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여민동락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예수의 '가,포,눈,눌'과 맹자의 '여민동락'
    2013년 06월 11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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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페이스북을 하면서 상상도 못했던 체험을 하고 있다. 공부가 놀이고 인생이며 벌이인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전 읽기 모임을 몇 개 만들었다.

그 중에 하나가 ‘맹자랑 놀자’라는 『맹자』읽기 모임이다. 매달 둘째주 넷째주 저녁에 무조건 맹자를 읽는 모임이다. 2월부터 했는데, 이제 10분의 1 정도 읽었으니 이런 식으로 하자면 3년쯤 걸릴 거 같다. 맹자 선생님의 70여년 인생 전체가 실려 있는 책을 3년만에 읽자는 심뽀가 조금은 면구스럽다.

공자보다 200년쯤 뒤에 태어난 맹자, (어떤 이는 100년이라 하는데, 암튼) 『맹자』를 읽을 때마다 거의 매번 한번쯤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단어, 맹자 전편에 깔려 있다. 공경과 나눔을 통해 이웃과 길벗이 되려는 태도를 말하는 바,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란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맹자2

여민동락(與民同樂)은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서, 백성들이 믿고 따르며 존경하는 임금이 되려면 여민동락을 해야 한다. 『맹자』에는 여민해락(與民偕樂)이라는 말도 있다. 맹자는 왕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모두 얼굴 찡그리며 머리 아파하면서 ‘왕은 저리 좋아하는데, 우린 사는 게 뭐꼬’라 하면 안 되겠죠. 이것은 왕께서 홀로 음악을 좋아할 뿐이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不與民同樂也). 그런데 반대로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실 때 백성이 모두 좋아하며 ‘왕께서 오늘도 건강하신가봐. 오늘도 이런 좋은 연주를 하시잖아’라며 좋아할 정도라면, 이것은 왕이 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일 겁니다(與民同樂也). 왕께서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신다면, 천하의 왕이 되실 겁니다.”

맹자는 이런 식으로 컨설팅 했다.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하편에 있는 이 말은 저 옛날 맹자가 했던 까마득한 경구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다시 새겨봐야 할 글이다.

여민동락하려면 첫째 대화해야 한다. 맹자도 각 나라의 왕들과 제자들과 대화했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아고라에서 사람들과 문답식으로 대화했다. 예수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진리를 나누었다.

대화하되 맹자처럼 조심스럽고 논리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일방적인 강론이나 명령이 아니더라도, 가끔 뜨끔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대화를 해야 한다. 여민동락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와 비슷할 것이다. 자기 소리보다 남의 악기 소리를 듣고 끊임없이 서로 눈빛을 나누고, 마음으로 대화할 때 아름다운 음악은 완성될 것이다.

둘째, 늘 끊임없이 반복해서 반성해야 한다. 쟈크 데리다는 “환대란 없다”고 했다. 환대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상대방을 위해 배려해야 한다.

종요로운 점은 이 말이 꼭 왕이나 대통령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관리자가 직원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고 있는지, 부모가 자식과 함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봐야 할 경구다.

백성과 직원과 학생과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즐거워 하는 이민독락(離民獨樂)으로 사는 사람은 이기주의의 성채에 갇혀 사는 인물이다. 이민독락의 이기주의 속에 갑을관계가 팽배하여 이 사회는 철저히 서열화되어 가고 있다. 23명이 이어 자살한 해직자의 가족과 송전탑에 올라 ‘죽어가는 호모 사케르(Homo Sacre)’도 있건만, 한마디 없는 지도자에게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민동락은 비단 『맹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가・포・눈・눌’을 얘기했다. “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눈뜸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누가4:18~19)이라 했던 말도 생각해 보면, 예수와 맹자의 거리도 가깝게 느껴진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12:15)는 말도 여민동락과 같은 표현이다.

요즘 정치인 누구라도 쉽게 말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말 앞에 먼저 있어야 할 말은 여민동락일 것이다. 동문서답 하는 제후들에게 정확히 컨설팅 해주던 맹자의 마음, 저 여민동락이라는 절실한 진실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간곡히 필요하다.

2500년전 제후들이 그랬건만 지금도 머리 된 자들이 맹자의 권유를 무시해서 안타깝다. 경제민주화라는 말 앞에 ‘여민동락’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조그맣게 발음해 본다. 여민동락 경제민주화, 여민동락 경제민주화.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도 일체가 되었을 때 최고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지휘자와 단원이 함께 동고동락하는 순간이 축적되고, 자기 악기 소리와 함께 옆 연주자의 악기 소리도 들으며 눈빛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하모니는 완성될 것이다. 완벽하게 이루어져가는 하모니를 흥얼거리자니 괜히 흥이 난다. 앗싸, 여민동락.

필자소개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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