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에게 맑스와 엥겔스란?
    [책소개] 『CHE, 공부하는 혁명가』(체 게바라/ 오월의 봄)
        2013년 06월 01일 03: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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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 게바라는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이자 잘 팔리는 상품이다. 한편 체 게바라와 맑스주의는 매우 생경한 조합이다. 지금까지 체 게바라를 맑스주의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책을 옮긴 한형식 또한 “체 게바라가 맑스주의에 대해 알긴 했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킨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연구는 그가 죽은 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체의 면모, 바로 맑스주의자로서 체 게바라, 맑스주의에 입각한 구체적 경제 정책의 고안자이자 실행자로서의 체 게바라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러한 재조명은 신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을 꿈꾸는 이들에게 체의 경제사상이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맑스주의자로서 체 게바라를 이해하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넘어 체가 바랐던 다른 세상,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꿈을 함께 꾸는 것이다.

    2008년 체 게바라의 미발표 원고를 모아 출판된 이 책은 체가 콩고에서의 혁명운동이 실패한 뒤 탄자니아와 체코에 머물면서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실천을 준비하던 시기에 쓴 것이다.

    그리고 이 원고는 소련에서 나온 1963년판 정치경제학 편람에 대한 비판적 논평과 함께 작성되었다. 체가 그 짧은 생애의 끝부분에서 소련의 공식적인 정치경제학과 경제 정책에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의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좌절의 순간을 거쳐 온 체는 왜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다시 읽으며 그들의 생애를 좇았던 것일까? 맑스와 엥겔스의 삶과 그들의 사상 속에서 그는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추구했던 체 게바라의 맑스, 엥겔스 이야기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혁명정부의 요직을 거치며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체 게바라.

    그는 1965년 4월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게릴라전을 위해 변장을 하고 콩고로 잠입한 것이다. 콩고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체는 탄자니아와 체코 프라하에 체류하며 이 책을 집필한 뒤 다시 볼리비아에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다 정부군에 의해 생포당하고 볼리바아 정부 지시와 CIA의 묵인 아래 사살되었다.

    체 게바라

    체 게바라 스스로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전기적 종합”이라고 불렀던 이 책은 맑스와 앵겔스의 만남에서 시작해 그들의 삶과 함께 맑스주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과 고민에서 탄생되었는지 꼼꼼히 짚어준다.?

    체 게바라는 청년시절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가난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현실을 목격한다. 그는 독서와 관념적 급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 현실 가운데 자연스럽게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쿠바혁명 세력인 ‘7월 26일 운동’에 가담하면서 체는 쿠바혁명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키려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영구적인 해방은 선거를 통한 부르주아 민족민주혁명이 아닌 농민과 노동자들의 동맹에 근거한 게릴라전, 사회주의 혁명만이 가능하다고 확신한 것이다.

    체는 교조주의적 맑스주의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는 맑스주의 정통 노선과는 달리 조직 노동자가 아닌 가난한 농민들이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계급이라고 생각했고, 맑스와 엥겔스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분석이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체는 맑스주의가 무오류의 교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맑스주의의 현학적이고 이론주의적인 경향이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늘 배우고 사색하고 실천했던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냉전체제는 1960년대 중반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생겨나고 있었다. 소련의 후르시쵸프 정권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식민지 민족해방 혁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반면 쿠바혁명으로 놀란 미국은 제3세계 독재 정권들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맡게 된 체 게바라에게는 제국주의 수탈로 저개발과 독점자본이 혼재된 쿠바 경제를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시키는 과제가 주어졌다.

    “체가 중앙은행장에 임명될 때 경제학자(economist)를 공산주의자(communist)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일화가 널리 유포되어 있다. 이 일화는 거의 사실이 아니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체와 쿠바혁명 세력이 경제를 하찮게 여겼다는 증거는 결코 되지 못한다.

    출처와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이 일화의 유포는 혁명에서 경제 정책의 중요성과 체 게바라가 계획경제의 강력한 옹호자였음을 애써 무시하려는 의도와 공산주의자와 경제학자의 양립을 상상할 수 없는 신좌파적 편견의 산물일 뿐이다. (…) 당시 미국 정부가 쿠바혁명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고 판단한 근거로 체를 지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옮긴이의 ‘해제’ 중에서

    체는 소련식 경제 시스템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안적인 경제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소련과 논쟁도 벌였으며 산업부 장관을 그만 둔 뒤 국제사회를 돌아다니며 쿠바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이 거듭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곧 스스로 실행에 옮겼다.

    이렇듯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에서 맑스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 현실 속에서 늘 검증받고 변화하는 사상이었으며 혁명운동의 지침이었다. 그는 청년시절 라틴아메리카 여행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 볼리비아로의 게릴라전 까지 늘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읽고 공부했으며 맑스주의의 기원으로 다시 나아갔던 것이다.

    한 혁명가의 맑스, 엥겔스 읽기

    “맑스가 <자본>의 처음 몇 페이지에서 부르주아 과학이 스스로를 비판할 능력이 없음을 변증론을 사용하여 기술한 부분은 불행히도 오늘날 맑스 경제학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체는 맑스와 엥겔스의 삶을 통해 맑스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이상적인 교의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도전받고 변형되는 사상이란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체는 또한 맑스의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 사이에 근본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주장한 루이 알튀세르를 비판하며 맑스주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어떻게 쓰이고자 했는지를 맑스와 엥겔스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먼저 체는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만남에 주목했다. 체는 “두 사람 모두 포이어바흐에 매혹되었고 각자 별개로 그의 사상을 연구”했지만 곧 “이 비범한 두 인물은 독특하면서도 역사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서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고 “그들의 동반자 관계는 대단히 충실하고 완벽한 우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로 맑스가 엥겔스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인용하면서 <신 라인신문>, <독불연보> 등 신문을 통한 맑스와 엥겔스의 정치적 활동,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 <반뒤링론>, <철학의 빈곤> 등 초기저작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 등을 소개한다.

    또한 혁명의 소용돌이 가운데 일어났던 파리코뮌과 제1인터내셔널 시기 맑스와 엥겔스가 어떤 활동을 하였으며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공산당선언>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지, 맑스와 엥겔스 두 사람의 필생의 역작인 <자본>이 어떤 과정에서 집필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한다.

    대안 사회와 대안적 삶을 꿈꾸기

    “그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미쳤다. 그러나 그토록 헌신적인 투쟁과 불굴의 낙관적 메시지를 남긴, 그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역사에 의해 왜곡되고 돌로 된 우상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모범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구해내어서 그에게 인간의 차원을 부여해야 한다.”

    체 게바라가 맑스의 죽음을 언급하며 한 이 말은 체 게바라 자신을 향한 불길한 예언이 되었다.

    체 게바라가 교조주의에 빠진 맑스주의를 경고하며 우상이 아니라 동시대 혁명이론으로 맑스주의에 인간적 차원을 부여하고자 맑스와 엥겔스의 생애를 더듬었듯이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킨 ‘완전한 인간’으로서 체 게바라를 재조명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했던 혁명가 맑스와 엥겔스, 그들처럼 혹은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천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맑스와 엥겔스라는 두 혁명가이자 사상가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더불어 ‘체 게바라가 읽은 맑스, 엥겔스 저작목록’을 통해 맑스주의 주요 저작에 대한 이해와 그 시대적 배경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2010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온 지금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계획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체 게바라의 구상은 신자유주의 폐해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 자신의 삶의 전부를 통해 보여주었던 자본주의적 가치를 넘어서는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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