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항쟁의 26년 기념일에,
    저들은 전두환의 행태 반복
        2013년 06월 10일 06: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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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강제 철거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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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 의도 전혀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니 그저 6월 10일이었을 뿐. 어떤 계획도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경찰과 각 구청은 작정이라도 한 듯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와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그리고 양재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농성장을 동시에 철거했다. 우연치곤 발에 밟힐 정도로 갓끈이 길다. 이들은 왜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농성장을 철거했을까.

    오늘 오전 9시 20분경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대한 강제철거를 시작했다. 압도적 병력과 중구청 직원을 앞세워 형님먼저 아우먼저 작전을 폈다.

    대한문 분향소는 쌍용차 회계조작으로 발생한 정리해고로 숨진 24분의 노동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쌍용차 국정조사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4월 5일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숱한 철거와 탄압에도 끝끝내 비닐천막 하나로 버티던 공간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준 공권력의 야만성을 우리는 오늘 또다시 살 떨리게 경험했다. 중구청은 계고장 제시도 없이 막무가내로 모든 집기를 쓰레기차에 실어갔고, 경찰은 저항하는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을 폭력과 겁박으로 짓눌렀다.

    결국 오전 10시경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외 5명이 연행됐다. 경찰이 공무집행을 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인 언행과 강압적으로 밀어 부쳤다. 남녀노소는 물론 시민과 노동자 성직자와 신자의 구분은 경찰에겐 없었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주변은 지난달 남대문 경찰서장이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한 바 있다. 금지구역 통보가 비록 집시법에 근거한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같은 이유로 집회 금지를 이미 한 바가 있다.

    당시 우리는 집회금지 자체가 경찰의 지나친 월권이며 집회 및 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협한다는 취지로 집회금지 취소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결국 서울 행정법원은 우리들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주장하는 통행권과 소음 등의 문제를 들어 집회 자체를 불허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이었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올바르게 해석한 판결로 우리는 받아들였다.

    이미 한 차례 법원의 판결이 있는 사안에 대해 다시 경찰은 지난 오월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하며 우리들의 집회 및 시위 자체를 옭아매려 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집회금지구역 통보 취소 가처분 신청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중구청과 경찰은 현재 법원이 판결을 앞둔 사안에 대해 앞질러 공권력과 행정력을 발동한 것이다. 이는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든 상관 하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안하무인격 공권력 집행이 아닐 수 없다. 중구청과 경찰이 서둘러 분향소 강제철거를 한 배경엔 법원 판결을 앞둔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강제 철거 후 경찰의 대응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대한문 일대에 바둑알 박듯 경찰을 세워 알 박기를 했다.

    이런 경찰의 행태는 그동안 우리를 향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시민의 통행권을 스스로 침해한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으로 대한문 일대는 경찰들로 가득 찬 상황이 전개됐다.

    우리는 강제철거를 규탄하고 이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오전 11시에 갖기로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기자들은 11시에 맞춰 취재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기자회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느 법률에 기자회견이 경찰의 허가사항이란 말인가. 특히 경찰은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 또한 명백한 오지랖이며 위법이다.

    기자회견 장소를 경찰 임의대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경찰이 먼저 알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기자회견을 가로막았다.

    백기완

    철거된 분향소 앞의 팔순의 백기완 선생(사진=참세상 김용욱)

    기자회견 참석차 자리에 함께한 팔순이 넘은 백기완 선생님은 유월의 따가운 땡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있게 만드는 치욕 아닌 치욕을 경찰로부터 당했다.

    기자회견과 같은 표현의 자유는 ‘명확성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사안이다. 임의로 현장에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오늘 대한문에서의 경찰의 이 같은 불법 무법으로 기자회견은 1시간을 넘긴 이후에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무슨 근거와 조항으로 기자회견을 막았는가. 또한 법원에서 ‘옥외집회금지구역’ 문제로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과 구청은 뭐가 그리 조급해서 강제철거라는 무리수를 뒀는가.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만 오늘 철거당한 게 아니다. 시청 맞은편에서 내일이면 2000일을 맞는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또한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또한 양재동에서 은박지 한 장 깔고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를 외치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농성장도 동시에 쓸려 나갔다.

    우연치곤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한 날 한 시에 농성장에 대한 철거. 그것도 오늘이 6.10항쟁 기념일임에도. 혹시 정권입장에서 6.10항쟁 기념일을 지우고 싶은 역사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이번 분향소와 농성장에 강제 철거 사태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 6.10항쟁 26주년인 오늘 대한민국에선 기자회견과 농성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천박한 민주주의의 발가벗은 모습을 경찰이 여봐란 듯 보여줬다.

    오늘 경찰과 구청이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벌거벗은 야만의 승냥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현대차 양재동 농성장에 대해 즉각 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농성장을 쓸어 버린다하여 노동자 투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다시 설 것이고 다시 분향소와 농성장의 깃발을 움켜쥘 것이다.

    필자소개
    쌍용차 해고자(@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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