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주의와 사회주의: 문제제기
도대체 소련은 무엇이었나? 타라소프의 해답(박노자 해제)
    2013년 06월 05일 03:47 오후

Print Friendly

* 2012년 11월 30일 그린빌포스트라는 매체에 러시아의 좌파 학자이자 운동가인 알렉산더 타라소프가 ‘초국가주의와 사회주의 : 문제제기를 위해’라는 글을 기고했다. 과거 소련 사회의 성격에 대한 글이다. 소련 사회성격에 대한 논쟁은 좌파진영에서는 끝나지 않은 논쟁이고, 또 과거를 향한 논쟁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사회에 대한 것은 과거의 소련사회에 대한 분석 비판 대안과 맞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라소프의 글을 박노자 선생의 소개와 권유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싣는다(원문 링크). 또한 박노자 선생의 짧은 해제를 덧붙힌다.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반론과 비평이 있으면 환영한다. <편집자>
——————

해제: 도대체 소련이 무엇이었는가? 타라소프의 해답.

소련이 무엇이었고 무엇 때문에 총 한 번 쏘지 않고 이렇게도 쉽게 무너졌는가? 소련 유민들에게 생명적으로 핵심적인 문제지만, 한반도 주민들에게도 의미심장한 화두다.

북조선의 정치나 문화에서 권력과 신분의 세습 등 일부 토착적, “전통주의적” 면모도 보이지만, 국유화된 계획경제의 골간은 어디까지나 소련 모델의 차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80년대 후반의 PD와 NL파 등은 각각 소련과 소련 모델의 “토착적 변종”인 북조선을 하나의 “이상”으로 제시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같은 소련 모델을 “대안”으로 보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크게 봐서는, 가장 흔한 대답들을 두 군(群)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A) 비록 변질과 왜곡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 국가”이었고, 친서방적 관료집단의 “배신”으로 무너졌다.

(B) 혁명 직후에는 “노동자 국가” 건설을 시도했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 사실상 “국가 자본주의” 형태를 취해 관료집단이 개별적 기업가들의 기능을 그대로 맡았다. 소련의 패망은, “국가적 자본”의 개인 자본화를 의미할 뿐이다.

(A) 계통의 해답들이 다소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노동자 국가”라면, 즉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국가라면 아무리 “친서방적 관료”라 해도 그 단순한 “배신”으로 무너질 리가 만무했다.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노동자들이 “배신자”들을 애당초에 무력화시켰어야 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노동자 국가”라면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무산계급 국제주의 원칙 배반(고려인들의 강제이주 등)이나 반환경 범죄(대대적인 원전들의 개발과 이용)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B)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판단이 서게 되는데, 소련이 단순한 “국가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의 하나의 형태라면 거기에서 노동력의 상품화가 있었느냐 라는 질문부터 받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라면 노동자들이 잉여가치를 착취하려는 자본가들에게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이윤을 남겨야 했을 텐데, 소련 같은 경우에는 반대로 완전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의미에서 차라리 잉여노동력이 있는 곳에서 굳이 불요불급이고 없어도 될 돌공장 등을 지어주는 등 “이윤을 위한 착취”를 했다기보다는 어떤 정책적 목표 (완전고용, 국방력 제고, 인민생활수준 제고 등)를 경제적 “합리성” 위에 두곤 했다.

구소련의 절대 다수 노동자들이 소련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또, “국가자본주의”라면 자본시장이 어디에 있는 것이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운동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 마디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해도, 이 사회는 분명히 그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련이란 무엇이었던가? 이 질문에 대해 러시아의 주요 마르크스주의적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타라소프는, 매우 명쾌하고 도전적인 해답을 내놓는다.

나는 이 해답의 일부 부분들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도, 기본적 취지에서 타라소프의 의견에 동의한다.

소련은 비자본주의적, 비(非)이윤추구적 산업사회를 건설하려는 과감한 시도이었고, 이 시도는 비록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사회주의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지금 파산돼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하나의 “대안”임에 틀림없다.

