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는 월스트리트에 있다
[책소개] 『호모 인베스투스』(캐런 호/ 이매진)
    2013년 06월 15일 1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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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가치 혁명과 호모 인베스투스들

2008년 터진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주범인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은 900억 달러의 세금으로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도 200억 달러를 보너스로 나눠 갖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현장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투자은행이 국민의 사유재산을 탕진했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루저는 월스트리트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 똑똑하다는 아이비리그 출신 투자은행 직원들은 세계를 금융 위기로 몰아넣으면서도 많은 보너스를 받는 루저가 됐을까?

천문학적인 연봉과 말쑥한 정장, 주당 110시간 고된 노동과 해고 뒤 15분 내 책상 빼기. 《호모 인베스투스(Liquidated: An Ethnography of Wall Street)》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직원들의 이런 모순된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해 세계 금융 시장의 호황과 불황이 생산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캐런 호(Karen Ho)는 1997년부터 3년 동안 정장 한 벌로 지하철 에프선을 타고 다니며 인류학의 불모지인 투자은행으로 달려갔다.

화이트칼라 착취 공장과 투자 은행 직원의 채용과 해고, 노동 조건과 보수 체계, 위계적인 공간과 옷차림 등을 분석했고, 정리 해고를 이윤 증대와 동일시하는 주주 가치가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역사와 이 과정에 월스트리트가 기여한 방식을 정리했다.

호모 인베스투스

호는 시장을 추상적으로 분석하는 기존 연구들이 금융 위기가 자연스러운 시장 사이클이라는 월스트리트의 변명에 주요한 논거가 됐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우리는 추상의 함정을 넘어 월스트리트 현장의 노동자가 문화적 실천을 통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화이트칼라 착취 공장과 회전문 고용의 디스토피아

1장 ‘헤게모니 일대기 ― 똑똑함의 문화와 투자은행 직원들의 채용과 구성’에서는 월스트리트가 아이비리그 출신의 투자은행 직원들을 채용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 금융 시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통념하고 다르게 자본주의 헤게모니는 ‘똑똑함’이라는 이미지와 동문 네트워크라는 연줄과 인맥 등 문화적 조건에 따라 구성된다.

2장 ‘월스트리트의 오리엔테이션 ― 착취, 권한 부여, 고된 노동의 정치학’에서는 돈 능력주의 사회인 월스트리트에서 고된 노동이 어떻게 이상화되고, 학벌, 성별, 인종이라는 문화 조건에 따라 생기는 위계가 어떻게 가려지는지를 인터뷰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런 착취와 불평등은 투자 은행을 넘어 ‘주식회사 미국’에도 그대로 강요된다.

3장 ‘월스트리트와 주주 가치 혁명 ― 관리 자본주의의 해체와 자기 파괴적 전략의 탄생’에서는 1980년대 기업 인수 운동에서 생겨난 주주 가치가 기업을 사회적 기관으로 보는 인식을 해체하고 미국 경제를 뒤바꾸는 과정을 서술한다. 월스트리트와 자본 시장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주 가치 혁명이라는 서사를 완성했다.

4장 ‘완벽한 자본주의 ― 신고전파와 주주 가치, 그 기원에 관한 서사’에서는 전후 시기부터 1980년대 초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의미를 잃고, 주식 소유자가 기업의 근원적인 자금 조달자이자 지배자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맥락을 정리했다. 주주 가치 옹호자는 신고전파 이론을 왜곡해 주식 시장의 역사와 미국 기업의 역사를 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5장 ‘감원된 감원 책임자들 ― 고용 불안과 투자은행의 기업 문화’에서는 일반 기업에 정리 해고를 강요하는 투자은행 직원들이 자기 자신의 고용 불안과 해고를 다른 노동자하고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을 분석했다. 투자 은행 직원들은 고용 불안과 해고를 시장의 자연스러운 사이클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일터인 투자 은행이 시장의 화신이라고 여긴다.

6장 ‘기업 문화가 문제다 ― 유동하는 삶, 보수 계획, 지속 불가능한 금융 시장의 형성’에서는 투자은행의 조직 문화를 구성하는 중심 요소로 연봉보다 보너스가 훨씬 더 많은 투자은행의 보수 체계를 주목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고용 불안은 투자은행 직원의 능력과 우월함을 확인하는 시험이며, 미래 지향성이 전혀 없는 단기적인 딜 성사 열풍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7장 ‘세계화 신화의 모순 ― 세계성을 통한 지배와 위기 차입’에서는 ‘명칭 변경 사건’과 ‘빈 사무소 증후군’ 등을 통해 월스트리트가 세계화를 표현하는 방식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실천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의 세계화 배치는 사실이 아니라 전략일 뿐이며 다양한 선언과 실행에 입각한 것이다.

주식회사 미국과 신자유주의의 역설 ― 금융 위기를 일으키는 진짜 메커니즘

‘성장 없는 고용은 고용 없는 성장만큼 위험하다’라는 경고는 성장과 고용이 상관관계를 맺는 게 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기록적인 이윤을 남기고 주가가 가장 오랫동안 상승한 1990년대 미국이 역사상 최고의 감원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성장해도 고용은 안정되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포착한 캐런 호는 시장을 더는 경제학자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전공이나 능력보다 중요한 학벌과 연줄, 백인 남성을 정점으로 한 성별과 인종에 따른 위계, 일주일에 110시간 이상 거의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노동 시간, 해고되면 15분 안에 일터를 떠나야 하며 동시에 다시 고용되는 회전문 고용 모델, 위계에 따른 옷차림과 행동 양식, 연봉이 아닌 몇 십만 달러의 보너스로 생활하는 삶 등. 화이트칼라 착취 공장에서 재사회화된 투자 은행 직원은 정리 해고를 통해 일시적으로 주주 가치를 올리는 전략을 반복해서 실행했고, 결국 불평등하고 위기가 만연한 세계를 만들었다.

금융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극복할 새롭고 확실한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면, 전세계가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 직원의 능력을 확신하기 때문에 월스트리트가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캐런 호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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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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