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강탈하는 ‘갑’
‘을’이 할 거라곤 꼬장과 절망뿐
[창원 자영업 실태조사기-2]건물주에게 쫓겨나고 폐업하고 권리금은 날리고.....
    2013년 05월 27일 1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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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다. 설사가상으로 창원에는 거의 10여년 만에 폭설까지 내렸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건 내가 창원에 온 게 1983년 봄이 오기 전이었으니 그 이후로는 처음이었을 거다.

몇 년 만에 내린 폭설에 온 시가지가 하얗게 점령 당해 거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시내버스들은 10km 이하의 속도로 엉금엉금 기었으며 승용차는 물론이고 택시들도 아예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리는 텅텅 비었다. 한때 세상을 마비시켰던 눈덩이들이 그 이후로도 동네어귀나 아파트의 후미진 그늘에서 열흘 가까이 녹지 않고 버텼으니 얼마나 추운 겨울이었던가.

그 겨울에 나는 마음마저 동토의 호수처럼 꽝꽝 얼어붙었을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검은 장갑 낀 손으로 왼쪽 옆구리에서 설문지 한 장을 꺼내 들이미는 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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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식당이 철거되는 모습. 옆의 가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고, 수고 많습니더. 그래야지예. 이런 거 진작 했어야지예. 그렇지만 우린 이미 늦었습니다. 다음 주면 문 닫고 나갑니다. 우리 쫓겨난다 아입니꺼.”

그녀는 ○○○○○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여기 장사한 지 l0년쨉니다. 들어올 때 권리금 1억 주고 들어왔지예. 그때 1억이면 큰돈이었습니더. 그런데 나가라카는 깁니더. 우리는 장사 더 하고 싶은데, 그냥 나가라카이 참 돌겠네요. 우리만 그런 기 아이고 우에 집도 나가라카는데, 저 집은 더 억울하지예. 젊은 여자들이 이자 장사한 지 4년밖에 안됐는데, 거도 권리금 1억 넘게 줬을 건데. 우리보다 평수도 두배나 넓고 하이.”

결국 그녀는 얼마 안 있어 문을 닫았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 직원 한명을 고용해 10여년 가까이 장사를 했지만 나올 때는 이사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어느 찻집에서 다시 만난 그녀가 말했다.

“주인이 그러는 거라. 원상복구할라믄 돈도 많이 드는데 고마 집기 저런 거는 내가 팔아서 할게. 그래 우리 남편도 그러는 거라. 고마 다 주삐라. 욕심부리지 말고 다 주고 나가자. 그렇지만 그게 되나. 너무 억울해서 내가 철거하는 사람을 만났지. 계산을 뽑아보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라. 바닥이 온돌인데 이거 다 걷어내고 합판이며 벽돌 뜯고 하면 1톤 트럭이 열 몇대는 와야 된다카데. 그래 고마 다 하이소 카고 나와뿌다 아이가. 지돈 10만원은 아까버서 벌벌 떠는 사람이 남의 돈 1억은 어찌 그렇게 하는지.”

권리금과 보증금

‘창업비용에서 권리금과 보증금의 비중이 50%'(2013 창원자영업 실태와 대책 자료집)

연산홍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던 4월 중순, 그녀는 세무서를 찾았다. 너무 억울했던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놔두어서는 다음 사람이 또 다음 사람이 당할 거라는 생각에 세무서에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정의를 세워야지. 바꿔야 되는 기라. 이기 하나의 풍조가 되면 사회에 악이 그득히 차고 문란해지는 기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권리금도 내놔라 할 처지도 안 되니깐. 그냥 장사만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긴데 말이다. 할 거는 없고 내가 매달 월세 250만원씩 냈는데 세무서에는 아마 80만원만 낸 걸로 돼있을 거라. 엊그제 아는 이에게서 전화도 왔어요. 당신이 신고 안하면 당신도 같은 범죄자라고 하면서, 빨리 해라 하는 기라.”

그녀는 동병상련의 2층 삼겹살집 젊은 여사장도 설득해서 함께 세무서에 가서 탈세혐의로 건물주를 고발했다.

그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들이 쫓겨난 건물은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변 부동산업소의 말을 들어 보니 대형 체인점이 들어올 거라고들 말한다.

이런 일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상남동 지역에는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새 임차인을 들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허, 저 집 또 쫓겨나는구먼!” 할 정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어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상남동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옛 동지요 형제와도 같은 선배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저도 곧 나가야 된다. 쫓겨나는 거지.” 그 집은 상남동에서도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일식형 횟집이었다.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내부 시설도 시설이지만 규모가 으리으리한 게 보통이 아니었었다. 옆에서 거드는 친구의 말이 가슴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갑이 나가라 그러면 힘이 있나? 을이 나가야지. 할 거라곤 전에 그 할매처럼 꼬장 부리는 거밖에 없어.”

자,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마치 하나의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권리금과 높은 임대료에 있었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는 수단으로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쫓아내고) 새로 임차인을 들이는 수법을 쓰는 것은 어쩌면 고전적인 방법이다.

새로 생긴 옆 건물에선 한 달 월세가 850만원인데 나는 300만원밖에 못 받고 있다 생각하면—이건 실제상황이다. 나는 잘 아는 그분이 왜 850만원씩이나 월세를 주고 장사를 하는지 그걸 이해 못한다. 목도 그리 썩 좋은 것도 아니고 1층이라지만 평수도 35평 남짓이다—아무리 돈이 많은 건물주라도 억울하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더 쇼킹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건물주들이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수수하는 행위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예를 든 횟집과 삼겹살집도 그런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였다. 내 선거구인 대방동의 아파트단지에 사는 한 자영업자는 감자탕 식당을 시작하면서 권리금을 1억4천만 원을 주었는데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2년 만에 몽땅 날렸다.

그런데 이이는 지난 1월에 만났을 때만 해도 권리금은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권리금을 건네준 이가 바로 건물주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예의 횟집과 삼겹살집 사장님들을 만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을 만나게 되면서 문제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고 그에게 연락해서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어렵게 나타난 그는 한껏 풀이 죽어있었다.

“다 날렸습니다. 한 푼도 못 준다 카데예. 이사비라도 좀 주라 했더니 그것도 안 준다 그러고. 따지니까 바로 명도소송장 날라오는데, 계산 바로 나오데예. 그래서 마 내가 돈 들여서 장만한 집기며 뭐며 다 놓고 나왔다 아입니까. 그거 철거하려면 돈이 더 드니께. 허허.”

근 20년 가까이 직장생활하며 알뜰히 모았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건만 그는 허허 웃으며 “다시 벌면 되지요”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듯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부산 인근 어느 신도시의 부동산중개사무실에서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공고 출신인 그의 친구들이 인근 공단에서 자그마한 공장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다시금 보란 듯이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장전문 부동산을 해보겠다는 건데, 그의 재기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계속>

필자소개
경상남도 의원(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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