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프로파일러가 되었나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짐바르도의 실험
        2013년 05월 28일 03: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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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그의 저서 ‘루시퍼 효과’에서 “왜 선량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가?”에 대한 난해한 의문을 다뤘는데, 주지하듯이 이러한 의문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기억과, 또한 현 시점에도 운영되고 있는 쿠바 관타나모 교도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집에서는 아주 착한 딸이며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20대 초반의 미군 여성이 더 없이 잔인하게 이라크인 포로들을 고문(성적인 고문을 포함)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셀카를 찍으면서 웃는 모습은 과연 인간과 인간성, 그리고 범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사실 짐바르도는 1971년 8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라는 것을 창안했었는데 이 실험은 그 결과에 있어서 워낙 사회적 파장이 커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고 그래서 그 이후 2001년과 2010년(‘Experiment’) 두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실제 2주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던 실험이 단 6일 만에 끝난 것부터 피실험자들이 실험과정에서 보여준 가공할 만한 잔혹함의 정도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가 누구이며 선악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범죄학자들을 포함 일반 대중들에게 안겨주었다.

    이 실험은 그 자체로 매우 간단한 실험구조이다. 랜덤하게 선발된 보통 사람 2-30여 명을 특별한 기준 없이 두 무리로 나눈 다음, 실제 교도소는 아니지만 외부로의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 가둔 뒤, 한 무리에게는 교도관의 역할을 주고 다른 무리에게는 죄수의 역할을 준 것이다.

    처음에 두 무리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장난스럽게 서로를 대하며 주어진 역할에 대해 부자연스럽게 행동을 했으나,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역할 놀이 정도로 끝날 것 같았던 이 실험이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 적응의 시간이 지난 후 각 개인은 실제 충실한 교도관과 죄수로 변해갔던 것이다.

    물론 내부의 두 무리를 제외한 외부의 그 누구도 내부의 각 개인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리거나 유도를 하거나 명령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엔가 역할 속의 인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영화 의 한 장면

    짐바르도의 실험을 영화화한 영화 [엑스페리먼트]의 한 장면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몰입의 시간과 방법이었는데, 마치 이전에 그 일을 해 본 사람인 듯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그리고 매우 적합한 방식을 스스로 찾아 각 개인은 충실한 교도관과 죄수가 되었다.

    교도관 역할을 했던 매우 순박했던 어떤 대학생은 어느 순간엔가 자기보다 덩치가 큰 죄수에게 린치를 가하고 다른 교도관과 협력하여 육체적인 고문도 서슴없이 가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교도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 교도관보다 더 교도관답게 변했다.

    또한 죄수들도 역시 처음에는 교도관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똑바로 쳐다보기는커녕 항상 눈을 아래로 하고 존댓말을 쓰며 실제 죄수보다 더 죄수답게 변했다.

    시간이 갈수록 두 집단은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했으며 폭력의 정도와 비명의 정도가 심해졌고 결국 2주 계획이 된 실험기간이 6일 만에 중단되게 되었다.

    이러한 실험결과의 의미는, 이전까지 범죄의 원인을 찾아 다양한 요인을 두고 갑론을박하던 사회학자, 심리학자, 범죄학자들을 거의 KO 시킬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전의 학자들이 집중한 범죄에 대한 생물학적 요인이나 심리학적 요인 등과는 무관하게, 인간은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충실한 역할자가 된다는 의미로서, 범죄자, 악인 등은 특별히 누구인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처하게 되는 모든 사람이 다 가능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즉 이는 인간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점에 대한 거부이고 인간의 자질은 결국 경험과 실천을 통해 형성되며 상황에 따라 모두가 사회적으로 규정된 나쁜 짓을 할 수 있다는 점진주의적 관점인 것이다.

    짐바르도의 연구는, 개인 수준의 속성인 생물학적 심리학적 요인을 중심으로 범죄행위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게 한다. 더 나아가 범죄자와 비범죄자를 명확히 구분한다는 것에도 유사한 방식의 의문을 표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어느 순간엔가 급격하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범죄자가 되는 이유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줄 수 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고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보다 더 폭력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프로파일러는 범죄자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즉 범죄현장을 한 번 보면 딱 누가 범인인지 제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프로파일러 개인의 능력이 미약함에 대한 변명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언술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은, 그것이 범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 때문이라는 점이다.

