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프로파일링 실패기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에 대해
        2013년 06월 04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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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다. 내가 감을 잃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N씨가 생겨야 이 비극들이 줄어들까라는 절망감 때문에…….

    내 경험상 그리고 통계상으로도 단언하건대, 장기 미제사건의 95% 정도는 사법기관의 무능과 그리고 사소하지만 매우 기본적이고도 기초적인 실수로부터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이번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 사건은 사건 그 자체로는 매우 단순했다.

    피해자는 밤늦게까지 알바를 마치고 친구들과 (대구 시내에서 제일 번화한 동성로 소재) 근처 심야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었고, 그러던 중 우연히(?) 모르는 남자들과 같이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한 채 피해자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하게 되었고, 이때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들 중 하나였던 범인(지하철 공익근무요원, 성범죄 전과경력)이 성범죄의 목적을 가지고 피해자를 쫓아가 제압한 후 자신의 원룸으로 끌고 가서, 성폭행 과정에서 살해, 사체를 유기한 사건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참혹한 사건을 피해자에게 대단히 실례되게도 ‘단순하다’고 하는 것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무참하게 살해, 유기된 사건의 무게가 가벼워서가 절대 아니라, 범죄수사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이런 사건은 살인사건이고 참혹한 사체유기 사건이지만 수사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사실 그렇게 아주 난해하고 어려운 사건은 아니다. 피해자가 분명하고 사체와 그 현장도 명확하며, 앞뒤 맥락에 있어서 막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미궁에 빠지고 난해하고 어려워지는 데는 앞에서 말한 (오히려) 단순하고 명확할 것 같은 수사 관련 시스템의 작동에 있어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 상의 무능과 실수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원칙과 매뉴얼에 입각한 수사진행이며, 다 나아가 이를 실행할 전문 수사팀의 수사 리딩 능력이다. 물론 이러한 점을 누군들 모를까마는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S방송국, Y프로그램의 담당 작가에게서 대구 동행 취재 요청을 받은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5일이 지난 30일 오후였다(25일 여대생 실종 발생, 26일 사체 발견, 28일 공개수사 전환).

    대구-1

    평소 Y프로그램에 수사관련 자문인터뷰를 몇 번 해주었기에 별 부담 없이 선뜻 승낙을 했다. 다음 날 31일 아침에 일산을 떠나 오후 1시 경에 대구 시내 A택시 차고지(피해자를 태웠을 것으로 추정된 택시기사가 근무하는 곳으로서, 그러나 해당 택시기사는 타코메타 분석결과 용의점이 없었다.)에 도착해서 PD들로부터 사건과 수사에 대한 개요를 들었다.

    마지막 목격된 장소로부터 사체 발견 장소로 연결되는 CCTV를 분석하면서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태운 택시기사를 수배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강력범죄 수사의 가장 기초는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에 대한 행적수사이다. 우선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후 해당 피해자에 대한 행적 재구성을 통해 그 과정 속에 범죄 용의점을 추출해내는 것이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행적에는 일상적인 것과 특이한 것이 있는데 일상적인 행정을 재구성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특이 행적이 나타난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당일 행적 즉 알바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한잔했던 것으로부터 그 술자리에 평소와는 달리 면식이 없는 다른 일행과의 동석, 그리고 술자리 후 택시를 탄 것까지의 행적이 기본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었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행적에 주목했는데 이 지점에서 맨 처음에 내가 감을 잃었다는 고백을 할 정도의 실수를 내 스스로 한 것이다. 즉 처음 진술을 받은 형사들, 그리고 피해자 친구들의 진술을 나도 모르게 그냥 믿고 그 다음 분석을 진행한 우를 범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목격자 진술은 51%만 신뢰한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보기에 목격자이지만 사건에 따라 실제 그들이 목격자가 아닌 범죄 용의점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진술이 사실보다는 자신들을 변호하기 위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그들(피해자 친구들)은 (그들 자신들도 어느 정도 피곤하고 취해 있었고 동이 터오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늦은 시간에 술에 취하고 피곤한 친구를 혼자 택시에 태워 보내는 실수 아닌 실수를 함으로써 피해자를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만취하지는 않았지만 피곤 때문에 몸을 가누기 쉽지 않았던 피해자를 제대로 택시 태워 보냈다고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거기에 더해서 오히려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택시기사’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또한 실제 진술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이 동석했던 남성들에 대해 사실과는 일정정도 거리가 있는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정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맥락에 대한 스토리에 대해, 진술을 받는 형사들은 좀 더 신중하고 집중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는 실수를 함에 따라 그 뒤의 수사, 즉 피해자가 타고 갔던 택시(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택시기사)를 추적하는 방향으로의 수사로 선회하여 쉽게 갈 길을 어렵게 간 것이다.

