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 이야기의 진실과 오류
[책소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 부키)
    2013년 06월 15일 1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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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제학자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부생들 앞에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강연을 펼쳤다.

사실 이 강연의 목적은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면서 갓 태동한 소련을 횃불 같은 존재로 보게 될 학생들에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효율적인 유토피아 기획임을 납득시키는 데 있었다.

2년 뒤 강연 내용은 수정을 거쳐 같은 제목의 짧은 에세이로 출판되었다. 케인스는 에세이에서 자본주의가 펼칠 바람직한 미래상을 보여 주기 위해 경제 논리를 적절히 활용해 손자 세대의 세상 모습에 대한 예언을 내놓았다.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에 의해 100년 뒤 선진 국가에서의 생활 표준은 4배에서 8배까지 더 높아져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당 15시간만 일해도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어 인류는 처음으로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하는 자신의 진정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케인스가 내다본 2030년은 불과 17년 뒤이다. 그의 손자나 증손자뻘이지만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 15시간 노동도 낯설지 않은 우리 세대가 보기에, 이 예언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음미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그럼에도 이 빗나간 예언을 다시 꺼내든다. 물론 실패한 예언자를 변호하거나 책임 추궁할 목적은 아니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모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심한 경쟁의 쳇바퀴로 내몰려야 하는 기막힌 역설을 뿌리부터 추적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케인스의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 1930년대 동시대인에게 자본주의의 유토피아적 미래상을 설명한 한편의 기발한 재담이라면, 이 책은 인간의 ‘끝없는 욕구’에 대한 반론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관심을 잃고 질문조차 포기한 ‘좋은 삶’이라는 과제를 되살리려는 묵직한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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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관계인 공저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형성된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우리가 꿈꾸어야 할 가치 있는 삶의 모습에 대한 매력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는 케인스가 살짝 운만 뗀 ‘바람직한 미래상’을 길게 갈 것도 없이 바로 지금부터 구현해 나가자는 담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파우스트적 협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사실 성장에 대한 케인스의 전망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세계 경제의 1인당 소득 성장이 2000년 이미 4배를 넘어섬으로써, 그의 예견 범위 안에 멋지게 들어왔다.

틀린 것은 노동 시간에 대한 전망이었다. 저자들은 이 가정이 실패한 이유를 생산성 증가로 인한 이익을 노동자들이 갖지 못하게 된 상황과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 탓으로 본다. 이 두 장애물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유욕의 윤리를 만들어 내고, 이 윤리는 사회가 목적도 없는 부를 계속 창출하도록 운명 지운다.

결국 케인스의 오류는 자본주의가 해방시킨 돈벌이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 인간의 절대적 필요를 채우고 나면, 사람들은 문명 생활 속에서 그 결실을 자유롭게 맛보게 되리라 믿은 데 있다. 자본주의가 끝없는 욕구를 창출하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대가로 상상도 못한 힘을 얻는다는 파우스트 전설에서 인류가 잠시 이용하려다 오히려 그 포로가 된 자본주의의 본질을 읽는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파우스투스 박사』를 비롯해 18세기 괴테의 『파우스트』, 1947년 발표된 토머스 만의 소설 『파우스투스 박사』등 서구에서 끊임없이 변주된 파우스트 전설은, 악은 그저 물리쳐야 하는 부정적 특질이 아니라 인간사에서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힘이라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

이전의 경제 관념에서 돈에 대한 애착은 도덕적으로는 상스럽고 역사적으로는 파괴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계약과 같이 좋은 결과를 위해 악한 동기를 허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무르익으면서 자본주의는 돈을 숭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족쇄를 풀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목적 달성을 위해 백성의 변덕과 탐욕을 이용하는 군주를 현명한 군주로 상정했고 사회사상가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가 이를 계승했다. 경제학에서는 버나드 맨더빌이 도덕률을 새로 제시했다.

“부유하면서 악하거나 가난하면서 덕성스러울 수는 있으나 부유하면서 덕성스러울 수는 없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점차 탐욕이라는 낡은 단어는 밀려나고 이기심이라는 무색무취한 단어가 들어섰다.

