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대세는 '케드'?
    [TV 디벼보기] 티비의 위기, 방송콘텐츠의 부실함이 원인
        2013년 06월 12일 0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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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이면 지상파 3사에서는 연기대상이니 연예대상이니 나름대로 큰 자기 잔치가 벌어진다. 누가 대상을 수상했느니 누가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연말 연예 뉴스가 호황을 누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올 상반기가 다 지나가는 시점에 올해의 드라마는 무엇이 있었을까.

    일명 ‘들마 덕후’들에게 올해 상반기 지상파 드라마는 흉작이다. 이렇다할만한 웰메이드 드라마는커녕 점점 막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뻔하디 뻔한 ‘할리퀸 로멘스’같다고 하지만 로멘스 드라마의 핵심은 뻔한 스토리에 얹는 ‘변주’에 있다.

    물론 핵심은 ‘대사빨’과 ‘영상빨’이지만, 지금 방송하고 있는 로멘스 드라마든 가족드라마든 그 어떤 신선한 변주도 없다. 가족 드라마를 표방하면서 온갖 잡스러운 코드들이 산만하게 나열된 수준이거나 (<최고다 이순신>) 막장계의 레전드 임성한의 작품(<오로라 공주>), MBC가 임성한 이후 또다른 막장 작가를 찾았다는 드라마(<백년의 유산>), 여주인공이 화장품광고와 드라마를 구분 못하는 경우(<장옥정, 사랑에 살다>), 수지와 승기만으로는 살짝 아쉽거나(구가의서), 민폐 캐릭으로 답답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천명>)

    오히려 웰메이드 드라마는 케이블티비에서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어쩌면 드라마의 시대는 새로운 들마 덕후들의 말대로 ‘케드’가 대세인지도 모른다.

    종편은 여전히 시청률에서 죽을 쑤고 있지만 <빠담빠담>, <응답하라 1997>,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신의 퀴즈>, <뱀파이어 검사>, <TEN>, <별순검>등은 제법 충성스러운 팬들과 함께 ‘웰메이드’의 옷을 입고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다음 시즌 방송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만듦새의 비결은 종편이 채간(?) 훌륭한 작가들이나 피디들 덕분이기도 하다.

    응칠

    인기 많았던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하지만 최근 케이블 채널 중 가장 괜찮은 드라마를 내놓고 있는 곳은 tvN이다. 개국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의 축사 (당시 대표 문성현)를 따기도 했던, 그나마 (CJ 덕분에)제법 알차게 성공해온 이 방송사는 지상파 유명 피디를 채가지 않고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드라마 연출가를 키워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tvN은 SNL코리아와 롤러코스터, 막돼먹은 영애씨,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 등으로 예능면에서도 제법 쏠쏠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드라마로 떠오른, 올 상반기 최고라 평가되는 드라마 <나인>의 피디는 <별순검>(시즌 1,2)과 <인현왕후의 남자> 그리고 ‘나인’을 연출한, 순전히 티비엔에서 성장한 경우다.

    ‘케드’의 성공 뒤에는 ‘미드 세대’가 있다. 한국에서 미드의 열풍은 지상파에서 ‘더빙판’으로 주말밤에 방송하던 시절부터 있어왔다. 한국 드라마가 성장하고 재미있어지면서 미드의 열풍은 주춤했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미드의 새로운 부흥기를 가져왔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X-file>이나 <CSI>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된장녀들의 교과서 <섹스앤더시티>를 넘어 온갖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 퍼졌다.

    미드는 한국드라마와는 달랐다. 소재의 다양함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한편당 제작비의 규모가 다르니 당연히 스케일도 달랐다. 액션은 물론, 작가 군단의 쫄깃한 대사도 달랐다. 알고보니 친남매와 망할 온갖 불치병 여주인공에 지친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적극적인 미드 수입에 앞장섰다. 그리고 지금 케이블드라마의 작법이나 스타일은 미드의 그것과 꽤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지상파 드라마를 뛰어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시즌제의 제작, 스타일적인 영상 편집, 탄탄한 대본, 약간의 사전제작까지 (물론 지상파에서는 여전히 금기시 되는 중간광고도 포함) 이정도면 작가집단이라는 점만 빼면 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의 소재도 넓어졌다. 케드 최초의 대박이라 불리우는 <별순검>은 조선판 CSI로 미드 세대의 시청자를 노린 매우 영리한 한 수였다. 그 외에도 검사가 뱀파이어라는 설정, 온갖 수사물과 추리물,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묘사, 여기에 30대들의 추억팔이까지 성공했다.