    실제 이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와 동석했던 남성들 중 하나였는데 내가 PD들로부터 들은 정보는 당일 피해자는 원래 만나기로 했던 여자 친구 두 명과, 이후 술을 마시다가 만난 신원 미상의 미국인 학생 등과 동석한 후, 택시를 타고 실종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차 PD들에게 동석한 사람들에 대해 물었고 PD들도 경찰로부터 나온 정보는 그것이 전부이고 여자 친구들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때 사실 경찰들은 여자들과 동석했던 범인과 또 한 남성에 대한 신원을 간략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이 지점에서 나도 역시 또 다른 치명적인 실수, 즉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관련자들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는 수사팀에서 이미 진행했을 것이라는 ‘안이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안이한 믿음’이라고 한 이유는 실제 현장 수사팀의 수사에 있어서 아주 당연히 했어야 하고 했을 것 같은 사항이 누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되는데, 그래서 목격자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프로파일러는 현장 수사관들의 수사에 대한 진술을 전체에서 51% 정도만 신뢰한다.

    사실 범인을 잡고 난 후 밝혀진 일이지만 범인은 아동 성범죄 전력이 있었고 그 때문에 현역 입영이 아닌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따라서 단순하게 동석한 사람들에 대한 전과 조사만 하고 그 다음 주거지에 대한 간단한 행적 수사만 진행되었어도 수사가 이렇게 까지 갈팡질팡하면서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사팀은 (자신들의 말에 의하면), 동석한 사람들에 대한 의심은 가졌지만 기초적인 행적 수사는 하지 않은 채 여자 친구들의 진술에만 의지한 채 피해자를 태운 택시기사만을 찾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실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제일 먼저, 동석했던 남성들(범인 포함)에 대한 행적 수사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수사팀은 범인이 초기부터 용의선상에 올랐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범인을 잡은 지금에서의 이야기이고 (용의선상에 올랐었다면 당연히 전과 조회나 거소지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관련자가 수십 명도 아니고 달랑 두 명이었는데 이런 기초적인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신원 정도만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사실 꺼내기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수사 관련자들은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를 이른바 “(대구의 압구정동) 동성로 거리에서 노는 날라리 클럽여대생”으로 예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사건 수사 내내 인터넷에는 피해자에 대한 악성 댓글들이 난무했는데, 피해자가 일했던 술집,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해당 지역에서 심야에 남성들과 술을 먹었다는 점 등을 물고 늘어지면서 피해자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렇다. 피해자가 알바를 했던 술집은 보통 호프집이었고, 피해자의 옷차림도 내가 31일 밤 동행취재하면서 본 동성로의 다른 화려한 여성들에 비해 극히 수수한 편이었고 심야에 남성들과 술을 먹었던 장소는 클럽이 아니라 PUB이고 동석했던 남성들(범인 포함)과도 그 남성들이 합석한 것이었다.

    또한 4시 반이라는 늦은 시간까지 술집에 있었던 것은 12시에 알바를 마치고 친구들과 한잔한 후 귀가해야하는데 새벽 시간에 택시를 타면 심야 할증이 붙으므로 할증이 풀리는 시간에 귀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 실종 당일 일출시간은 새벽 5시 7분으로 4시 반 정도에 나와서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 날이 밝아 올 시간이었으므로, 피해자의 행동에 있어서 ‘날라리’의 흔적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날라리 여대생이 클럽에서 밤새 남성들과 술을 마시다가 택시를 탄 후 실종됐다.”는 식의 예단이 결국 성실하게 생활했던 피해자를 “당해도 싼 노는 날라리 여자”로 뒤바뀌게 해서, 같이 동석했던 남성들에 대한 범죄 용의점은 슬쩍 빠지고 술이 취해 ‘떡 실신’한 여성을 대상으로 납치, 살해한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택시기사가 범인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A택시회사를 가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피해자를 태운 택시기사를 찾다가 실종지역 CCTV에 어렴풋이 찍힌 택시 중 하나가 A택시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택시에는 타코미터라는 것이 있어서 운행기록이 다 나오므로 쉽게 용의선 상에서 벗어났고, 이에 우리는 곧바로 KTX 신경주역 근처에 사체가 유기된 저수지로 향했다.

    대구에서 경주 저수지로 가면서 살펴본 바로는 저수지 자체가 너무 외진 곳이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이곳으로 향했다면 지리감이 없고서는 찾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한번 정도는 와 본 곳이 아니면 올 수 없는 장소라고 판단이 되었는데 문제는 시간이 문제였다.

    실종 장소에서 저수지까지는 아무리 빨리 와도 45분에서 1시간, 그런데 실종시간이 4시 30분이고 아무런 범행이 없다고 가정해도 저수지까지는 5시 반 이전이다. 이미 일출이 지난 밝은 새벽인 것이다. 바로 아래 동네의 어르신들께서 농사일 나오시는 시간이고 노선버스도 운행하는 시간, 참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냥 술 취한 피해자를 태우고 최고로 달려도 새벽 5시 반이니, 이것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더욱이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는 차길에서 20M 정도 내려와서 바로 낚시하는 장소이고 중간에 농막도 있었고, 또한 유기된 상태는 속옷 정도만 걸친 상태였다.

