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시간강사,
    이름만 있고 권리는 없는 '교원'
    고등교육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의 수단일 뿐
        2013년 06월 14일 1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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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비정규교수(시간강사)의 현실과 고등교육법의 문제점 등에 대해 기고 글을 몇차례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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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교수학술3단체(전국교수노조, 민교협, 학단협)와 전교조가 주최하고 정진후 의원실과 교수신문이 후원하는 “개정고등교육법 폐기와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2011년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하고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시행이 1년 유예된 일명 ‘시간강사법’의 대체법안 발의를 촉구하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 토론회였다.

    대체법안을 발의하기로 한 국회에서 ‘시간강사법’의 이해당사자인 한국비정규교수노조와 전국강사노조의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법안 발의를 계속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고등교육법 재개정의 전제를 재확인하고 대체법안의 방향을 공유하기 위해 교수학술3단체가 이해당사자인 두 노조를 초청하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국강사노조 측에서는 토론회에 참여하지 않아 교수학술3단체와 비정규교수노조만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발제와 토론 과정에서 직접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토론회를 통해 제기된 핵심은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학의 공공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기업이 이윤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비용절감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는 것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된 것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대학의 서열을 공식화하고 서열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이 차등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의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방향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교과부(장관 이주호)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학자금대출제한대학,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주요 대학평가에 사용되는 지표의 일부를 개선·보완한 「2013년 대학 평가지표 개선안」을 발표했다.

    유1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평가지표(단위: %)>

    지난해와 올해의 평가지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부분은 취업율과 재학생충원율이다. 발표자로 나선 박정원 교수는 대학경쟁력 강화란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이 국제수준의 교육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역대학 간의 살아남기 경쟁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2년의 경우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전임교원확보율”은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는 대학이 전임교원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한국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은 국공립대학교의 경우 70%대에 머물러 있고, 사립대학교의 경우 60%를 겨우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 사립대의 경우 50% 이내인 대학도 허다하다. 서울대를 제외하고 전임교원을 100% 확보한 대학은 전무하다.

    그런데 100% 전임교원을 확보한 서울대의 경우에도 비정규교수 수가 타 대학에 비해 가장 많다.

    (서울대는 전임교원의 주당 책임강의시수가 6시간인 반면 다른 대학은 9시간이라는 점에서 전임교원 확보율이 100%인 서울대에서 비정규교수 수가 다른 대학에 비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전임교원의 책임강의시수는 대학교육의 질과 결부되어 있다. 연구와 교수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대학교육에서 전임교원의 책임강의시수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대학교육의 질이 그렇지 않은 대학에 비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부산대의 경우 전임교원은 1174명이지만 시간강사의 수가 1206명이다. 전남대는 전임교원의 수가 1180명이지만 시간강사의 수는 785명이다. 겸임교수, 초빙교수, 전임대우강사 등 무늬만 교수인 다른 비정규교수의 수를 합하면 전임교수의 수보다 많거나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이 비전임교수인 비정규교수 없이는 대학 교육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대학이 현재 8만명에 달하는 시간강사들을 전임교원으로 채용한다면 대학의 전임교원확보율 100%를 달성할 것이고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대학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비정규교수인 시간강사는 매학기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의 경우 주당 4.5시간에서 4.8시간을 강의한다.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담당시수는 전임교원의 책임강의시수가 9시수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 해당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많게는 대학 전체 강좌의 50%, 적게는 3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 강좌의 절반을 비정규교수가 담당하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대학 시간강사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에서 시간강사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그 역할에 부합하는 지위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등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는 시간강사의 역할은“교육과정의 운영상 필요한 자”로 다소 모호하게 명시되어 있을 뿐 처우에 대한 권리와 규정은 대학이 정하게 되어있다. 이로 인해 대학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지 않다.