일단 그 윤리적 불명예를 떨쳐 버리고 나자 돈벌이는 공개적으로 인과관계에 입각하여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를 선도한 것은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였다. 파우스트적 협상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면에서는 마르크스 같은 혁명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탐욕과 고리대금이라는 악마는 인간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 준 다음 무대를 떠날 것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해방되었지만, 모든 동화가 그렇듯이 악마의 계약은 말뿐이다.

자본주의는 부를 창출하는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전했으나 정작 우리는 개화된 용도로 그 부를 활용할 능력을 상실했음을 공저자들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그 배경에 깔린 철학사상의 변천을 통해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확인한다.

인류의 오랜 지혜 창고를 여는 경제와 역사, 철학의 협업

지금처럼 분과 학문 체계가 서기 전에는 경제학도 ‘도덕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철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도덕 과학은 가치 판단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생산적이면서도 공정한 경제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하던 학문이었다.

두 공저자들, 세계 최고의 케인스 전문가인 아버지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미학과 도덕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아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간의 공동 작업은 이 책의 독특한 강점을 형성한다.

파우스트적 계약에 기초한 자본주의 성립 과정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을 되살리기 위해 인류의 오랜 지혜 창고를 여는 데서도 이 협업은 빛을 발휘한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경험과 지성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과거 철학자들이 힘주어 제시했던 좋은 삶의 이상이 근대 이후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 최근 들어 이 이상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유려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현재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학이라고 알고 있는 내용은 그의 저서 『정치학Politika』과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 실린 획득과 교환을 각각 다룬 두 단원을 조합한 내용이다. 이러한 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업은 우리의 공동생활의 한 측면으로서 삶의 다른 모든 면들과 마찬가지로 정의와 그 자매 격인 덕성에 종속되는 것으로 소개된다.”

저자들이 공들여 되살려낸 인류의 경험을 살펴보면, 돈에 대한 끝없는 추구가 개인이나 사회 전체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칭송받는 일은 역사 전체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정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인지, 또는 누군가 부채질한 탐욕에 휘둘린 탓인지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것이 이 야심찬 책의 목적이다.

삶과 정책의 목표를 돌아보게 하는 ‘돈과 좋은 삶의 인문학’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오늘 우리의 삶의 조건을 이루는 사회경제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정신적 뿌리를 검토한다는 측면에서는 이 분야 고전인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나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등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이들 고전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은 역사의 고찰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의 현실로 한 걸음 바투 다가와 끝없는 욕구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가장 최근에 성장 지상주의에 맞서 활발히 활동 중인 행복 경제학과 환경주의의 논의조차도 진지한 비판적 성찰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고찰을 거쳐 스키델스키 부자는 자본주의가 주입한 “아무리 많이 가져도 충분치 않다”는 탐욕의 부추김에 맞서, 좋은 삶을 위한 일곱 가지 기본재(basic goods) –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 의 개념을 끌어낸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경제 성장과 욕구의 무한한 자극이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가져야 만족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들은 알코올로 인한 사망자 수에 관한 연도별 통계부터 OECD 국가 실업률, 혼인율과 이혼율, 문화 행사 참석률 등 확인할 수 있는 각종 통계 분석을 가지고 이 기본재가 영국의 경우 1974년 이후 거의 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그토록 경제 성장을 맹신했지만 이 성장이 아무런 목적이 없는 성장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정치적으로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는 이념을 중심부의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정책과 사회 공동의 목표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기본재를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데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기본재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하라는 압력 줄이기(주당 노동 시간의 제한과 법정 휴일의 확대, 일자리 나누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소비 압력 줄이기(누진 소비세, 광고의 제한), 세계화의 속도 조절, 자본 도피와 핫 머니의 통제 등 구체적 사회 정책까지 세세히 거론함으로써, 충분함과 만족을 모르는 무한 경쟁의 쳇바퀴를 걷어차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철옹성이던 한국 사회의 성장 신화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질적인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삶의 질에 관한 각종 지표는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우리가 영위하는 경제 활동이 무엇을 지향해야 마땅한지 진중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에 ‘돈과 좋은 삶에 관한 인문학’인 이 책은 훌륭한 조언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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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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