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도 자본의 수단이 되는 현실
    [책소개] 『그린레프트』(데렉 월/ 이학사)
        2013년 06월 15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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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적이고 정의로우며 민주적인 미래를 위한 선언

    기후변화, 토양침식, 바다의 산성화 등 오늘날 전 세계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생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환경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은 그 답을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를 그대로 놓아둔 채 환경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을 막지 않고 바가지로 물만 퍼내는 것과 같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유행했던 단어, 녹색성장은 허구다. 녹색과 자본주의적 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 책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그 극복을 위한 범세계적인 움직임을 그린레프트, 즉 생태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그려내며,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정치적 실천과 전 세계적 연대라고 말한다.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사회주의와 생태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맑스와 엥겔스에서 출발하여, 윌리엄 모리스, 머레이 북친, 존 벨라미 포스터, 조엘 코벨까지 이어지는 긴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환경보호 운동이나 녹색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소련식 사회주의나 사민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새로운 세계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생태사회주의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에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생태사회주의적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21세기 세계 좌파 정치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먹이사슬의 정점, 환경문제는 권력의 문제

    이 책의 지은이 데렉 월은 잉글랜드웨일스녹색당 수석대변인을 지냈고 2006년 녹색당 안에 반자본주의 생태사회주의 그룹인 ‘그린레프트’를 발족시킨 영국 그린레프트의 개척자다.

    그는 계몽을 통해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존의 환경 운동과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생태마저 상품화하는 녹색성장론의 문제점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현대 경제는 안정을 위해 구조적으로 성장에 의존한다. 만약 우리가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한다면, 현재의 경제체제는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이 우리가 생태 위기를 겪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이 탐욕적이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우리의 경제체제가 덜 획득하고 덜 소비하면 혼돈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장은 일종의 신화이며, 거스를 수 없는 임무이다.

    그린레프트

    따라서 이 책은 생태 위기에 대한 대처는 정치권력 및 경제권력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보며, 오늘날 환경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근본 이슈를 다루는 데 실패했으며 이 점에서 생태사회주의 운동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탄소가 거래되고 환경 우려가 마케팅의 수단이 되는 현실

    기후변화가 확실히 존재하고 그 위협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현재의 해법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미미하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탄소도 자본에 의해 거래되고, 저소득층으로부터 부유층으로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환경을 위해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은행이 이익을 취한다.

    오히려 ‘환경에 대한 우려’는 성장 신화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대한 우려도 대기업의 거래 대상이 된다.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기업이 마케팅에서는 환경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과 같은 모순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염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친환경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는 마케팅은 기업의 입장에서 실제로 생태를 개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돈벌이 수단이다.

    수십 년 동안 석유 회사들은 자신들의 반환경적인 행동에 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나무 심기, “그린 데이” 행사를 열고 환경 분야 NGO들에 후원을 해왔다.

    기후변화까지도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며,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환경 친화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생태사회주의가 단지 자본주의의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새롭고 작동 가능한 경제사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more)’를 대체해야 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하의 생태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소유 개념의 도입’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것은 바로 ‘직접민주주의의 확대’,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의 참여’, 절대적인 소유권 사상에 입각한 배타적 울타리 치기가 아닌 ‘공유재 개념에 따른 공동체 정신의 복원’, 인류를 공멸로 이끄는 ‘무분별한 성장주의의 폐기’를 골자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성장이 번영으로 이끈다는 것은 잘못된 지침임을 인식하고 ‘성장 없는 번영’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은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접근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것들의 화폐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히 생활수준의 저하 없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통찰이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우리가 상품을 구입한 다음 그것을 버리고 또다시 구입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즉 상품의 교환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게 생산하면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을 증대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경제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낭비를 줄이는 경제체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교환에 기초한 자본주의경제와 사용에 기초한 생태 경제를 비교해보면, 낭비를 줄이는 경제체제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단순하게 사용에 초점을 두면, 상품의 소비와 생산 그리고 폐기를 가속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상품에 대한 접근을 증가시킬 수 있다.

    녹색 맑스(greener Marx)의 재조명, 생태사회주의 이론의 기원과 현재

    이 책은 기존의 환경 운동이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투항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점, 그리고 과거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못지않게 개발과 환경 파괴에 동원된 점을 지적하면서 맑스의 원전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흔히 맑스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맑스는 비록 생태라는 말은 쓰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생태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를 교조적으로 추종하자는 것은 아니다. 맑스가 남긴 문제의식의 뼈대 위에 지금까지의 인류의 경험과 진보적 사유의 성과물을 입혀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는 것이 그린레프트의 입장이다. 맑스의 21세기적 업그레이드, 그것이 바로 그린레프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가져온 황폐한 결과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맑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도 그러한 차원에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맑스를 재조명한 다른 책들이 주로 맑스의 재해석과 그 현재적 의미에 치중한다면 이 책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맑스의 사상을 미래에 실천적으로 접목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생태사회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많은 사상가가 이 책에 등장한다. 영국의 정치적 생태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미국의 아나키스트 머레이 북친, 영국의 역사학자 E. P. 톰슨, 영국의 문학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 케냐의 위대한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 등 많은 사상가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위한 영감을 주고 있다.

    남미의 토착민부터 아프리카의 녹색당까지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책상 위에 머물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켰듯이, 그린레프트 운동 역시 이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가장 지방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운동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계 전역―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에서의 실제 사례들은 그린레프트 운동이 세계인의 연대를 통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반대에서 공공 교통의 확대에 이르기까지, 배출권거래제의 모순에서부터 생태를 위한 노동의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그린레프트의 시야는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린레프트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생태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생태 파괴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 즉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음으로써 자연과 하나인 본래의 인간성을 되찾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그린레프트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실천을 강조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곳곳에서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 공동체와 생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투쟁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은이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은 인식을 즉각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정보―웹사이트, 영화, 책, 인물, 단체 등―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생태사회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토대, 그리고 실천을 위한 가이드까지 겸비한 이 책은 이 분야의 활동가들은 물론 자본주의의 모순과 생태 문제에 눈을 뜬 독자들에게 ‘비상식량’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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