단, 타라소프도 지적하듯이, 매우 선별적으로, 비판적으로 대해야 할 대안이다. “국가화된 경제, 사회”에서는 관료집단의 힘이 절대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힘을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 즉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서 어떻게 제한시키고 상쇄시킬는지 “대안”을 꿈꾸는 혁명가들이 앞으로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

초국가주의와 사회주의: 문제 제기를 위해

전 세계의 좌익에게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소련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회주의 이론을 일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선 우선 엄격한 과학적 기초에 근거하여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라 불린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진정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와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의 전망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번째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좌익이 자신의 오류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하고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전진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에트 이후’의 공간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세력들이 있으며 그 세력들이 정치무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들이 정확히도 ‘현실 사회주의’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사회주의 이론의 일신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일신은 지극히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사회주의 이론은 좌익 사상 영역의 의식 속에서는 심각한 불신을 받고 있지만, 상당 부분의 인민이 스스로를 자본주의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좌익이라고 생각하도록 현실이 강제하고 있는 바로 이 때, 이 투쟁을 이끄는 조직된 세력이 대부분 과거 사회주의 사상의 교리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도 기껏해야 ‘역사의 반복’일 뿐이다.

먼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말해 보자. 우리가 아는 것처럼 소비에트 체제에 대해선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그것이 (왜곡되었든, 아니면 심지어 왜곡되지 않았든 간에) 사회주의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소련과 ‘동유럽권’ 국가에서 존재했던 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후자에 대한 지지자들은 그 체제를 주로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한다.

모든 다른 관점들(예를 들어,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라는 토대와 봉건제 상부구조의 결합이었다는 관점이나, 몰로토프의 주장처럼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기’였다는 관점)은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논증되지 않으며 비판을 이겨내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의 틀 내에서 소련 사회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나는 여기서 공산주의를 두 단계(즉 사회주의 단계와 공산주의 단계)로 나누는 스탈린주의적 분류는 무시한다. 그러한 분류는 소련의 체제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히 발명된 것이다.

이러한 스탈린주의적 과학의 ‘발명’에 담긴 특별한 의도나, 그것이 특정한 정치정세와 맺는 상관성은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동의어라는 것이다.

russianMiners-drillers

거대한 굴착기 앞에 선 러시아 기술자들과 노동자들

자,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주요한 특징을 알고 있다. 그 사회는 직접 민주주의(참여 민주주의)로서 계급이 없으며, 국가가 없으며, 비상품 체제이고, 착취와 소외를 극복하고,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에 기초하며,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생성된다.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의 이러한 근본 특징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현실 사회주의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존재했다.

a) 국가 (국가는 ‘사멸’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비교해 볼 때. 심지어 그 권위를 더 확대했다)

b) 상품-화폐 관계 (엥겔스에 따르며, 그 관계는 불가피하게 자본주의를 발생시킨다)

c)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 제도 (덧붙이자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것을 본질적으로 과두제로 축소시켰다)

d) 착취와 소외 (그 강도와 총체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 국가의 착취, 소외와 동등했다)

e)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 (그것은 공동소유가 아니었다.)

f) 사회계급

마지막으로

g) 자본주의와 동일한 생산양식 (대규모 기계제 상품생산 또는, 달리 말하면 산업적 생산양식(industrial mode of production))

동시에 ‘현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도 아니었다는 점도 증명될 수 있다.

첫째, 시장 메커니즘이 없었다. (‘리베르만’ 개혁 이후에도 시장경제의 단지 일부 요소만 등장했을 뿐 시장 그 자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자본시장이 전혀 없었는데, 자본시장이 없다면 시장 메커니즘은 원리상 작동할 수 없다.)

