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
    [책소개]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 후마니타스)
        2013년 06월 01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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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차별적·배외적 운동은 현실의 온갖 불만과 불안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 바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회원들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어찌 보면,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낳은 것이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재특회와 넷우익

    “조선인은 뭐든지 차별이라고 우기면서 일본인에게 양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오물, 쓰레기, 구더기 들한테 두려움 없이 소리 높여 항의하는 겁니다!” – 사쿠라이 마코토(재특회 회장, 40세)

    “저는 그때까지 텔레비전의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덕분에 그런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 마쓰모토 슈이치(재특회 카메라맨, 34세)

    재특회(在特會).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2013년 현재 일본에서 1만3천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반한(反韓) 넷우익 단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재일 코리안’이다.

    ‘권리만 내세우고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재일 코리안의 존재가 일본의 위기를 가리키며, 이들만 없어지면 모든 사회문제와 모순이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이 재특회의 입장이다. 현실 속 불만을 전가할 ‘알기 쉬운 적’, ‘내부의 적’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네오 나치와 유사한 면이 있다.

    넷우익(Net右翼). 2005년경부터 일본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해,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 우익적인 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본 넷우익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속성으로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평화헌법 9조 개정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 동조하는 등 국내 이슈에 우익적 성향을 보이며, 온라인상에서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자기 의사를 표명한다는 점 등이 있다(김효진, “기호로서의 혐한과 혐중: 일본 넷우익과 내셔널리즘” 참조).

    “진실에 눈을 떴다.” 재특회 회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이들은 언론이 가리고 있던 진실의 출처를 발견한 곳이 인터넷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가 “일본 사회의 1퍼센트도 되지 않을 배외주의자들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며 “넷우익이라는 자원이 없었다면 재특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측면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넷우익

    행동하는 보수의 탄생

    “기존 보수나 우익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운동을 한 게 아니에요. 다들 자기 돈을 쓰면서 활동하고 있고 성실한 사람들이에요.” – 나카타니 다쓰이치로(재특회 회원, 회사원, 42세)

    이 책의 원제 “인터넷과 애국” 또한 재특회가 탄생하는데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중요하게 기능했음을 보여 준다.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메일(일반) 회원을 모집하고, 자신의 활동을 영상으로 만들어 실시간으로 게시판에 올리거나 온라인을 통해 집회를 조직하는 등 재특회는 일본의 기존 우익과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재특회의 증오 연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영향력을 얻게된 데는 인터넷 매체만의 속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재특회 현상을 낳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저자는 재특회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생의 열정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재특회 회원들이 “재일특권이야말로 세상의 부조리를 풀 열쇠”라고 믿으며 이를 박탈시키는 것이야말로 “애국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데서 이들이 “타자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까지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이들은 스스로 기존 우익과 구분하며 ‘행동하는 보수’라고 칭한다.

    저자가 봤을 때 이 애국심은 허상에 가깝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의 유명한 경구,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정작 자신이 재특회 한 명 한 명의 삶에서 확인한 애국심의 의미란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도 공감을 얻지도 못한 이들의 무력감. 저자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를 좇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있다.

    탐사 저널리즘의 힘

    “어쩐지 학력이 높고, 어쩐지 월급이 많고, 어쩐지 보호받고 있다, 가해자들에 대한 공통적인 이미지죠.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재특회 회원 대부분이 이런 가해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 익명(재특회 지방 지부 간부, 40대)

    “정부만 해도 일본인을 먼저 구해야죠. 외국인한테만 신경 쓰고, 용납이 안 돼요. 그러니까 짱개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놈들한테 점령당해 버린다고요. 일도 점점 짱개들한테 빼앗기고.” – 도쿠베 기쿠오(재특회 회원, 덤프트럭 운전사, 41세)

    이 책은 인터넷상에 한정된 극우 담론을 거리로 옮겨 온 그들은 누구인지, ‘행동하는 보수’가 탄생한 이유와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으며,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해법처럼 여겨지는 사회의 단면을 직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를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우선 그들 속으로 파고들자는 것이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재특회의 집회 현장을 쫓아다녔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며 때론 다투기도 하고 때론 사적인 조언을 건넬 만큼 다가서기도 한다.

