속임 정책은 그만 두고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를 제대로 좀 세워보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