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아름다운 판타지는 없다
    [미드로 보는 세상] ‘왕좌의 게임 – 얼음과 불의 노래’
        2013년 06월 10일 1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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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국에 있는 미드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바로 화제의 미드 ‘왕좌의 게임 – 얼음과 불의 노래(이하 왕좌의 게임)’ 시즌3의 에피소드 9편이 방영되었기 때문.

    원작 판타지 소설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떤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는지 이미 눈치를 챘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피의 결혼식’ 장면이 방영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 언급하지 않겠음)

    이 에피소드를 본 시청자들은 모두 충격과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미 소설을 본 필자 역시 차마 보기가 힘들어 아직 시청하지 않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이처럼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미드 중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드를 꼽으라면 단연 ‘왕좌의 게임’을 꼽을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은 ‘진격의 거인’, 미드는 ‘왕좌의 게임’이 최근 가장 큰 히트작이라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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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좌의 게임 시즌1 포스터

    이처럼 세간의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명품 미드 ‘왕좌의 게임’은 ‘반지의 제왕’ 이후에 가장 히트한 ‘G.R.R 마틴’의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젊은층에는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정작 나이가 좀 있거나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거의 무관심의 대상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을 뛰어넘는 재미와 스케일, 그리고 여타의 판타지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묵직한 주제의식과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판타지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거기에 원작소설보다 더 잘 구현한 듯한 ‘미드’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출력과 스케일 등은 한마디로 토털패키지, 완벽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극찬이 조금 과한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한번 보시면 이해한다.

    왕좌의 게임은 ‘웨스테로스’라는 이름의 가상 대륙을 무대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다. 북부, 서부, 남부, 또 바다 건너 자유도시들을 무대로 하는데 북부에 ‘더 월’ 이라는 거대한 얼음장벽이 북부너머 이상생명체들로부터 대륙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크 가문과 그 외에 각 지역을 관장하는 라니스터, 티렐 등의 다양한 가문들이 대륙의 패권을 두고 암투와 전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마법과 용들이 날아다니던 전설이 끝나고 난 대륙에서 남은 것은 권력을 향한 욕망과 복수와 같은 것들인데 이 과정에서 각 가문들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나 조연들의 고뇌와 활약이 전쟁, 권력게임, 복수 등의 테마를 가지고 큰 스케일로 펼쳐진다.

    이 드라마에는 사실 특별히 주인공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조연과 주인공을 오가는 수많은 인물들이 출현한다. 그 이유는 주인공인줄 알았던 인물들이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조연인줄 알았던 인물들이 부상하기도 하고 또 사라져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중 한 명인 ‘몰살의 토미노’(‘건담’시리즈의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의 별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몰살의 마틴 옹’이라는 원작자의 별명처럼 출연인물들의 뜻하지 않는 죽음은 이 판타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하는 ‘규칙’과도 같다.

    “발라 모르굴리스(모든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소설로는 주요인물이 한 권에 한 명씩은 죽는다고 보면 되는데 다음 권에서는 누가 죽을거냐를 가지고 팬들이 내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를 보실 때도 시즌 당 주요인물 한 명씩 죽는다고 미리 예상하고 보는 게 나중에 심리적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는 ‘팁(Tip)’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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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스 넘치는 시즌3 뉴욕타임즈 신문광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원작자는 중세 장미전쟁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적 요소들을 거의 모두 배제하고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세계를 구현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같은 특별한 몬스터도 거의 나오지 않고 마법이나 이런 것도 극히 일부로 제한된다.

    그나마 눈에 띄는 판타지적 요소는 ‘드래곤’, 그러니까 ‘용’인데 이것도 대부분 멸종된 것으로 나올 뿐이다.(물론 시즌1을 마지막까지 보신 분들은 환상적인 장면을 목도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판타지에 기대하는 상상력의 구현체들이 극히 일부로 제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재밌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기존 판타지들이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미드는 바로 권력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인간세계에 가까운 판타지가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는 욕망과 권력욕에 사로잡히고 번번히 실수하고 질투하는 어리석게 살아가는 인간 현실세계의 모습을 판타지로 구현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처럼 순수한 의미의 ‘현자’ 따위는 없다.

    미드 ‘왕좌의 게임’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만큼 대충 소설 1권 분량이 한 시즌에 걸쳐 방영된다고 보면 된다. 지금 세 번째 시즌이 방영되고 있는데 원작자가 7권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할 예정(현재 5권까지 나와 있다)이라고 하니 미드는 시즌 7이나 8쯤에 완결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다음 책이 나오는데 평균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있어 60세를 훌쩍 넘긴 언제 심장마비가 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원작자의 몸매와 건강상태가 수많은 매니아들을 심히 걱정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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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자 ‘마팅’옹! 당신의 건강을 팬들이 제일 걱정 한답니다

    이 명작 미드를 보면서 필자가 떠올린 것은 정작 ‘마키아벨리’와 ‘사울.D.알린스키’다.

    그 이유는 이 현실적인 판타지 드라마가 다른 판타지들과 다른 이유는 권력에 대해서 비정할 정도로 냉철하게 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을 보다보면 가장 어리석은 인물들은 권력을 써야할 때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을 써야 하는 대상을 잘못 설정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선한 인물들이거나 대의명분을 더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거나 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들이 권력을 써야 할 때를 놓치는 순간 그 망설임과 어리석음이 어떻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살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현실세계의 정치를 보는 것과 같다. 선한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왕좌의 게임’이라는 이 거대한 판타지 세계 속의 인물들은 선이 악을 이기고 그러기 위해 무한한 용기를 내고 동료들이 어깨 걸고 뭉치는 그런 판타지는 없다고 강변한다. 판타지의 세계는 이제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판타지 세계에도 현실세계에도 ‘프로도’를 헌신적으로 돕는 ‘샘’도 거대한 악에 맞서 떨쳐 일어서는 ‘인간’과 ‘요정’들의 군대도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TV드라마나 만화처럼 선이 악을 이기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인간들은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기에 끊임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며 권력을 향해 나아가자고 설파했던 ‘알린스키’는 그의 저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그것의 법칙대로 일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마키아벨리와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 바로 그러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미드 ‘왕좌의 게임’을 보고 ‘알린스키’의 일갈을 떠올리며 나는 진보를 말하는 우리들이 오래동안 간직해왔던 판타지도 이제는 모두 무너진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아니 남아있다면 마저 무너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앞에 아름다운 판타지는 없다. 세상의 법칙과 판타지의 법칙이 다르지 않음을 ‘왕좌의 게임’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앞에는 아마도 ‘왕좌의 게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금언이 남아 있을 뿐이다.

    ‘winter is comming!’ 겨울이 오고 있다.

    필자소개
    청년유니온에서 정책기획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제민주화2030연대와 비례대표제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술, 담배, 그리고 미드와 영화를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가장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대부분의 사업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미드나 만화에서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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