    필자와 관찰 대상의 거리는 체취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일장기를 펄럭이는 열광적인 집단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으며 혐오스러운 욕설에 귀를 막지도 않겠다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을 내놓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 일을 수행하겠다는 것.

    작가가 드러나되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한 명 한 명의 삶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도 핵심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서술은 탐사 저널리즘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일본 사회에 고용 유연화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면,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젠가는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을 살 수 있고, 정년을 맞으면 연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미래가 한정된 계층에만 주어지게 된 현실”과 “계약직이나 하청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자재 중 하나로 취급받으면서 빈부 격차와 분열이 생기는 현실”이 만든 맨얼굴을 드러낸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중 일부가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재특회’는 무엇인지를 묻기 전에 짚어야 할 것들

    “일베를 혐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벌레로 규정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을 닫겠다는 것이다.” – 이길호(『우리는 디씨』 저자)

    “증오의 연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도쿄 신주쿠의 재특회 시위에 반대하는 이들이 내건 팻말

    이 책은 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 및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하는 등 2012년 4월 출간된 직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재특회의 활동을 다루지 않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혐한 성격을 띤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 이유였고, 그래서 관련 보도는 한국 언론이 재특회의 활동을 다룬 기사를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

    한편, 한국에서 재특회의 행적은 내셔널리즘에 입각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에서 소개되곤 했다.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을 낳은 심층적인 원인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다룰 때도 반복되는 아쉬움이었다.

    역사교육의 부재에서만 그 원인을 찾거나 혐오 집단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마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침묵하지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 언론이 재특회와 일베를 다루는 모습은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할 공론의 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터넷에서는 일찍부터 재일 코리안이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경위나 직접적인 피해 때문에 발생한 증오가 아니라, ‘보호받고 있다’, ‘우대받고 있다.’라는 일방적인 인상이 ‘재일 코리안 비판’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강제징용이나 종군 위안부 유무는 사후적으로 만든 핑계죠.”- 시부이 데쓰야(프리랜서 작가, 42세 남성)

    “재특회 활동을 떠나면, 보통 사람들이에요. 여러 가지 일로 고민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저랑 같아요. [재특회라는 존재가 불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혼잣말로] 당연히 불쾌하지. 근데 그 사람들도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잖아?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딘가 불쌍해 보여. 적어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 – 재일 코리안(조선학교 졸업생)

    재특회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일본 시민사회는 물론 기존 우익 단체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한다. 저자 또한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2013년 들어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다. 재특회 회원들이 재일 코리안에게 자행하고 있는 언행은 두말할 것 없이 부당하다.

    그러나 그들이 재일 코리안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삶이 불안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잘 안 풀리는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재특회 현상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전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사카에서 하시모토 도루가 시장으로 당선된 이유에 대해, 시장 선거를 취재한 기자로부터 “공무원 사이에서는 하시모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관공서에서 하청을 받아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사이에서는 압도적으로 ‘하시모토 지지’가 많았다.”라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소개하면서, ‘보호받는 측’에 대한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공격이 일반 사회에서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후지 텔레비전에서 한류 방송을 방송하는데 반대하는 시위에는 재특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폭넓게 참여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위태롭고 이를 조정할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그 안에서 더 약한 집단을 희생양으로 지목하는 선택을 하곤 했다.

    한국 사회의 재특회를 이야기할 때 넷우익 단체인 일베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것 못지않게,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조선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돌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들입니다.” 사람 좋은 아저씨나 착해 보이는 아줌마, 예의 바른 젊은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젊은 사람들은 그 위에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 수맥이 펼쳐져 있다.”- 야스다 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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