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라오스 아짠들,
    재생에너지 동맹을 맺다
    [에정칼럼]아직 탈핵의 길이 먼 한국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라오스
        2013년 06월 03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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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선생님 재생에너지를 만나다.

    “전력의 단위는 왓트입니다. 여기에 시간을 곱하면 왓트시가 되고, 우리가 사용한 전력이 나옵니다. 자 그럼 전력이 60와트인 기기를 5시간 썼다면 총 사용 전력은 얼마일까요?”

    이제 겨우 서른 남짓되어 보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적게는 열다섯 많게는 마흔쯤으로 보이는 20명의 그룹이 한판 토론을 벌이고 있다.

    너무 쉬워 보이는 이 문제를 가지고 몇 십분 동안이나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선생님들이다. 전기가 낯선 곳, 라오스 싸이냐부리 직업학교 한 교실의 5월 어느 날의 풍경이다.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엔 (현지말로 하면 위양짠)에서 버스로 8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하는 싸이냐부리 읍내에 직업학교 전기과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이곳 싸이냐부리 읍내로부터 짧게는 한 시간 멀게는 네, 다섯 시간을 차로, 배로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학교의 선생님들까지 모두 20명이 모였다.

    그리고 지금껏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배우고 있다. 한국의 일반 사람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이곳에서는 마을에서 가장 많이 배운 선생님들조차 재생에너지나 전기는 너무 어렵고 낯설다.

    왜 굳이 평온하던 그들의 삶에 재생에너지 이야기를 꺼내 놓은 것일까? 왜 전력 따위를 구하기 위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는 걸까? 그 인연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산간학교에 태양광 시스템을 지원하면서부터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 2009년부터 이런 저런 인연을 엮어 이곳 싸이냐부리 지역의 외떨어진 산간학교 다섯 곳에 소규모 태양광 시설을 지원해 주었다. 대부분의 산간 학교에는 먼 길을 통학하는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고, 그 기숙사에 머무는 아이들에게는 불을 밝혀줄 전기가 절실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지원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상 보급된 전기는 그들에게 어렵고 무서운 것이었고, 전구 한번 갈아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 낯선 태양광 기기들은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장이 나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볼 재간 없어 그대로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단 이것은 연구소가 태양광 시스템을 지원해준 학교의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빈국중 하나인 라오스 그래서 아시아개발은행, 세계은행 등 개발은행 뿐 아니라 각국의 많은 개발원조가 들어오고 있다. 특히 산간 오지 지역에는 태양광이나 초소수력을 중심으로 지역 전기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지원 이후였다. 대부분의 기기가 고장나도 이것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 한명도 없었다. 결국 흉물스러운 쓰레기로 방치시키는 것이 이들의 실정이었다.

    재생에너지 수업에 나온 전기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 중인 산간학교 선생님들(사진=조보영)

    재생에너지 수업에 나온 전기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 중인 산간학교 선생님들(사진=조보영)

    그래서 라오스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을 오래도록 해온 경험있는 단체들은 입을 모아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연구소도 산간학교 선생님과 싸이냐부리 읍내에 있는 직업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을 교육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라오스를 노리는 댐 마피아

    사실 라오스는 전기가 풍부한 나라이다. 특히 메콩 강을 이용하여 수력 발전을 많이 하고 있고 또 계획하고 있다. 메콩강은 중국을 시작으로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에 이르기까지 약 4,200km를 흘러 바다에 이른다. 이중 약 45%인 1,898%가 라오스를 관류하고 있고, 바다와 접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둘러쌓여 라오스에서는 메콩 강만이 유일하게 수자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젓줄인 것이다.

    그리고 라오스는 이 메콩 강을 이용해 메콩 유역국 사이의 배터리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댐을 건설해서 전기를 전기 소비가 많은 태국과 베트남 등지의 주변국에 판매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빈국인 라오스는 정말 전기가 남아도는 걸까?

    사실 라오스는 이미 2010년 현재 자국의 소비량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하여 소비량의 약 110%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오스 모든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지는 않는다. 라오스 정부가 2020년까지 자국의 전기화 목표를 90%로 잡고 있는 것처럼 라오스 전지역에 전기가 들어가는 일은 아직 멀다.