    ‘케드’ 소재에서도 그렇지만 그 표현에서도 지상파보다 조금 더 자유롭기도 하다. 흡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수위 높은 베드신과 범죄수사극에서는 피도 적절히 나올 수 있다. 아직 미국의 유료채널의 수위까지는 못갔지만 그래도 순진무구한 지상파에 비하면 훨씬 더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케드는 젊은 미드 세대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깐 딴길로 새자면 한국의 방송사 중 유일하게 KBS만이 할 수 있다는 드라마 장르가 있다. 일명 ‘성우해설 대하사극’이다. MBC의 퓨전사극에 비교되는 KBS의 대하사극은 차별화되는 대규모 전투씬과 ‘대하’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장르이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스토리와 막장시댁을 버무려 놓은 야릇한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고군분투하며 고만고만한 시청률 전쟁을 할 때 명풍 케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이제 그냥 한드가 아니라 케드라는 장르 덕후를 양산해내는 중이다.

    한국의 케이블 티비 보급률은 90%에 육박한다. 종편과 케이블의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4일 스마트세대 20대의 미디어 이용 행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젊은 층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매체는 단연 스마트폰(50.2%)이라고 한다. 전국의 만 13세 이상 6,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TV를 필수 매체로 꼽은 20대는 15.9%에 불과했다. 전 연령대에 걸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

    결국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긴 높은 연령대는 여전히 티비를 신뢰하고, 자주 시청하며, 영향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동 중에 뉴스를 검색하거나 원하는 컨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스마트폰, 그리고 SNS를 통해 뉴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종편 채널은 정권의 특혜 덕분에 앞 번호를 부여받았다. 지겹도록 원하는 채널까지 도달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며, 부러 외우지 않아도 된다. 종편이 미친 듯이 막장을 뿜어내는 장르는 드라마가 아니다. 뉴스 분석 프로그램이다.

    상대적으로 지상파에 볼 것이 없는 시간(드라마 재방송, 본 뉴스 또 보기 등등)에 뉴스 분석 프로그램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친절하다. 물론 내용은 막장이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그 화룡점정이다. 채널 A에서는 장윤정과 반목하는 가족들을 출연시켜 놓고 ‘반론이 있으면 여기 나와라 메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도 안되는 짓도 했다. 종편의 뉴스야 말로 한국판 <현장고발 치터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잃어버렸다. 퇴근 후 가족들과 저녁을 즐기고, 일일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9시 뉴스를 함께 보는 장면이 불가능해진 것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삶의 변화이기도 하다.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저녁을 나누고 함께 티비를 보는 삶이 불가능해진 까닭이 단지 스마트폰의 보급 때문일까. 티비의 위기는 단지 아이들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기 때문일까.

    티비의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 사람들은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했다. 누구도 티비 대신에 영화관을 찾을 일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는 티비와 또다른 세계와 다른 만족을 선사하며, 천만관객 영화는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물론 스크린쿼터와 티비에서 영화를 방송하기까지의 시간을 보장해준 것도 있었지만 영화는 나름대로의 팬을 확장해왔다. 티비가 위기라고 한다. 지상파의 드라마는 매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티비 뉴스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져가고 있다고도 한다. 정말일까. 정말 티비는 이제 스마트폰에 밀려버리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뉴스타파’가 프레스 센터에서 전재국이라는 이름을 호명했을 때 그 자리에서 술렁거렸던 기자님들 중 지상파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대들의 방송사에서 쫒겨난 이들이 대박 특종을 발표하는 그 자리에 앉아 취재기사를 고민하면서 어떤 기분이셨나. 촛불 때 거리에서 받던 그 냉대를 떠올리신 기자들은 없으셨나.

    혹여 티비의 위기는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재미없는 뉴스, 그저 그렇고 그런 멘트, 정부의 보도자료 베끼기, 뻔한 클리세들이 덕지덕지 붙은 고만고만한 드라마, 베끼기 바쁘거나 연예인 이름빨에만 기대는 시시껄렁한 예능. 도대체 무엇을 보란 말인가.

    케드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단지 작가와 피디를 빼갔기 때문인가. 케이블 예능이 성공하는 이유가 단지 자극적이기만 하기 때문인가. 티비의 위기는 스마트폰 중독 젊은 세대들 때문이 아니라 방송 콘텐츠를 생산하는 스스로의 책임이라 생각하진 않나.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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