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모있는 바보' 막시밀리안의 운명
    [산하의 오역] 어느 고귀한 혈통의 죽음
        2013년 06월 20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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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몇 몇 유명한 왕조들이 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 영국의 튜더 왕조 등등.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그 역사가 깊고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왕조라면 단연 합스부르크 왕조다. 근친혼의 결과라 할 유전적 주걱턱을 가진 이들이 많았던 이 왕조는 수백 년 동안 유럽의 각국의 왕을 차지한 명문가였다.

    그 가문이 왕 노릇을 한 나라만도 스페인,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등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19세기 이 가문에 한 고귀한 혈통의 남자가 있었다. 막시밀리안 대공.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동생이었다.

    혈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던 왕정 시대에 왕의 동생이란 그렇게 팔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투르크의 경우 새로 술탄이 된 사람의 형제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조선 왕조 때에도 형 잘못 만나 죽어간 동생들이 어디 한둘인가. 오스트리아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럽을 호령하는 형을 바라보며 내가 어디가 못나서 저렇게 못될까 한탄하는 신세였다. 물론 그것조차 배부른 한탄이지만.

    그런데 21세기에도 백두 혈통을 따지는 나라가 있을진데 19세기의 ‘혈통’에 대한 숭배와 신뢰는 대단했다. 고귀한 집안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고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도 그 핏줄이 이름이 있다면 꿇어 엎드려 왕으로 모셨다. 투르크의 압제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워 독립을 쟁취한 그리스인들은 독일의 귀족 가문의 혈통을 왕으로 받들었다.

    어느 날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이자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를 잃기 전까지 그곳 총독으로 무난하게 살던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그들은 대서양 건너 멕시코 사람들이었다.

    “전하. 이제 우리들의 황제 폐하가 되어 주시옵소서. 후아레스라는 인디언이 교회의 재산을 빼앗고 예로부터 이어온 권리를 짓밟는 폭군이 되었사오니 이를 응징하고 우리 멕시코 제국의 황제가 되어 주시옵소서.”

    막시밀리안은 가련한 멕시코의 민중들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한다고 생각했지만 내막은 전혀 달랐다.

    후아레스는 인디언 출신으로서 멕시코의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로 교회의 재산을 박탈하고 토지 개혁을 실시하고자 했던 인물로 스페인 지배 시절 이래 멕시코를 지배해 온 백인들과 교회의 반발을 샀고 이 보수파들은 후아레스를 무너뜨릴 혈통 있는 지배자(라고 쓰고 꼭두각시라고 부른다)를 원했으며 여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역시 혈통으로 한몫 본 사내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야욕이 개입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쓸모 있는 바보” (레닌의 표현) 막시밀리안은 대서양 건너 멕시코의 황제가 되는 것을 응락하고 대서양을 건넌다. 그는 프랑스 군의 힘을 빌어 후아레스를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만 후아레스는 여전히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채 저항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막시밀리안이 그렇게 욕심에 눈이 먼 약삭빠른 사람만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고 핍박받는 멕시코 민중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결국 그가 한 행동은 그를 모셔 온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후아레스의 혁신적 개혁들을 오히려 지지하는 제스처를 취해 대토지 소유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또한 강제노역제도에 반대했고 후아레스가 몰수했던 엄청난 교회 영지를 돌려주는 것마저 거부했다. 이 훌륭한 혈통의 황제는 인품은 훌륭했으나 자신이 왜 여기에 왔으며 누가 데리고 왔는지를 파악할 지혜가 좀 부족했던 것이다.

    멕시코 안에서 후아레스는 계속 저항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서양 건너에서 왔다. 프로이센이 강성해지면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독일의 통일이 목전에 닥치자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에 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멕시코에 파견한 수만 대군을 불러들인다.

    막스밀리앙

    마네의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 The Execution of the Emperor Maximilian of Mexico], 1867-68, 유화, 252-305cm

    이는 막시밀리안의 무장 해제를 뜻했다. 막시밀리안의 부인이 나폴레옹 3세에게 애걸했으나 나폴레옹 3세의 답변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겠소.”라는 간절하지만 덧없는 답이었다.

    후아레스의 군대는 이빨도 없고 발톱도 사라진 혈통 좋은 사자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곧 막시밀리안의 군대는 무너지고 그는 후아레스에게 체포된다.

    빅토르 위고, 주세페 가르발디 등 유럽의 유명 인사들이 그 고귀한 혈통의 선량한 사람을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호소했고 후아레스도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나타냈지만 막시밀리안에게 총살형을 선고한다.

    막시밀리안은 끝까지 비겁하지는 않았다. 1867년 6월 19일 막시밀리안은 총살을 당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사형 집행인들에게 금화를 나눠 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이런 장렬한 유언을 남긴다.

    “멕시코인들이여! 나는 멕시코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정당한 대의 아래 죽는다! 지금 흐를 내 피가 이 땅의 마지막이 되기를! 멕시코 만세!”

    하필이면 얼굴을 조준한 총에 그의 얼굴은 박살이 나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턱수염은 누군가에 잘려 나간 채 불운한 시신은 유럽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패배자- 을유문화사 간>라는 책에서 볼프 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한다.

    “막시밀리안에게 공로가 있다면 그것은 군주제의 불합리한 이념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주제는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의 모범이 될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세기에 비정한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에 그 혈통 때문에 휘말려 들어간 선량한 남자의 최후에 빗댄 말이지만, 장군님의 손자와 각하의 따님이 각각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한쪽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그 불합리한 이념을 극복했는지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가지게 된다.

    1867년 6월 19일 고귀한 혈통의, 그것 때문에 죽음을 맞은 한 남자가 쓰러졌다.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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