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란다 원칙' 고지받은 미란다
    [산하의 오역] 1966년 6월 13일, 인권 존중의 한 상징 세워지다
        2013년 06월 14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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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깨나 본 사람들이라면 아니 깨나까지도 필요 없고 남들 보는 만큼 본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암송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부를 권리가 있다.” 미란다 원칙에 따라 경찰이 범죄 혐의자 체포 시 의무적으로 옲어대야 하는 대사다. 이 미란다 원칙이 확립된 것은 한 강간범 때문이었다.

    1963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라는 도시에서 에르네스토 미란다라는 스페니쉬한 이름을 가진 청년이 18살 난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체포된다. 소녀는 사막에서 이틀 동안 끌려다니며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소녀는 가해자 이름을 댔다. 경찰은 즉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범인을 잡으러 출동했다. 곧 미란다는 수갑 차고 경찰서로 끌려왔다. 그런데 미란다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에 바짝 열받은 경찰은 더욱 강도 높은 추궁 (어떻게 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감)을 벌여 마침내 자백을 받아낸다.

    자술서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인쇄돼 있었다. “나는 나의 법적 권리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했고 내가 하는 진술이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즉 경찰은 제대로 된 권리의 내용을 미란다에게 전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미란다는 진술을 번복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간다. 그리고 여기서 경천동지할 판결이 나온다. “심문 중 변호사를 입회시킬 수 있는 권리를 고지받지 못했고, 어떠한 경우에서든 유효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자기부죄진술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피고인의 권리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판사들은 5대 4로 미란다의 무죄를 선고한다.

    이 원칙적인 판결에 분노도 터져나왔다. 당장 경찰들이 “범인을 잡으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고 아우성을 쳤다. “변호사가 달라붙어 있는 넘을 어떻게 심문하란 말이냐.”

    일반 시민들도 대법원이 “범죄 예방이나 범죄 피해자의 권리보다는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법의 판결은 법의 판결이었다. 미국 각지의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이 적혀진 종이를 몰래 들고다니여 외우고 체포한 이의 귓방망이를 잡고 그 대사를 읊어야 했다.

    미란다

    범죄 관련 서류에 나와있는 미란다의 모습

    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미란다가 좋아할 일은 못되었다. 미란다의 동거녀가 새로운 증언을 했고 경찰은 다시 미란다를 체포했다. 물론 미란다 원칙을 또박또박 불러준 후에. 미란다는 10년의 징역을 살고 나왔지만 그에게는 더 큰 횡액이 기다리고있었다.

    “내가 미란다 원칙을 만든 그 미란다요!”를 뻐기고 다니던 그는 술집에서 시비를 일으켰고 한 남자가 미란다의 목을 칼로 그어버린 것이다. 미란다는 극심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고 사람들은 미란다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물론 미란다를 죽인 이를 체포할 때에도 미란다 원칙은 낭랑하게 암송됐다. 미란다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죽지만 그 이름은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경찰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 박희순이 “넌 변호사를 선임해도 소용없고, 묵비권을 행사하면 계속 쳐 맞는거야!”를 부르짖을 때,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이 “”내가 지금 너한테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그리고 나머지는 지금 생각이 안 나, 이 XX 놈아…나중에 판사가 물어보면 다 들었다고 그래, 알았어?”라고 윽박지를 때 가슴 속 한 구석이 시원해졌던 기억이 나지만 정말로 그럴 경우 경찰은 경을 칠 수도 있다.

    실제로 판례로 미란다 원칙 고지 없이 체포된 이에게 무죄가 선고된 판례가 있으니까.

    천하의 나쁜 놈, 연쇄살인범에 어린애 강간범들에게까지도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때 일반 시민의 권리 또한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놈들 같은 짐승들에게 무슨 권리?”라고 부르짖는 건 속이 뻥 뚫리는 일이지만 자신이 짐승의 누명을 쓸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만만하게 하니 범죄자들이 판을 치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페친 금태섭 변호사님의 정의가 명징하니 답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범인들이 활보하거나 법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은 아니다. 적법절차를 지키면서도 사법의 정의는 달성될 수 있다.”

    결코 위대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았던, 아니 인간 이하의 범죄자였던 한 청년의 이름은 그렇게 인류가 발견한 인권 존중의 한 상징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1966년 6월 13일 미란다 원칙이 세워졌다.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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