둘째, 국가는 사적 소유자로 행동하지 않았고 (국가자본주의라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총 자본가로 행동하지도 않았다. 즉 경제의 한 주체였을 뿐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주체였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국가는 경제를 흡수했고, 사회를 흡수하고자 시도했다. 즉 국가는 시민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총 영주처럼 행동했지만, 동시에 다른 생산수단과의 관계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사적 소유가 없었고, 다른 ‘봉건 영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시장경쟁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소련이 특수한 사회경제 체제, 즉 초국가주의(super-estatism)였다고 제안한다. 그 체제는 단일한 생산양식, 즉 산업적 생산양식이라는 틀 내부에서 자본주의와 평행하게 발전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체제는 가장 혁신적인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다. (노예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노예소유 체체’라고 부르지 ‘노예 체체’라 하지 않는다. 농노가 아니라 봉건영주의 이름을 따서 ‘봉건제’라 부른다.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름을 따서 ‘자본주의’라 부른다.)

이런 감각에서 보면 초국가주의를 그냥 국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비슷한 사례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사회과학에서 논쟁의 주제다.

과거 마르크스주의에서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단일한 생산양식에 두 개의 평행한 체체라는 이처럼 복잡한 구조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명백히도 소유자, 소유 범주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경제 체제가 생산양식과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두 가지 주요한 특징에 따라 구성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두 가지 특징 중에서 하나만 바뀌더라도 충분히 체제 전체의 변화를 초래한다. 심지어 노예소유제에서 봉건제로 이행과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은 생산양식의 변화를 동반했지만, 소유형태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았다. 각각의 경우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유지되었다.

나아가 인류역사에서 하나의 생산양식 틀 내에서 두 개의 평행한 사회경제 체체가 존재했던 적이 있다. 고대에 (서양에는) 고전적 노예소유제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고 부른 것이 존재했다.

소련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활발하게 토론된 두 번의 계기(1920-30년대와 1960년대)가 있었지만, 그 토론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났다. (왜냐하면 위로부터의 명령에 따라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대로, 마르크스 자신은 말년에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관한 관점을 수정했고,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는 죽음으로 인해 작업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의심은 적절했다. 현재 우리는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고대적’ 생산양식 양자를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적 자료를 지니고 있다. 그 하나의 생산양식이란, 비(非)기계제, 전(前) 기계제 대규모 상품 생산양식이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오직 소유형태였다. 서양에서 고전적인 노예소유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함의한 반면, 동양에서는 생산수단의 국가소유가 존재했다. (동양에서는 그것이 종종 은폐된 형태를 취했다. 즉 ‘종교적’ 형태를 취하기도 했는데, 그런 형태에서 생산수단은 공식적으로 국가가 아니라 신 또는 신들에 속했다. 또한 차르 소유 형태를 취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차르(고위 성직자)는 사적 소유자가 아니라, 차르적(종교적) 소유에서 단지 경영자, 관리자였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고 부른 것은 국가주의라고 명명되어야 한다. (이를 국가주의Ⅰ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주의Ⅱ 또는 초국가주의와 비교하기 위해서다.)

이 글의 분량과 장르의 한계(‘문제 제기’) 때문에, 이 주제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주제는 설사 단일 주제에 관한 논문은 아니더라도, 별도의 진지하며 충분한 근거를 갖춘 글을 통해 다뤄야 마땅하다.

나는 단지 다음과 같은 점을 말하고자 한다. 단일한 생산양식 내부의 이중적 체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시공동체에서 계급사회, 사적소유로의 이행기에 등장하며, 역으로 사적 소유에서 사회주의로 이행기에도 등장한다.

이는 분명히도 이러한 과정의 복잡성이나 서로 다른 문명에서의 불균질성을 뜻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 사회에서 코뮨과 같은 제도의 존재 혹은 부재와 관련될 것이다.

초국가주의에서 국가는 소유주가 되며 모든 시민은 국가에 근무하는 피고용인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국가는 잉여생산물을 영유하는 착취자로 전환된다. 초국가주의에서 적대적 계급은 제거되며 계급 차이는 상부구조 영역으로 이동된다.

