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학생 입학 위해 연방군 출동
    1963. 5. 21 조지 월레스와 케네디
    [산하의 오역]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하는 장면들
        2013년 05월 22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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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1960년대는 우리들의 80년대와 유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와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하고많은 사람들이 투쟁했고 상처받고 사라져 가야 했으니까요.

    버스의 빈 자리에 당당히 앉기 위하여,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하여, 내 자식이 나같은 처지를 답습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미국의 흑인들은 투쟁에 나섰지요.

    흑백분리 좌석에 반대하는 흑인들과 백인들이 미국 남부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함께 타고 여행(?)에 나섰다가 곤죽이 되도로 두들겨 맞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프리덤 라이딩, 즉 자유의 여행은 그 한 예일 뿐입니다.

    학교에서의 흑백 분리가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1954)이 있었지만 당시 미국의 남부 사람들도 한국의 재벌과 비슷하게 법원의 판결 따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뜨거운 감자 하나가 백인들의 손바닥 위에 던져집니다. 전원 백인 학생이던 앨라배마 주립 대학교에 두 명의 흑인이 입학 원서를 낸 겁니다. 당연히 대학 당국은 이를 거부했고 1963년 5월 21일 연방대법원은 흑인 두 명의 입학을 허가할 것을 앨라배마 주에 명령합니다.

    그러나 역시 요즘의 한국처럼 판결에 대한 불복종이 치열한 가운데 대법원 판결을 동네 번데기 포장지로 아는 모 그룹의 몽자 돌림 회장님과 같은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게 됩니다. 조지 월레스라는 사람이 그입니다.,

    그는 1963년 주지사 취임 연설에서 “인종분리 정책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하리라,”고 떠들던 사람입니다. 이 주지사는 연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스스로 학교에 나가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막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월레스 주지사를 저지하기 위해 연방군을 출동시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조지 월레스가 대학 앞에 버티고 서서 연방군과 대치하는 와중에 주지사 옆에 섰던 포레스트 검프가 흑인 학생이 떨어뜨린 수첩을 주워서 건네 주는 장면이 나오지요. (즉 포레스트 검프는 문제의 앨라배마 대학교의 미식축구 선수였던 겁니다)

    연방군은 학생들을 호위하고 대학 내로 진입합니다. 흑인 학생 뒤로 총 든 미군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진풍경은 한동안 계속되지요.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놀던 월레스는 정치 초년병 시절에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의 지지도 받는 꽤 진보성향의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거에서 KKK의 지지를 받던 라이벌에게 패하면서 홱 돌아서서 인종분리 절대 지지를 외치면서 오늘날의 우리나라 경상도를 연상시키는 남부 백인들의 마음을 휘어잡게 됩니다. 그 결과 당선된 주지사 취임식에서앞서 말한 “인종분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존재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영화 '포레스트컴프'의 앨라배마 대학의 대치 장면

    영화 ‘포레스트컴프’의 앨라배마 대학의 대치 장면

    미국 남부 백인들의 꼴통성도 한국의 경상도 못지않아서 그렇게 연방적인 사고를 친 이 정치인을 계속 지지합니다. 심지어 연임 금지법에 의해 월레스가 출마하지 못했을 때에는 대신 나선 부인을 당선시킬 정도였고 대선에도 출마하여 천만표 이상을 얻었으니 말 다했죠.

    그러다가 조지 월레스는 총을 맞습니다. 분노한 흑인이 그를 쏘았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범인은 “유명해지고 싶은” 백인이었어요. 그 총탄은 월레스의 척추를 갈라 놓았고 그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됩니다.

    저격, 부인의 사망, 재활과 재혼 와중에 그는 또 한 번 그의 생각을 극적으로 바꾸게 됩니다. 자신의 인종분리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인종차별 정책을 완전히 철회한다는 것이었지요. “흑인 유권자가 많아져서 그런 거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의 사과와 참회를 지지한 흑인 유권자 덕택에 또 한 번 주지사가 되고 그 임기 중에는 흑인 공직자를 여럿 임명하며 그의 참회를 증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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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9월의 한겨레신문 조지 월레스 부고 기사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월레스와 대치했던 흑인 학생을 만나 사과하는 것도 그 무렵입니다. 당시의 흑인 학생 후드는 “그는 변했고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연방법원이 인정한 권리를 위해 연방군을 출동시키는 강수를 뒀던 케네디 대통령. (물론 쿠바인들의 권리는 쉽게 무시했지만) 그는 앨라배마 대학에 군대를 투입한 후 인권을 주제로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힙니다.