    즉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개인들의 속성과는 일정 정도 무관하게 특정한 형태의 범죄적인 행동할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속성이 뚜렷하게 범죄행위(현장)에 각인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범죄자 개인의 속성을 ‘특정’하는 방향이 주요한 중심이 된다면 오히려 반대로 정확한 범죄자 개인의 속성을 알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범죄행동이라는 것은 개인의 속성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사회적 상황과 맥락의 산물이며 특정한 누가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기에, 모든 범죄와 그 현장을, 개인 속성에 따른 범죄행위로부터 추론한다는 것은 매우 큰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래서 프로파일러의 자질을 검증하는 기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심리학적 기반이 아니라 범죄학적 기반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학문적 특수성에 따라 범죄심리학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이지만 실제 범죄행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경우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범죄 속에 내재된 스토리를 이해하는가? 이다. 그 스토리에는 개인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어떻게 상황 속에서 범죄자가 만들어지며 또한 사회적 반응으로서 범죄 자체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가? 또한 범죄를 사회(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하게 만드는 기제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포함한다.

    범죄자가 단지 몇 가지 유전병이나 생물학적 기질,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범죄행동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뛰어난 프로파일러는 창의적인 스트리텔러이다.

    나의 대학교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87년 민주화운동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를 제외한 나의 학과 동기들은 대부분 유학을 갔든 아니든 간에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화학과 관련된 일을 한다.

    나만 유일하게 상당히 다른 인생길을 지나 왔다. 그 인생길에 있어서 물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남들만큼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웠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끝난 후 나름 계획을 세워 가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인류학과 사회학이라는 학문 방향으로 나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같이 한 편이 되어 싸웠던 동료들, 선후배들의 행로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중 상당수는 꾸준히 자신이 지켜왔던 신념을 지키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맞서 싸운 바로 그 대상이 되어있었다.

    늘 자신들이 외치던 것,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버리고 오히려 권력자가 되어 있거나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있기도 하고, 겉으로는 민주주의 수호자인양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민주주의를 짓밟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 모두 정의로운 사회를 꿈꿨지만 이제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아마도 그들만의 정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386(486)을 기득권자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사이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며, 어찌 보면 나도 그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족-생애사를 전공한 사회학 박사인 내가 경찰로서가 아닌 프로파일러가 된 바로 그 이유이다. 아마도 조금의 시간이 흐른다면 나도 역시 내가 아쉬움을 가졌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을 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나는 대학교 초년생부터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열망했다. 누구 말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짓밟히는 사람은 여전히 짓밟히고 억울한 사람은 여전히 그 억울함을 풀 수 없는 사회이다. 비정규직은 넘쳐나고 탐욕스런 자본가들의 화이트칼라 범죄는 수천억 수조 단위로 벌어지는데 그들은 여전히 이 사회의 갑이다.

    단적으로 인권위, 노동청, 경찰서 앞을 가보시라.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피켓 시위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이미 기득권과 연결된 범죄수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묻혀버린다.

    모든 수준과 형태의 범죄수사에서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 사회의 권력관계는 핵심적인 기제이다.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한 범죄행위는, 그 처리 시간은 지지부진하고 그 처리방법은 교묘하고 난해하다. 또한 유죄판결이 난 이후에도 실제 실형을 사는 경우는 드물고 벌금형이나 병보석, 형집행정지 등으로 다 빠져 나간다.

    반면 권력이 없는 자에 의한 범죄행위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처리방법은 단순하며 가혹하게 처벌된다. 유죄판결 이후에 이들이 아무리 아파도 병보석이나 형집행정지를 받아내기란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이 더 쉬울 정도이다.

    또한 주지하듯이 가난한 자의 자식들은 늘 교도소 담장을 걷고 있다. 왜? 그들은 가난을 대물림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살기위해 서는 항상적인 (국가 혹은 사채업자의) 채무자이며, 또한 국가(대부분 대자본가)가 필요로 하는 자본과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선택된, 가혹한 과태료와 범칙금의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교통 범칙금, 주차 과태료, 벌금의 수혜자인가? 대형건물의 소유자, 대자본의 소유자, 은행, 그리고 그 은행으로부터 쉽고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기득권자들 아닌가?

    그래서 정의를 실현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러니하게도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민주주의인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인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범죄는 개인의 속성에 의해 발생되기도 하지만 훨씬 더 핵심적인 범죄 발생의 기제는 사회적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일수록 범죄율은 낮아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래서 나는 프로파일러로서 범죄 전문가이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범죄가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야 만이 범죄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민주주의 신봉자이다.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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