    소위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 원칙에서 가장 예외적인 집단이 바로 대학 시간강사들이다. 시간강사가 전임교수에 비해 받고 있는 차별 중 가장 극심한 차별은 임금 차별이다. 시간강사는 전임교수와 달리 일정액의 월 급여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강의 시수에 따라 강의료라는 형식으로 지급받는다. 그래서 전임교원에 비해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18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이상민 의원(민주당)과 김진표 의원(민주당),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 황우여 의원(당시 한나라당) 등이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들 법안 중 이상민 의원의 법안은‘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구분하던 기존의 교원 범주를 ‘조교수 및 연구교수(전임강사 및 시간강사를 말한다)’로 구분하여‘전임강사’를 ‘연구교수’라는 명칭으로 통합하는 법안이었다. 나아가 권영길 의원은 시간강사와 전임강사를 통합하여 명칭을 ‘연구강의교수’로 하는 진일보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기존의 시간강사제도를 폐지하고 대학 비정규교수에게 법적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이 교과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과부는 2011년 3월 22일 시간강사 제도를 폐지하고 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에서 확정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정부의 개정안은 2011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며 현재 시행을 1년 유예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2014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비정규교수노조

    개악된 고등교육법 폐기와 대체법안 발의를 촉구하는 교육운동단체 공동 기자회견(사진=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정부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지위를 부여하고 고용안정과 신분보장을 강화한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변형된 시간강사제도이자 대학의 비정규직화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개정된 고등교육법은 시간강사를‘강사’로 명칭을 바꾸고 법적 교원 지위를 부여했을 뿐“제14조의2(강사)”라는 항목을 두어 강사를 교원 외에 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은 강사를 교원으로 간주하면서도 교원으로서의 권리는 박탈하는 개악이었다. 더구나 소수의 강사를 교원확보율에 포함시킴으로써 일부의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고 다수의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하는 등 대학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악법이었다.

    문제는 정부의 고등교육법 개정이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제를 형식적으로나마 실현하겠다는 단순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고도의 계산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2008년 10월 10일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구분하던 기존의 교원 범주에서 전임강사를 조교수에 포함시키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정부의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에 따라, 대학의 자율규제가 가능하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완화되어야 할 규제를 개선 또는 폐지하고자 함”이라고 그 제안 이유를 들고 있다. 정부는‘시간강사법’이 통과되기 전인 2011년 7월 21일 이 개정안을 공포했다.

    2011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시간강사법’에서 강사는 교수, 부교수, 조교수와 달리 승급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비전임교원이다. 교원이라는 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1년 단위의 계약직이며 임용 및 재임용과 관련된 권리와 처우를 법이 아니라 학칙 또는 학교법인의 정관으로 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앞서 7월 21일 통과된 개정안과 12월 30일 통과된 개정안으로 대학은 전임교원을 충원하지 않고도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합법적으로 마련한 셈이다. 기존의 전임강사 대신 1년 계약직인‘교원외 교원’인 강사를 대신 뽑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열어 놓았으니 이 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더 이상 전임교원을 뽑을 이유가 없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전임교원에 비해 처우가 낮은 비정규직인 강사를 채용하여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1석2조가 효과를 보는 셈이다.

    대교협 등 대학 단체에서 강사 채용시 재정 부담과 임용과 재임용 절차를 문제 삼아 시간강사법의 시행을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대학이 이 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이 강사의 임용과 재임용 관련하여 채용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해고의 유연성이기 때문이다.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의 핵심은 역할에 부합하는 지위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이다. 대학 비정규교수는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함으로써 고용불안과 낮은 임금, 부당한 경쟁과 대학에 종속된 신분관계 등 온갖 고통을 받아왔다.

    그런데 한편으로 대학 비정규교수의 문제는 우리에게 대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 비정규교수 문제는 우리에게 한국 대학이 대학으로서 정상적인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상호 약탈적인 경쟁을 지속하며 대학을 줄세우고 서열화하려는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의 약한 고리가 바로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가 아닌가?

    필자소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사무처장, 부산대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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