그런 사회는 세 부류의 주요 계급으로 구성된다. 노동자계급, 소농계급, 지적 노동자 계급. 지적 노동자 계급은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 두 개의 주요 하위계급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 행정기구의 공무원과 둘째, 지식인(인텔리겐차). 특정한 종류의 사회적 균질성이 나타나며, 그것은 (마르쿠제의 용어를 다시 생각하면서 사용해 보면) 일차원 수준에 이른다.사회계급들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이 더 쉬워지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비교할 때 장점이다.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초국가주의의 다른 장점은 경쟁의 제거다. 경쟁의 특징은 자원과 경쟁의 수단, 특히 광고 수단의 낭비다. (알려진 바대로, 서방에서 경쟁 투쟁과 광고에 대한 지출은 기업 총수입의 3/4에 이르기도 한다.)

시장의 강력한 힘을 계획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중요한 장점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계획은 이상적으로 보자면, 자원 지출에 관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며 과학적, 기술적 진보의 예측과 유도를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막대한 물질적, 인적, 재정적 자원을 (국가의) 두 손에 집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중요한 장점을 지닌다. 그것은 극단적 조건(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경우)에서 체제가 생존할 수 있는 높은 잠재력을 제공한다.

초국가주의의 사회제도는 ‘현실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그 체제의 ‘주요한 성과’로서 즐겨 꼽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유치원·과외교육·교육체계,휴양체제, 저렴한 주택과 공공 운송이 포함된다.

dacha011

소비에트 시절 대다수의 소련시민들이 여름휴가를 보냈던 다카(DACHA)의 한 모습

그러나 이러한 사회제도는 그 자체로 초국가주의에 내재한 ‘장점’이 아니다. 그러한 제도는 국가와 고용주 간 특수한 관계에 의해 나타난다. (봉건영주와 그에 속한 농민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왜냐하면 노동시장은 가용할 수 있는 시민의 규모 때문에 제한되며, 외부 노동시장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도 고용주이자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국가는 피고용인의 건강, 교육, 생활조건을 돌보아야만 하며, 이러한 것들이 국가의 수입 중에서 생산, 특히 잉여생산물의 생산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초국가주의에서 높은 수준의 잉여가치는 극단적인 저임금에 의해 달성되지만, 동시에 들어오는 초과이윤의 일부분은 재분배되어야 한다. 재분배는 국가가 사회제도를 통해 사회 프로그램의 형태로 피고용인에게 수당을 제공하거나, 국내시장에서 핵심적 생산물과 상품, 주택, 공공운송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춤으로써 이뤄진다.

따라서 국가는 생산수단의 소유자이자 고용주로서 무엇보다 우선 시민이 자신의 수입 중 일부분을 국가에 이익에 되는 방향으로 이전하도록 강요한다(예를 들어, 교육과 위생을 목적으로). 그 다음으로 국가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서비스와 권리(예를 들어 교육)를 한편으로는 모든 시민이 차별 없이 획득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의식적으로 회피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따라서 초국가주의에서 피고용인은 자본주의에서라면 상품, 서비스 시장에서 구매해야 할 것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들이 최소한 보증이 붙더라도 좋은 품질이 아니고, 심지어 의무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도.) 물론 그것은 초국가주의에서 지불 받지 못한 임금에 정확히 상응할 것이다. (물론 대략적으로 상응하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와 초국가주의는 이런 영역에서 명백한 장점을 지니지는 않았고, 우선권을 서로 다르게 둔 것이었다. 초국가주의에서는 (질과 다양성을 희생하여) 접근성과 안정성을 우선시했고, 자본주의는 (접근성과 안정성을 희생하여) 질과 다양성을 우선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어렵지 않게 실용적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외부 노동시장은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본질적으로 무제한적이지만, 초국가주의에서 이처럼 무제한적 노동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

필자소개
러시파의 좌파 학자, 운동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