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싸게 팔리기를 바라는
    '기성품'의 삶...레디 메이드 인생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국문학과가 폐지되는 시대에 드러나는 운명 혹은 계급
        2013년 06월 18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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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에는 적성모의고사 문제를 출제하느라 5일부터 10일까지 합숙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게 되면 5월은 그냥 훅 흘러가 버린 느낌이 든다.

    합숙 들어가기 전에는 2일 대산문화재단ㆍ한국작가회의에서 주최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발표를 가졌다. 원고를 작성하느라 4월도 정신없이 보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졸업생을 한 명 취업시키기 위해 친분이 있는 출판사에 다녀오기도 했다.

    합숙에서 풀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주변을 살펴보니 정신없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는 윤창중 대통령 비서실장의 추행 여파가 들끓어 오르는 시점이었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이 제 멋에 취해 놀다가 큰 사건 쳤군,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보니 남양유업의 소위 ‘갑질’이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딸이 먹는 분유, 치즈를 확인하고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기로 했다. 대학생의 취업과 관련되는 문제도 신문, 방송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송에 따르면, 취업률이 낮아 배재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과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청주대학교에서는 같은 이유로 회화과를 폐지한다고 했다. 내 소속이 또 국어국문학과인지라 인터넷에서 배재대학교의 사례를 찾아 확인해 보니 건양대학교, 서원대학교에서도 국어국문학과가 폐지되었거나 통폐합된 상태다.

    뭐 그렇다고, 국어국문학과의 상징성이 있는데 어떻게 대학교에서 폐과시킬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따질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질적으로 절대적인 까닭에 여러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대책을 강구하는구나, 절감했을 따름이다.

    사실 교수 입장에서도 졸업하는 학생들의 취업률이 낮으면 가슴이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속해 있는 학과에서는 교수들이 권유해서 졸업생들의 사은회를 몇 년째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본부에서는 대학 평가가 걸려있으니 여러 경로를 통해 취업률 상승을 닦달해댄다.

    오죽하면 학술대회 쉬는 시간에 내 또래의 교수들은 서로 상대 학교의 취업률이라든가 학생 취업 방안을 교환하겠는가. 그래도 별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대학교수들도 힘들다. 그러니 졸업하는 학생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교수들 역시 뭔가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채만식

    임응식의 사진, ‘구직’ 1953년, 서울

    생각해 보라. 참여정부 시절에도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했다. 유시민 前의원이 2005년 5월 16일과 23일 “취업에 관한 것은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다.”, “자신의 취업 문제를 정부와 연관시키는 사람의 취업 가능성은 낮다.”라고 연거푸 발언했을 정도였다. 즉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를 청년 각자에게 돌려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그 책임 소재를 각 대학교에 돌려세우고 나섰다. 그래서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중요한 지표로 반영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일자리를 제대로 늘리지도 않으면서 졸업생들 취업률만 올리라는 것은 무한경쟁만 부추기는 데 그치고 만다. 헌데도 지원에서 불이익 받을까 두려운 대학당국은 정부를 향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마른걸레 짜듯 교수들만 쥐어짠다. 그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교수도 억울하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5월 10일자의 〈학생 대 교수 ‘취업문제로 대립’〉이라는 기사를 읽을 때는 그래서 씁쓸함이 더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취업률을 교수 평가 항목에 집어넣기로 하였는데, “교수들의 연구 업적보다 취업률의 점수가 많다.”

    이에 많은 교수들이 반대의견을 냈고, 단과대학 학생회장 ㄱ씨는 “대학 홈페이지 자유마당에 ‘제자들의 취업에는 관심도 없고 취업 의무사항을 빼지 않으면 서명운동을 한다는 교수님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갈등의 선이 이렇게 그어져서는 곤란하지 않나. 순간 어느 교수의 한탄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도 수도권은 좀 낫지 않나요? 지역에는 일자리 자체가 말랐어요. 죽을 지경입니다.”

    1930년대에도 실업 문제는 지금처럼 심각했을 것이다. 동반자작가 채만식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사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작품의 제목만 생각해도 자동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겹쳐진다. ‘레디메이드 인생’, 얼마나 의미심장한 제목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어딘가로 팔려가지 못한다면 자신의 생존 근거를 마련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계급을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 스펙을 쌓아올려 누군가에게 가능한 비싸게 팔려나가기를 기다리는 기성품에 불과하니, 그러한 운명을 일러 마르크스는 계급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가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다시 이데올로기의 위력에 대하여 얘기할 거다.

    채만식은 자본주의가 구축되는 과정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신흥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ㆍ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배워라.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 살 수가 있다.”, “가르쳐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가르쳐라. 그나마도 못하면 고학이라도 해야 한다.”(52쪽) “그리하여 민중의 지식 보급에 애쓴 보람은 나타났다.”(53쪽) 산업 구조가 갖춰지면서 사회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뒤집어진다.

    인텔리…… 인텔리 중에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 또는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나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부르주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 상태가 되어 더 수요가 아니 되니 그들은 결국 꼬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7~8자 삭제)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53~4쪽)

    레디메이드 인생

    레디메이드 인생, 그 운명이 맨 얼굴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1930년대와 다를 바 없다. 다른 말로 하면, 호황과 공황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장난질하는 자본주의의 곡선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밑바닥으로 내려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자본주의 사이클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야만 하는지, 레디메이드 인생을 주어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찌 해야 정녕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는지…….

    물론 출제를 끝마치고 나서 요즘 시험기간에 돌입하기 전에 나는 담당학생들의 취업상담을 했으며, 인턴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급한 불은 꺼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를, 우리를 둘러싼 질서에 대해 묵묵히 순응하는 것과 다른 길을 찾아보기 위해 물음을 던질 줄 아는 것은 크게 다를 것이다.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데서부터 비로소 길은 열리기 시작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러한 질문을 펼쳐나가지 못한다면 레디메이드 인생은 언제고 다시 악귀처럼 반복하여 귀환할 것이다.(인용은 『채만식전집』7, 창작과비평사, 1989)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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