    결국 자국 국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보다 전기를 판매해서 국고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현재 총 11개 댐이 상업운용중이지만 현재 63개의 발전소를 메콩 본류와 지류에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국책 사업이나 자본이 몰리는 곳이 댐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석유, 원자력 마피아처럼 이곳에는 댐 마피아가 결성되고 있다.

    문제는 라오스 정부 입장에서야 전기 판매로 국가 수익이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막상 댐이 건설되는 지역의 지역 주민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이주 문제, 환경 문제 등이 발생하고 특히 라오스를 지나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흐르는 메콩 강에 댐이 생기면서 메콩 하류 국가의 예상치 못한 수량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수자원의 변화 등 사회,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라오스 전력망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는 태국과 베트남으로 전력을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언젠가는 라오스 모든 지역이 거미줄처럼 엮인 전력망에 연결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댐 에너지에 의존하여 살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핵 에너지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쉽게 도망칠 수 없게 되듯 말이다.

    아짠들의 에너지 동맹으로 어머니 메콩을 지켜내길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나는 지금 라오스 싸이냐부리 직업학교 교실에 앉아있다. 이곳 라오스에서는 선생님을 아짠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김 선생님이라면 이곳에서 아짠 킴으로 불릴 것이다.

    여기 모인 아짠들을 가르치는 아짠은 라오스 국립대 태양광연구소 소속의 석사학생이자 국립대 학부생을 가르치고 있는 피엔이라는 라오스 현지 친구다. 그리고 피엔과 인연이 닿은 것은 피엔을 가르치는 대학의 아짠이 바로 한국에서 온 교수님들이었기 때문이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짠을 수도의 대학교 아짠이 가르치고 또 그 아짠을 한국의 아짠들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교육이 가능하도록 많은 물적, 정신적 도움을 주신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의 아짠들도 숨은 조력자들이다.

    라오스 산간학교에 전기가 없어 어렵게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2월에 방문했던 한국의 아짠들은 흔쾌히 연구소를 지지해 주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적으로 한국과 라오스의 아짠들 간의 재생에너지로 엮인 동맹이 생겨난 것이다.

    댐 에너지에 미래를 가둘지도 모른다는 나의 불안감은 이 공간에 모인 아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업 중 태양광을 통해 오히려 남은 전기를 팔수도 있다는 말에 놀라워하며 아짠들은 재생가능에너지로 독립된 마을, 필요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학교, 그리고 남은 전기를 팔아 마을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대수력을 위해 깔리는 전력망으로 오히려 산간학교 전기가 도시로 팔리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가진 축구 시간, 재생에너지 수업에 참여하는 아짠들이 흰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곳 직업학교 아짠들은 노란 유니폼을 입었다. 3:0으로 한참 뒤지던 흰색 팀이 전반이 끝날 때 쯤 3:3 동점까지 따라갔다.

    전반이 종료하자 아짠들이 뛰어와 하는 말이 마치 재생가능에너지가 늘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점점 힘이 생겨서 역전을 할 꺼라며 너스레를 떤다. 어쩌면 이제 겨우 시작된 이 먼 곳 라오스의 작은 마을 아짠들의 동맹으로 우리는 조금 다른 미래를 함께 그려 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한 활동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이제 시작단계이다. 이미 핵에 의존하여 먼 길을 왔기에 돌아가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 라오스는 아직 우리가 간 먼 길을 가지 않았다.

    대수력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오히려 역공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탈핵 진영의 중요한 주체인 아짠들이 이 먼 나라의 아짠들에게 재생에너지를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또 나의 재생에너지 동맹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동맹이 언젠가 이곳 싸이냐부리 혹은 더 크게는 라오스의 사회를 바꿔낼 주요 주체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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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에너지로 바뀔 우리 마을의 모습은 어떨까? 라오스 국립대의 태양광 연구소 소속의 피엔이 태양광과 초소수력을 통해 에너지 독립을 이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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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후 축구시간! 흰색 옷을 입은 재생에너지 팀! 결과는 아쉽게도 7:5로 패했다고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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