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정당, 풀뿌리정당 꿈꾸다
    구미생활정치모임...법적 한계? 그렇다면 일단 "모여서 말하자"
        2013년 05월 30일 0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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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초 한겨레신문 ‘왜냐면’에 ‘풀뿌리정당’에 관한 글을 투고한 이래 3년 넘게 틈 나는 대로 이 지론을 되풀이해왔다.

    풀뿌리정당은 한 지역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정당으로 영어로는 ‘local party’이고, 주로 ‘지역정당’ 또는 ‘지방정당’이라고 번역되었다.

    나는 친근하게 부르기 위해 ‘풀뿌리 정당’이라는 용어를 썼고, 요즘은 ‘주민정당’이라고 부른다. 하다 보니 주민정당론의 대표적인 제창자처럼 되었고, ‘주민정당’이라는 낱말도 조금씩 퍼지는 것 같다.

    다른 지면에서 여러번 지적했기에 여기서 상세히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기초지방선거에서의 중앙정당공천제도는 여러 폐해를 초래했으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는 것도 책임정치를 훼손시킨다. 주민정당제 말고 달리 방도가 있는가. 또한 만약에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경우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도 유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소속정당(녹색당)으로 당론화 작업을 요청한 상태다. 의견을 접한 당원들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공천제 폐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 경실련 등 몇몇 단체와 진보신당도 주민정당제 도입으로 합의를 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그에 앞서 나는 구미에서 이 실험을 준비하겠다고 동료들에게 공언한 바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 1만 명 이상에, 민주노동당 당원 1천 명. 한때 구미시의 진보운동을 나타내는 수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계속해서 구미 민주노조운동은 탄압으로 깨어져 갔고, 진보정당운동도 2007년 대선 이후 형해화되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었을 때 적잖은 구미 당원이 탈당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진보신당으로 가입한 수는 미미했다. 민주노동당이 2011년 국민참여당과 합당했을 때에는, 그래도 민주노동당에 잔류해 있던 많은 노동조합원들이 합류를 거부했다.

    한편 진보신당 구미 당원은 처음부터 소수였거니와 통합진보당 결성으로 인해 사실상 당 활동이 종료되었다.

    이듬해 통합진보당이 분리되고 진보정의당이 들어섰을 때, 그 당의 당원은 대부분이 국민참여당 계열이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분열과 통합을 모두 몸살로 겪으며 당운동에서 이탈했고, 진보정의당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참여계의 진보정의당 당원들은 2012년 대선 패배로 ‘멘붕’을 겪은 실정이다.

    심지어 민주당도 지역사회활동에서는 존재감이 희박하다. 그나마 당원모임을 하고 성명과 논평을 내는 구미 야당은 녹색당 뿐이지만, 우리도 당원 배가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녹색당의 풀뿌리정치 워크샵 모습(사진=김수민의원 블로그)

    녹색당의 풀뿌리정치 워크샵 모습(사진=김수민의원 블로그)

    구미 지역은 2009년경부터 야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연대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 결합이 비대칭적이었기 때문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결성된 풀뿌리희망연대는 야권연대가 아닌 시민단체연대로 정리되면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각 후보들을 상대로 정책제안만을 했다.

    본격 정치조직이 따로 필요했다. 나는 ‘야권연대’ 수준의 정치조직은 피하고자 했다. ‘새누리당 반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운 데다가, 각 정당들이 모두 침체에 빠진 구미에서 당과 당의 연대나 통합적 대응은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 내렸다.

    당적이 없거나 특정 당을 선택하지 못한 주민들, 중앙정당으로 수렴되지 않는 지역운동의 참여까지 배려하고 유도하는 정치활동이 절실했다. 기존의 중앙정당체제에서 벗어나 구미의 현실을 토대로 백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올 2월에 내가 던진 주민정치조직 결성 제안문에는 ‘진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보수’라는 말은 나온다. “지금 구미에 ‘보수’할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요?” 여기서 제창된 이념은 다름아닌 ‘구미주의’였다. 정확하게는 ‘구미-지역주의’를 꺾을 ‘구미지역-주의’다.

    ‘구미-지역주의’란 “구미가 누구의 고향이니까 그들을 섬기고 구미는 기업도시니까 자본가가 상전이며 구미는 경상도니까 어느 당을 지지한다”는, “구미를 동원하고 이용하고 사고팔고 착취하는” 지역주의다.

    반면, ‘구미지역-주의’, 그러니까 ‘구미주의’는 <복지>, <참여>, <노동>, <생태>라는 가치를 품고 있다. 구미는 영유아와 그를 키우는 부모들이 많은 도시다. 이 도시에서 보육 정책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는 필연이다.

    구미는 다양한 고장 출신들이 모여사는 동네임에도 획일주의와 배타주의에 짓눌려 있었다.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는 구미의 운명이다. 공단도시 구미는 노동자 도시다. 노동이 배제된 도시는 결국 모든 시민의 배제를 불러 온다. 공단도시 구미는 자연 파괴와 시민의 불안에 민감한 도시다. 보존하고 재생하고 순환하는 생태적 지혜가 절실하다.

    요컨대, ‘구미주의’의 핵심 가치가 복지, 참여, 노동, 생태인 이유는, 여기가 바로 구미이기 때문이다.

    제안을 들고 다니며 건네니 부정적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큰 난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이 부족했다.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분들은 자신의 원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벅 차 주민정치조직의 최선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첫째보다 훨씬 더 큰 난관인 둘째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이다. 정당법은 오로지 중앙정당만을 다루고 있어서 주민정당의 설립은 보장되지 않는다.

    옥천의 풀뿌리옥천당은 ‘당’이라는 이름부터 꼬투리를 잡히며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나는 ‘당’을 표방하지 않은 정치조직을 궁리했지만 공직선거법이 문제였다.

    자칫 이 정치조직을 통해 선거를 준비하고 후보를 배출할 경우 사전선거운동 혹은 선거운동이 불가한 단체의 선거운동으로 규정될 수도 있었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일상적 정치활동은 물론, 정당 이외의 정치조직에게 지나치게 엄하다.

    그래서 주민정치조직은 결국 ‘정치에 대해서 말하는 모임’으로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선거 논의는 이 단체를 통해 하지 않기로 했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간편한 형태로 출발했다.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알음알음 시민들을 모셔오는 법이다. 페북 특성상 따로 가입하지 않아도 그룹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룹의 회원인지 모르는 사례도 더러 있다. 이름도 밋밋하고 무난하게 ‘구미생활정치모임’으로 해뒀다. 본격적인 단체 구성이나 공개모집은 아직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고, 나는 직업상 의정활동 소식을 올리기도 한다. 돌아보니 이런 공론장도 없었기에 이것만으로도 얼마간 유의미한 것 같기도 하다. 후에 더 진전된 형식과 내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지난 선거 때 나는 앞으로의 당파적 거취를 묻는 질문에 “가능하면 당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주민정당제가 도입되어 있었더라면 내가 그때 무소속으로 출마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앙정당으로는 녹색당으로 그 희망을 이뤘으니, 이제 나와 동료들이 구상하는 주민정당이 현실이 되어 그 당이 ‘지역 정권교체’를 이룰 날이 오길 고대한다.

    필자소개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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