    비록 미국의 대외적 행동이 이 연설의 가치에 먹칠을 하는 일이 잦다고는 해도 1963년 5월 21일의 연방 법원 판결과 군대를 출동시켜서라도 그를 관철시키려 했던 대통령, 그리고 그가 행한 연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새삼 다시 보게 만들어 줍니다.

    앨라배마 사태에 단호히 대응함으로써 남부의 지지를 상실했다고 여긴 케네디는 텍사스의 달라스를 방문하여 그를 만회하려 했고 그곳에서 목숨을 잃지요. 케네디의 연설 한 번 대충 읽어 보시죠.

    ***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 차례의 위협과 협박 선언에 뒤이어, 앨라배마 북부 지방법원의 최종 확정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앨라배마 주(州) 방위군이 오늘 오후 앨라배마 대학교 교내로 진입해야 했습니다.

    법원의 명령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흑인으로 태어난 젊은 앨라배마 주민 두 명의 입학을 요구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들이 평화롭게 캠퍼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완수한 앨라배마 대학교 학생들의 행동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저는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미국인들이 잠깐 동안 멈춰 서서 이번 사건과 그 밖의 유사한 사건들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는 수많은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한 사람의 인권이 위협 받을 때 모든 사람의 인권이 저하된다는 것이 이 나라의 건국 이념이었습니다.

    (중략)

    요컨대 모든 미국인은 인종이나 피부색과 관계없이 미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모든 미국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우 받을 권리, 우리 자녀들이 받았으면 하는 것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출생 지역을 불문하고 오늘날 미국에서 태어나는 흑인 아기가 고등 교육을 이수할 확률은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백인 아기의 이분의 일 가량이고, 대학까지 마칠 확률은 삼분의 일, 직업을 가지게 될 확률도 삼분의 일, 실직할 확률은 두 배, 연봉 1만 달러를 벌어들일 확률은 칠분의 일인데다가 기대 수명은 7년이나 짧고 예상 수입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종 차별과 격리로 인한 다툼은 미국 내 모든 주의 모든 도시에 존재하며, 이로 인해 불만이 고조되면서 많은 도시의 공공 안전이 위협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당파의 문제도 아닙니다. 국내적 위기 상황에서는 관용과 선의를 갖춘 사람들이 당파 또는 이익을 떠나 하나로 뭉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법률만의 문제도 아니요, 입법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법정에서 해결하는 편이 더 낫고 또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야 하겠지만, 법률만으로는 사람들이 올바른 시각을 가지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이 문제는 무엇보다 도덕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성서만큼이나 오래 되었으며 미국 헌법만큼이나 분명한 문제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모든 미국인에게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기회를 부여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과 똑같이 다른 미국인들을 대우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어떤 미국인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일반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없거나, 자녀들을 제일 좋은 공립학교에 보낼 수 없거나, 자신을 대표할 공직자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거나, 간단히 말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유롭고 충만한 인생을 즐길 수 없다면, 세상에 자기 피부색을 바꾸고 그런 입장이 되어 보는 데 동의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저 인내하고 기다리라는 조언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까요?

    (중략)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게 닥친 위기는 그러므로 도덕의 위기입니다. 경찰 진압으로는 여기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늘어나는 가두 시위를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허울뿐인 행동이나 입에 발린 말로 잠재울 수도 없습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의 입법 기관인 의회가 나서야 할 때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일상 생활에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일부 지역의 문제라고 말하거나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개탄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엄청난 변화가 목전에 와 있습니다. 모두를 위해 그러한 혁명과 변화를 평화롭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의 의무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폭력을 도발하는 것이며 명예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은 권리와 동시에 현실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략)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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