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진보정치 현장] 대변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정치를 위해
        2013년 05월 29일 09: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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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의 위기를 이야기할 때, 오래 전부터, 대변하려는 사람들이 당을 지지하지 않는 정체성과 지지기반의 불일치가 위기의 증거로 거론되곤 했습니다.

    진보신당이 새로운 당명을 선택하려는 과정에서 가난뱅이당이라는 당명이 제안되었는데, 추측컨대, 제안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점을 역설하고자 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지금 진보신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정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당이 아니라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저도 동네 정치를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보단 밥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밥 먹여 주는 정치라는 꽤 근사한 문장도 만들어내면서 그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지만, 몇몇 지역과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 우린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으로 정치화되어 있지 못합니다.

    누구는 존재의 배반이라는 말로 그들에게도 책임을 묻지만, 이건 좀 비겁한 언사죠. 그들을 호명한 것도, 그들의 당임을 자임한 것도 우리 스스로이면서, 정작 불일치의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잖아요.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현재의 투표참여자의 표를 우리가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하고 그들이 우리를 지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투표참여자들이 우리를 우호적으로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전을 위한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우리들의 정치에선 전략적으로 중요한(?) 대상이지요. 아이들의 젊은 부모까지 포함해서요. 영유아 국가필수예방접종 무상시행이나 무상(의무)급식 등은 바로 그들을 겨냥한 대표적 정책이자 정치행위였죠.

    제가 활동하는 서구는 가난한 사람들의 땅입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십여년 전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뭔가를 도모하려 하고, 수년전부턴 동네 사람들과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건 제가 활동하는 지역의 특색이기도 하고, 진보정당 활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지향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죠.

    의정활동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나타냅니다. 앞서 이야기한 국가필수예방접종 무상시행의 확대를 광역정부와 중앙정부에 계속 건의토록 요구하였고, 특정지역에 편중되거나 타 구청에 비해 부족한 예방접종 의료기관을 늘리도록 조치하여 실제 성과를 냈죠.

    의정활동과 연동해서 교육지원청의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연구지원단에 참여해서 학교 현장을 찾아가며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지역사회의 배려를 주문하기도 하죠. 이렇게 학교 현장을 다니다가,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을 만나다가,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다가 마주친 녀석들이 학교가 끝난 후에도 혼자 있어야 하는 이른바 자기보호아동, 나 홀로 아동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자기보호아동들의 삶과 공동체를 다룬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출처=blog.jinbo.net/rivermi/)

    자기보호아동이란 학교가 끝난 후 어른의 보호 없이 하루 1시간 이상 혼자 또는 초등학생 이하 아동끼리만 있는 아이들을 말합니다. 왜 혼자냐구요? 엄마 아빠 내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밥 벌러 나가야 하니까요.

    실제로 동네 사람들과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만나는 엄마들의 다수는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혹은 하고 있는데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아이들 문제라고 합니다.

    이 자기보호아동, 나 홀로 아동에 대한 사회적 돌봄과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치활동의 하나이어야 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 아이들을 사회화, 정치화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한 저는 지난 3월 의회 임시회 때 이런 요지의 구정질문을 하였습니다.

    2011년 여성가족부의 샘플 조사를 보면 전국 초등학생의 30% 가량인 97만명이 나 홀로 아동, 즉 자기보호아동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하루에 3~5시간 보호자 없이 지내는 경우가 24.2%였고, 5시간 이상도 23.5%에 달해 1/4의 아동은 장시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4%는 1주일에 5일 이상 혼자 지내고 있다.

    자기보호아동은 저소득층에서 가장 많은데, 저소득층 가정 아동 10명 중 4명이 자기보호상태에 있다.

    자기보호아동이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이나 폭력물 등 유해 콘텐츠를 접해 본 비율은 16.1%였는데, 이것은 부모나 성인의 보호를 받는 아동이 유해 콘텐츠를 접해 본 비율인 11.4%에 비해 훨씬 많았다. 폭력 피해 경험도 자기보호아동의 29.3%가 경험이 있다고 답해 성인보호아동의 23.3%에 비해 피해가 컸다.

    이런 자기보호아동의 부모 중 40% 가량은 아동을 맡기고 싶어도 맡기지 못하는 경우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아동을 위해 2012년 국비 1263억원, 지방비 3833억원을 들여 지역아동센터, 방과 후 아카데미와 같은 돌봄 서비스를 펼쳤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나홀로 아동으로 추산되는 97만명 중 최소 65만명 이상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분석했다.

    소득이 낮은 가정의 아이들이 홀로 방치될 확률이 높아 서구의 경우 샘플 조사 결과보다 나 홀로 아동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청에서는 이에 대한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이들 아동을 위한 돌봄 서비스는 서비스명칭, 근거법령, 사업수행기관 등만 다를 뿐 유사하게 중복 추진되고 있다. 심지어 비슷한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단체들도 상대 기관이나 단체가 무슨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잘 모른다. 같은 아동에게 서비스하는 기관․단체조차 이 아동에 대한 종합적인 사례개입과 관리를 하고 있지 못하다.

    이래서야 어떻게 실질적인 사회적 돌봄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따라서 사회적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는 기관․단체가 공동의 정책협의회를 꾸려 지역특성에 맞는 맞춤형 대응사업을 발굴하고 통합적으로 사례관리를 해야 한다.

    대구경북연구원도 2012년 11월 긴급 정책대응 리포트를 통해 지역 차원의 방과 후 돌봄 정책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방과 후 돌봄 정책협의회를 구성 운영해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그 양육자들에게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자.

    이 구정질문을 하기까지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골목길에서 만난 친구들,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의 이야기와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서 확인한 사례,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이야기하는 사례 등을 직접 듣고 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이 가난한 아이들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정치, 우리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구청에서는 저의 문제의식과 제안을 적극 수용했고, 지난번 대판 싸웠던 일도 떨떠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구청장도 좋은 문제제기였고, 해당 업무 국장에게 특별히 지시하겠다고 했죠. 그리고 구정질문 이후 구청에서 관련한 일 몇 가지를 추진하긴 하는데, 그다지 성에 차진 않지만요. 지역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갖고 기획취재까지 해서 방송되었구요.

    구정질문을 하는데 중간에 갑자기 눈물이 나고, 목이 메이더군요. 목소리도 떨리고 호흡도 불안정해 중간에 잠깐 멈춰야했습니다. 구정질문을 준비하면서 보고 만나고 들었던 아이들이 생각나서요. 아이들의 상처, 그 상처에 무감각한 사회, 가난하고 힘없는 진보정당, 그런 속에서도 동네에서 빡시게 고생하는 우리 식구들까지 생각나서요…

    그래도 가야지요. 해야지요. 우리 일이니까요. 정치를 모르는 가난한 아이를 줄이기 위해서… 그죠!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 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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