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기업, 지역의 사회적 공간으로
    [나의 현장] 노원구 사회적 기업 '리포미처'에서 일하며
        2012년 06월 07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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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원구에는 10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출자해서 만든 ‘리포미처(주)’라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작년 노원구청으로부터 “노원역 롯데백화점 앞에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 재활용매장을 만들고자 하니 시민단체가 그 공간을 위탁받아 운영할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고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이다. 노원구에서 사회적 경제를 고민하던 몇 개의 단체가 중심이 되어 출자단체들을 만들었고 2011년 5월, 서울시로부터 환경 분야의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노원구청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논의하여 주식회사를 창립하고 사회적 기업 인증 신청을 받기까지 두어달. 이 짧은 시간동안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지역에서 함께 혹은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던 서로간의 막연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거칠게 얘기하자면, 서로 독립된 공간에서 각자 활동해오던 모습들을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서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신뢰, 혹은 지역에서 공통된 ‘쟁점’을 가지고 한시적으로 만들었던 ‘연대체’에서 활동했던 경험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던 단체들이 ‘한 개의 사업소’를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 논의와 토론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매장을 오픈하고 논의하자’로 미뤄놓았던 것이다.

    당장 발등에 매장 오픈이라는 불이 떨어졌다. 매장은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막 채용된 실무자와 사회적 일자리로 지원받은 참여 근로자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채워서 오픈할 것인가에 몰두해 있었다.

    노원의 사회적 기업 '리포미쳐'의 모습

    각자 살고있는 집, 주위 사람들, 각 단체회원들로부터 1차 기증 받은 물건으로 가게를 채웠지만, 실평수 23평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넓고 그에 비해 우리가 모은 물건은 너무 빈약했다.

    첫 번째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될까? 우리 힘으로, 전문 경영인도 아닌 우리가 진짜 이 매장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 ‘근사한’ 가게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먼저 관심을 보였고, 우리가 걱정했던 것 이상으로 ‘재활용’ ‘자원순환’ ‘기부‘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였다.

    개소식 전까지 한달여 시범 운영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집에서 쓰지 못하는 물건을 가져오기도 하고, 평소에 저 멀리 있는 ‘아름다운 가게’로 물건을 기증했는데 노원역에 이런 공간이 생겨서 너무 좋다는 평부터 시작해서, 보수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겠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대부분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동네 주부들이었다. 아이 키우고 아무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써주는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연락처를 남기고 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이 공간을 받아들이는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매장을 오픈하고 나서, 매일매일 아침 이른 시간 즈음에 매장에 들르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겉으로 보기에도 어렵게 사실 것 같지 않은 분이 매일 아침에 와서 ‘저걸 사가지고 가셔서 어디에 쓰실까’하는 의문이 드는 물건을 한두개 꼭 구입해가셨다.

    매장에 마련해 놓은 평상에 잠시 앉아서 차곡차곡 구매하신 물건을 가방에 정리하기도 하고, 좀 지나서는 물 한잔 달라고 하시면서 말을 트게 되었다.

    평생을 남편과 교사 부부로 생활하셨다는 이 할머니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아오셨다고 했다. 아들 둘을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고 그 아들들도 대기업에서 부장 자리도 하고 있다고 하셨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안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할아버님이 치매에 걸리셔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 정정하고 똑똑하던 남편이 어느 순간 아이처럼 변해버린 모습이 너무 견디기 어렵다고 하시며, 아들들은 바빠서 자주 와보지도 못해서 매일 아침 병원에 가시는 길에 매장에 들러서 이런 저런 물건을 하나씩 구입하시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낙이 되었다고, 말문을 여셨다.

    그 이후로 매일 매일 가게에 들르시고 직원들과는 어제 할아버님 상태가 어떠셨는지 얘기하고 가끔 눈물을 지으시며, 이렇게 얘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시던 할머니가 해가 바뀌고 가게에 안들리신지 5개월정도 되었다. 아직도 가끔 그때 자리에 있던 손님들과 직원들은 그 할머님 얘기를 한다. 잘 계신지, 할아버님은 안녕하신지..(5월말 즈음에 오랜만에 들른 할머님은 할아버님이 올해 초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J하셨다. 여기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소식 전한다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혹은 백화점 청소노동자들이,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고민인 엄마들이, 근처 빌딩을 청소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가게에 들러서 소식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한동안 소식이 없으면 안부를 물어보기도 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받아들이고 발걸음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요즘 한참 물이 오른 ‘마을’이 여기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에 빠질때도 있다.

    5월이면 리포미처라는 사회적 기업이 생긴지 1년이 된다. 아직도 우리는, 출자단체들간에 사회적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 입장, 만들고자 하는 상의 차이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고 있다. 때로는 싸우고 보듬으며 이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 앞에는 사회적 기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이 조직의 형태가 주식회사로 가는 것이 맞는지,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있고,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오고 공유하고 있는 이 ‘매장’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상을 만들어나가고, 그래서 지역에서 새로운 ‘사회적 공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가게문을 열면 웃는 얼굴로 매장에 들어설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출자단체들과 함께 꿈꾸고 웃고 떠들면서 새로운 공간을, 경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마구마구.

    필자소개
    노원구의 사회적 기업 '리포미처'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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