    쉽게 말해서 아무 것에도 싸이지 않은 채 그냥 싣고 와서 빠른 시간 안에 물에 넣은 것이고 그곳은 쉽게 발견될 장소인 것인데 발견 시간은 그 다음날 아침 10시가 넘었다. 물에 떠 있는 사체가 하루 내내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신고가 없었고 그 다음날 발견된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것이 말이 되려면 범인은 제3의 장소(범인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은폐된 공간)가 아닌 두 지점의 경로 상에 있는 으슥한 노상에서 범행을 저지른 후 사체를 싣고 빠르게 이 공간으로 와서 사체를 물속에 고정시켜야 한다. 그래도 시간이 촉박하다. 이것은 아니었다.

    결국 다른 대안으로 당일 범행을 한 후 범행을 한 공간에 사체를 방치한 후 밤 시간에 사체를 유기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또 다른 실수를 했다. 그것은 PD들로부터 들은 바대로, 피해자 사체를 아무런 가림이나 싸임 없이 그냥 유기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인데, 나는 범인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사체유기를 했다면 적어도 가방에 넣거나 혹은 한 번 정도라도 쌀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촉박한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고 그렇다면 당일 범행 당일 유기이고 그렇다면 이 공간은 범인에게 유의미한 공간인 것인 것이다.

    실수는 바로 앞에 나온 두 가지이다. 하나는 PD들로부터 제공된 정보 즉, 당일 피해자와 동석했던 사람 중에 둘은 여성들이고 미국인 하나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반으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과도한 폭력이 행사된 성범죄이므로 여성 둘은 다른 공모 관련이 없다면 용의자 제외이고 미국인 학생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무리하게 분석을 하다 보니 결국 택시기사로 귀결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만약 좀 더 당일 동석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보에 더 귀 기울였다면 범인과 그 외 한 명의 남성에 대해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동된 결과로서 두 번째로서 범죄자가 택시기사로서 태우고 가던 여성을 단순히 우발적으로 성범죄 대상으로 삼다가 살해했으므로 일반적인 성범죄자 유형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만약 택시기사의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전제를 벗어나면, 범인이 반드시 사체를 가리거나 싸야하는 것은 아니다.

    즉 오히려 이 사실로부터 특이 성향의 성범죄자 유형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저수지를 확인하고 다시 동성로 실종 현장(택시를 타기 위한 공간)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거기가 대구의 압구정동 정도에 해당하는 유흥가이고 밤새 술 먹는 장소로서 그곳을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옷 길이가 유난히 짧고 자극적이었고 이른바 클럽과 술집이 집중된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 공간이 성 범죄자들이 대상을 물색하기 매우 적절한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따라서 거기에 특이 성향 성 범죄자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만약 PD들로부터의 정보에 따르더라도 동석은 안했어도 그들을 지켜보던 범죄 의도를 가진 다른 일행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했다.

    실제 범인은 피해자 일행이 피해자를 택시에 태워 보내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따라 나와서 피해자가 탄 택시를 다른 택시로 뒤따라가서 범행을 했다.

    또 하나 아쉽고 창피한 고백이다. 그것은 나도 잠시나마 과학수사팀에 있었기에 하는 말로서, 이번 사건의 사체 발견 장소 즉 현장에 대한 처리문제이다.

    우리가 저수지에 갔을 때가 사체 발견 후 5-6일 지난 후였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현장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사건이 종결될 때 까지는 폴리스 라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감식팀에서 그 이전에 관련 증거를 수집, 채취했을 것이지만 증거채취라는 것은 한 번에 100%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수사라는 것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했어도 중간에 다른 많은 변수로 인해 막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는데 중요한 것은 현장과 증거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다시 다른 방법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보전과 현장보전이 중요한 것이다. 보통 현장을 보전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단순하다. 즉 사건을 예단하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은 택시기사에 의한 강간살인이 확실하니까 굳이 현장보다는 CCTV에 집중하자고 예단한 것이다.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CCTV에서 확인하지 못했다면 그 다음 수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는 체계적, 구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막혀도 다른 길로 갈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된 절차에 따라 현장과 증거가 보전되어야 하며 관련자들의 진술 확보도 초기에 정확하고 적절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본 이번 사건의 현장은 그렇지가 못했다. 만약 CCTV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도 단순하게 해결될 사건이 오랫동안 돌고 돌아 미제 사건을 됐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번 사건을 분석하면서 앞서 말했듯이, 내 스스로 현장에서 떨어지니까 확실히 감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 참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의할 때나 다른 사건 분석할 때 늘 강조하던 것인데, 온정주의 때문인가? 치명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의는 손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사법권은 늘 나태하기 쉽다. 그 나태함을 깨우는 것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아직 많이 먼 듯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자신을 다시 채찍질 한다. 또 다른 N씨가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비참하게 운명하신 분께 삼가 명복을 빌고 싶다. 그리고 더 노력하겠다고..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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